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쑹 냉장고’ ‘쥐 세탁기’…한국 제품 최고 인기
‘쑹 냉장고’ ‘쥐 세탁기’…한국 제품 최고 인기
  • 장휘경 기자
  • 입력 2015-08-10 14:09
  • 승인 2015.08.10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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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구 1%는 호화생활…유행하는 이름도 남한 식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되고 폐쇄된 국가 중 하나다. 일반 주민의 국외여행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국내여행도 복잡한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외부와의 통신도 엄격히 제한돼 있다. 라디오나 TV 등을 구입하면 의무적으로 당국에 등록해야 하며, 채널은 하나로 고정돼 있다. 북한 주민이 외부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제도적으로 봉쇄돼 있다. 그러나 1989년 개최된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일명 평양축전)을 계기로 북한 주민은 외부문화를 직접적으로 접하게 됐다. 당시 평양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세련되고 활달한 언행은 북한 주민들에게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외부문화를 경험하게 된 북한 주민들은 외국인들의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새를 흉내내는 등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경제난과 주민생활의 시장화, 그리고 사회통제의 이완은 북한 주민이 외부문화 특히 우리의 대중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증대시켰다. 무엇보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우리의 노래와 드라마 등이 유포되기 시작하면서 북한은 한류의 영향을 받게 됐다. 그러나 북한에서 우리의 대중문화는 여전히 법적·제도적 통제의 대상이다.
 
우리의 노래는 중국의 연변지역을 통해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처음에는 연변가요로 알고 부르기 시작했지만 2000년대부터는 남한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단속을 하면서도 일부 노래, 특히 식민지 시대의 우리 민족 정서가 담긴 노래들은 계몽기 가요라는 명분으로 부를 수 있도록 했다.
 
최근에는 댄스그룹 소녀시대, 원더걸스, 빅뱅, 엑소 등의 노래와 율동이 평양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TV 드라마 등 우리의 영상물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유포되기 시작했다.
 
<겨울연가><가을동화> 등은 북한 주민들이 많이 본 대표적 드라마이며, 이외에 <옥탑방 고양이>, <대장금> 등도 한때 유행했던 드라마다. 이들 드라마는 일반적으로 중국에서 CD, DVD 등의 형태로 북한에 유입되며, 특히 젊은 사람들이 남한의 드라마를 즐겨 본다고 한다.
 
북한 주민은 남한 사회의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대남 인식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북한 주민은 남한 주민을 헐벗고 굶주린 불쌍한 동포혹은 미제의 압제에 시달리는 해방의 대상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한 사회의 발전상을 접하게 되면서 우리의 생활양식과 상품을 동경의 대상으로 여기게 됐다.
 
이에 외부문화 특히 남한문화의 북한 유입은 북한 당국자들에게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외부문화의 유입에 대처하기 위해 형법 개정, 사상교육과 물리적 통제 강화 등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정은리설주 명품 사랑 노골적
 
북한 여성들이 패션에 관심을 보이면서 크리스챤 디올’, ‘프라다등 외국 유명 브랜드 짝퉁도 인기를 끌고 있으며 남한의 옷차림인 남조선풍도 유행하고 있다. 남한 드라마에서 유행한 패션이 그리 긴 시간을 지나지 않아 유행할 정도라고 한다. 이 같은 옷차림의 변화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부인인 리설주를 따라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리설주는 각종 공개활동에서 외국의 명품 브랜드로 추정되는 제품은 물론 다양한 색상의 화려한 옷차림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방 문화를 배척하는 북한이지만 퍼스트레이디 리설주의 패션엔 언제나 명품 사랑이 녹아 있다. 공식석상에서 이탈리아 명품 하우스인 레드 발렌티노 코트를 입고, 수백만 원대의 프랑스 브랜드인 크리스찬 디올의 검정색 클러치 핸드백을 즐겨 드는 모습이 잇따라 포착됐다.
 
김 위원장과의 사이에 태어난 2세에게는 세계 최고의 분유 브랜드로 꼽히는 독일 압타밀 이유식을 먹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근로자 한 달 임금의 절반에 달하는 고가 제품이다.
 
