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항서 전지훈련 때 123층 건물 치명적 장애물”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롯데 형제의 난’을 지켜보며 우리나라 국민들은 롯데가 일본에 근본을 둔 기업임을 상기하게 됐다. 이에 따라 롯데불매운동과 국세청 세무조사가 시작되고 ‘제2롯데월드’ 건축이 국민들에게 끼치는 해악이 다시 부각되면서 2008년 전격 경질된 공군 참모총장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당시 공군 참모총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2롯데월드가 건축 허가를 받게 된 과정에 대해 집중 조명해본다.
‘형제의 난’으로 롯데 재벌 총수 일가의 구태가 드러나면서 국민들 사이에 ‘반롯데’ 정서가 팽배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일본 기업’ 논란이다.
롯데가 일본기업이라는 논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신동주 전 부회장이 방송에서 일본어로 인터뷰하고, 신격호 일가가 ‘시게미쓰’란 일본 성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언론과 국민으로부터 “롯데는 한국기업이 아닌 일본인이 운영하는 일본기업”이라는 강렬한 비난을 샀다.
소문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은 일제시대 때 일본 육군대좌의 딸 하쓰코와 결혼하면서 그의 외삼촌의 성씨를 따 시게미쓰 다케오로 창씨 개명을 했고, 부인 역시 남편 성을 따른다는 일본의 관습에 따라 시게미쓰로 성씨를 바꿨다. 일본으로 귀화한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 사이에 낳은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시게미쓰 히로유키, 신동빈 회장은 시게미쓰 아키오라는 일본 이름을 같이 쓴다.
게다가 일본 기업인 롯데홀딩스가 롯데호텔을 통해 한국 롯데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모양새라 신동빈 회장이 “롯데는 한국기업”이라고 공식선언했음에도 롯데를 일본 기업으로 보는 측면이 강해졌다.
이에 언론과 국민들은 롯데가 일본에 근본을 둔 일본기업임을 상기하게 됐고, 2010년 11월 건축허가가 날 때까지 숱한 논란이 있었던 ‘제2롯데월드’에 대해 재조명하게 됐다.
특혜 의혹 받고 있는
‘제2롯데월드’ 건축 허가
2016년 말까지 123층짜리 국내 최고층 빌딩을 건축할 예정인 ‘제2롯데월드’는 현재 103층까지 완공된 상태다.
제2롯데월드는 인근 서울공항의 비행 안전성 문제와 고도제한에 따른 성남시와의 형평성 문제, 용적·건폐율 상향 조정 논란 속에서 건축허가가 날 때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정부는 2007년 7월 개최한 행정협의조정위 본회의에서 ‘초고층 건물을 건립할 경우 비행안전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국방부의 의견에 따라 당시 555m 높이의 제2롯데월드 신축을 허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2009년 1월 MB 정부는 행정협의조정위 실무위원회를 열어 제2롯데월드 건축을 사실상 허용했다.
이때 각종 특혜 시비가 일었었다. 비행안전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방부가 서울공항 활주로를 변경키로 한 데다 건설을 주관하는 그룹 계열사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대학 동기동창이라 학연 특혜 의혹도 제기됐다.
이 와중에 비행 안전성 문제를 들어 신축을 반대해온 K 공군 참모총장은 임기 만료를 7개월여 앞두고 전격 경질되기도 했다. 2007년 4월 임명된 K총장은 뛰어난 조직 통솔력으로 군 안팎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K총장은 제2롯데월드 건축을 위해 성남 서울공항을 이전하거나 활주로를 신설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며 정부와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서울공항과 인접한 서울 송파에 203m 이상의 고층 건물을 신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K총장이 교체된 바로 이듬해 제2롯데월드 건축은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전투기가 뜨고 내릴 때의 안전 문제는 ‘타협’을 이뤘다. 서울공항의 부(副)활주로를 3도 틀어 다시 만들기로 한 것이다.
K총장은 활주로 방향을 3도 틀었을 때의 안전에 대해 “이론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위험 요소를 잠재적으로 안고 있다. 실제 비행을 해봤다면 그걸 안다. 악천후와 기체 결함, 조종 미숙 등으로 컨트롤이 약간만 안 돼도 국가적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 서울공항은 유사시 외국 공군이 들어와 전지훈련을 하는 곳이다. 이들은 지리적 사정에 밝지 않고 기량이 모두 완숙한 게 아니다. 무엇보다 전시나 비상 상황에서 작전할 때 당장 문제가 될 수가 있다. 가령 뜨고 내릴 때 적의 방공망을 피해 '회피 기동(機動)'을 해야 하는데 123층의 롯데월드는 치명적인 장애물이다”라고 우려했다.
그런데도 MB 정권과 가까웠던 롯데그룹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통해 MB에게 ‘경제발전’을 이유로 공식적으로 부탁했으며, 국제항공법과 비행안전에 대해서는 국제항공법 전문 컨설팅회사에 자문을 의뢰했다.
서울특별시장 시절 미연방항공청(FAA)으로부터 ‘제2롯데월드 건축 시 비행안전에 대한 보고서’를 몇 번 받았던 MB는 제2롯데월드 건축에 긍정적인 분위기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때 부결되었던 제2롯데월드 사안을 뒤집기는 쉽지 않았다. 이에 청와대 최고위 관계자가 제2롯데월드 건축허가에 앞장서며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청와대 최고위 관계자는 2008년 9월17일 공군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청와대의 분위기를 전하고, 다음날인 9월18일 공군총장을 전격 경질했다. 그리고 제2차 전경련회의에 MB와 같이 참석해 제2롯데월드가 비행안전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부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군 총장의 경질 후, 제2롯데월드에 대한 협의과정은 급물살을 탔으며, 국무총리는 국무조정 협의위를 거쳐 허가했다.
제2롯데월드 건축상 비행안전에 대한 수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롯데그룹은 국방부에게 협의 승인을 받은 이후 추가로 130여만불의 비용을 들여 미국의 M사로부터 비행안전영향평가를 받아서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롯데그룹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국방부 및 공군과 적극적인 협의추진을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힘의 근원인 청와대 고위층에만 매달림으로써 공군총장의 전격 경질이라는 유례없는 악수를 두게 만들었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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