
협회도 인정한 그랜드슬램… 자격 운운하며 현지 언론들 태클
2012년 에비앙 정복한 박인비… 승자의 여유로 이중성 역공
박인비는 지난 2일(현지 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트럼프 턴베리 리조트 에일사 코스(파72‧6410야드)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리코 브리티시 여자 오픈(총상금 300만 달러)에서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로 2위 고진영(20‧넵스)을 3타차로 누르고 우승을 목에 걸었다. 이로써 박인비는 꿈에 그리던 메이저대회 4개 대회 우승을 거머쥐면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2013년 나비스코 챔피언십과 LPGA챔피언십, US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번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서 4개 대회를 재패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박인비는 우승 직후 “올해 세워놓은 목표가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이었는데 그걸 꿈 같이 이루게 돼서 너무 기분이 좋다. 에비앙 챔피언십을 우승해도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지만 진정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루려면 이 대회에서 우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해 남은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4개는 부족하다는 언론들
이처럼 박인비는 그랜드슬램 입성 꿈을 달성했지만 서양 주류 언론들이 이에 반기를 들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미국 골프 채널은 최근 박인비를 그랜드슬램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영국 BBC도 박인비가 “4개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아니카 소렌스탐 등의 그룹에 합류했다”고 표현해 사실상 그랜드슬램이 아니라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또 영국 텔레그라프는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나마 미국 ESPN 정도가 그랜드슬램이라는 표현을 마지못해 사용했다.
이들은 그랜드슬램에 대해 모든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을 의미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LPGA 투어에는 5개의 메이저대회가 있어 박인비가 모두 우승을 차지해야 그랜드슬램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반면 LPGA 투어는 공식적으로 박인비의 4개 메이저 우승에 대해 그랜드슬램이라고 발표해 논란을 일축하기에 바쁘다. LPGA 투어 측은 “메이저 대회 수에 상관없이 그랜드슬램은 4개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의미한다”고 재차 보도 자료를 냈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그랜드슬램의 어원이 브릿지 게임에서 13개 매치를 모두 이긴 것을 뜻하는 말이므로 숫자에 상관없이 전부 우승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미국 언론들의 주장이 타당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서 LPGA 투어는 메이저가 2개~3개 있던 시절도 있었고 베이브 자하리스는 3개 메이저 대회 시절에 3개 메이저에서 모두 우승했지만 4개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랜드슬램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도 있어 LPGA관계자는 4개 대회가 맞다고 설명하고 있다.
5번째 메이저 용인이 불씨
이 같은 논란은 메이저대회를 5개로 늘린 후폭풍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골프 관계자는 “메이저 대회를 5개로 늘려 메이저 대회의 가치가 떨어졌고 그랜드슬램에 대한 개념 규정에도 혼란이 생겼다”면서 “LPGA 투어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당초 LPGA는 미국 과자 회사 나비스코가 메이저 스폰서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하자 새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새 스폰서를 구하지 못한 LPGA는 상금이 크고 LPGA에 우호적인 에비앙에 메이저를 주면서 4대 메이저 대회를 운용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나비스코가 빠진 자리에 일본 항공사인 ANA가 메이저 스폰서가 되겠다고 나서면서 졸지에 메이저 대회는 5개가 돼버렸다. 이에 LPGA 투어는 서둘러 4개 대회 우승을 그랜드슬램으로 확정했지만 이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5개 대회를 우승한 선수에 대한 명칭과 이미 5개 메이저 대회를 우승한 캐리 웹(호주)이 새로 메이저가 된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경우 등의 명칭 선정에 있어 곤란한 지경이다.
물론 웹의 경우 1999년 두모리에 클래식에서 우승했고 이후 나비스코 챔피언십, US오픈, LPGA 챔피언십, 2002년 브리티시 여자 오픈에서 우승하며 5개 대회를 채웠지만 2001년 두모리에 클래식 대신 브리티시 여자 오픈이 메이저대회가 됐기에 같은 대회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AP통신은 “박인비가 에비앙에서 우승해 그랜드슬램 논란을 끝내는 것이 어떤가”라며 현재로서는 가장 명쾌한 답을 내놨다.
논란보다 명예의 전당
최우선
하지만 이를 지켜봐야 하는 박인비는 마음이 편치 않다.
박인비는 지난 6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 출전을 앞두고 열린 인터뷰에서 “이 논란에 대한 제 생각을 말하는 기회가 있으면 했다”며 “제가 프로를 시작할 때는 메이저 대회가 4개였고 2013년 에비앙 대회가 메이저로 승격되면서 도중에 5개가 됐다. 나도 5개 다 우승해야 진정한 커리어 그랜드슬램인지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4개 우승한 모든 레전드급 선수들은 다시 에비앙에서 우승해야 하는가, 커리어 그랜드슬램이 4개 대회 우승이었다면 지금도 4개를 적용해야 한다”며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이와 함께 그는 “나는 에비앙에서 2012년 우승한 경험이 있다. 장소도 같고 상금도 같다”면서 “폴라 크리머, 스테이시 루이스, 미셸 위가 저와 같은 상황이라면 미국은 오히려 에비앙을 이전에 우승했으니 진정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고 이야기 했을 것”이라고 언론사들의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지적했다.
한편 박인비는 우승자다운 여유로 이번 논란에 연연하지 않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모든 논란을 잠재우려면 제가 에비앙에서 우승하면 좋겠지만 그게 제 최대 목표는 아니다”라며 “가장 큰 목표는 세계 명예의 전당과 LPGA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골프를 치면서 내 이름이 골프 치는 사람들에게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계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게 목표”라고 당찬 각오를 전했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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