김정은은 일반 주민들에게 연일 국산품 애용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과 자신의 아내는 외국산 명품 애호가다.
 
국회 정보위원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김정은은 스위스 명품 브랜드인 모바도 시계에 영국 명품 원단인 스카발 정장을 입고, 몽블랑 서류가방을 든다고 한다.
 
시중에서 모바도 시계의 가격은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대까지 있고, 스카발 정장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고 있다
 
저쪽 것 있냐’…한국산 은밀하게 거래
 
LG 텔레비전, 쿠쿠 밥솥, 설화수 화장품 등은 북한에서도 인기있는 우리나라 상품이다.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도 한국 화장품을 즐겨 쓴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에서 한국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특권층은 대략 6만 명이라는 게 정보 당국의 설명이다. 4인 가족으로 환산하면 24만 명. 북한 전체 인구의 1% 규모다. 이들은 달러로 5만 불 이상을 보유하는 등 유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나 가요가 중국을 통해 하루 이틀이면 전파되는 북한. 보위부 요원들이 자본주의 날라리풍이라며 아무리 단속을 해도 메이드인 코리아는 북한 내에 빠르게 흡수되고 있다. 북한 특권층은 외제를 선호하지만 특히 수입품 중에서도 한국산의 인기가 높은데, 이를 구하기 위한 눈치작전도 치열하다고 한다.
 
무역 중개상 출신의 탈북자 최성국씨는 한국산 물건은 거의 간첩훈련 받은 사람처럼 사야 되고, 간첩훈련 받은 사람처럼 팔아야 된다. 옛날에는 저쪽 아랫동네 것 있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그것도 단속 당하니까 중국 것보다 더 좋은 것 있냐며 한국산 물건을 찾았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는 잡힌다. 그래서 지금은 있냐고 그런다. ‘저쪽 것 있냐라며 특권층 사이에서 전기밥솥 등 한국제품 구입이 유행이지만 대부분 은밀하게 거래가 이뤄짐을 전했다.
 
특히 기온이 부쩍 올라간 요즘 평양 고위층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는 가전제품이 쑹 냉장고이다. 이름만으로는 중국 제품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뜻밖에 한국산이라고 한다. 삼성의 영문글자 중 ‘SAM’을 지우고 ‘SUNG’만 남겨 쑹 냉장고로 부른다는 것이다. ‘쥐 세탁기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LG제품에서 ‘L’자를 떼어내고 (G) 세탁기라고 부르고 있다.
 
이처럼 글자 일부를 지워 암호처럼 부르는 건 한국 브랜드의 가전제품을 쓰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권력 핵심계층이거나 상당한 재력이 있는 경우엔 주로 최신 제품을, 그렇지 않은 경우는 중고품을 구입한다고 한다.
 
북한의 신흥부유층 사이에서는 특히 한국산 쿠쿠밥솥이 인기다. 이유는 질이 떨어지는 북한 쌀을 압력밥솥에서 지어내면 차진 맛을 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기를 끄는 진짜 비결은 밥솥이 스스로 알아서 이런저런 조리상황을 알려주는 기능에 있다. 압력이 세게 뿜어나올 때 조심하라고 말해주고, 밥이 다 되면 취사 완료라고 알려주는 걸 북한 주민들은 무척 신기해하고 있다. 따라서 고위층 사모님과 며느리들 사이에선 쿠쿠밥솥 하나 없으면 사람 취급 못 받는다며 웃돈을 주고서라도 최신모델을 구하고 있다고 한다.
 
향수의 경우는 명품브랜드인 불가리 제품이 최고 유행이지만 기초화장품이나 색조 분야는 한국 제품을 선호하고 있다.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도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탈북자 유현주는 북한의 국산 화장품으로 은하수’, ‘봄향기가 있다. 하지만 이보다 종류와 기능이 다양한 한국산 화장품이 몇 배 이상의 가격으로 팔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산 화장품이 북한의 상류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4월 조선중앙TV에 비춰진 김정은의 해당화관화장품 매장 시찰 모습에서 유명 화장품과 함께 한국산 화장품 사진도 포착된 바 있다.
 
탈북자 주찬양은 일반 주민들은 남한의 화장품을 쉽게 구입할 수 없다. 때문에 장사꾼과 구매자 모두 감시를 피해 신호를 만들어 몰래 거래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북한의 메이크업 트렌드는 자연스러운 피부 표현이다. 때문에 북한에서는 자연스럽게 피부톤을 보정해주는 남조선 삐야가 유행이다. 남조선 삐야는 바로 비비크림을 뜻하는 말이다. 한국 샴푸는 특정제품이 한 개에 6만 원가량으로, 현재 북한에서 쌀 1이 북한 돈 6000원선에 거래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서울 말씨·유행어 확산
 
북한에서 평양을 중심으로 서울말씨와 남한식 유행어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한국영화나 드라마를 자주 접하게 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단속에 나선 보안원마저 남한 말투를 구사하는 실정이다.
 
소식통에 의하면 남한의 말투(유행어)와 노래는 이미 북한 전역에 퍼지고 있다특히 평양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남한의 영화, 노래에 빠져 있으며 영화에서 배우들이 하는 말투를 따라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탈북자 김영희씨는 평양 시민들은 남한영화와 노래는 물론 유명배우들과 연예인들의 이름까지 알고 있다젊은이들이 집에서 남한의 유행가 내 나이가 어때서를 몰래 듣고 있으면 전에는 당장 끄라고 다그치던 어른들도 요즘은 함께 듣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한 말을 쓰는 주민을 단속하던 보안원이 무의식중에 자신도 남한식 표현을 사용해 주민들의 조롱거리가 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평양의 또 다른 소식통은 평양시 사법당국이 남한 말투의 유행을 막으려고 엄격히 단속해도 남한 말투는 이미 주민들 속에서 대중화하고 있다자연스러운 남한말의 구사가 평양에서는 남한영화를 많이 접하는 특권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한 말을 단속해야 할 보안원들도 주민들이 가끔 화이팅!’하고 외치면 따라서 화이팅!’이라고 외친다이런 현상은 사법기관의 단속성원들조차 암암리에 남한문화에 빠져들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통은 보안원들이 주민들로부터 회수한 남한영화와 노래 저장장치 중에서 인기있는 것은 해당 기관에 넘기지 않고 빼돌린다며 평양에서 유통되는 남한영화 확산의 주범은 바로 단속성원들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요즘 북한에서 가장 인기있는 이름들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 주인공들의 이름이라고 한다. 당국이 아무리 막아도 북한 부모들이 드라마나 영화를 직접 보거나 전해 듣고 작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젊은층서 남한 헤어스타일 유행
 
최근 북한 학생들 사이에서 한국 젊은이들 헤어스타일 따라하기가 유행이다. 북한 젊은층 대부분이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자주 접하면서 패션은 물론 이제는 헤어스타일까지 따라할 정도로 한류가 생활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남자 이발 비용은 1000(북한돈)인데 남한에서 유행하는 투블럭 바가지머리스타일은 6000원이다. 6배나 비싸지만 최근 방학을 맞아 멋 내기 좋아하는 남학생들 사이에서 붐이 일고 있다.
 
생활수준이 중산층 정도 가정의 자녀들은 한국산 물품을 사용하거나 헤어스타일을 따라하면서 그들만의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을 부모들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투블럭 바가지머리 스타일 비용 6000원이면 쌀 1kg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헤어스타일이라는 말이 퍼지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따라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그는 한국산 제품을 쓰고 유행을 따라하는지가 잘사는지, 못사는지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따라하는 것이라며 유행을 따르지 못하면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제 북한의 특권층 신세대는 유행에 따라 옷을 입고 휴대전화를 소유하며 성형수술이나 미용시술로 외모를 꾸민다. 북한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쌍꺼풀, 보조개 수술은 이미 널리 퍼져 있고, 이들은 눈썹, 아이라인, 입술 문신을 해서 좀 더 예뻐지려고 시도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늘 하는 얘기가 소위 고위층 자녀들은 이미 자본주의에 물들어 있다고 한다. 즉 사회주의라고는 하지만 돈이 많고 권세가 높은 사람들은 지금 전 세계 어느 나라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누리지 못하는, 그런 자유와 방종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hwikj@ilyoseoul.co.kr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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