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에게서 갑자기 운전대 빼앗으면 건강↓”
“노인에게서 갑자기 운전대 빼앗으면 건강↓”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 입력 2015-08-10 11:19
  • 승인 2015.08.10 11:19
  • 호수 1110
  • 29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운전 중단하면 인지능력 떨어지고 야외활동 감소
우울증 확률 2배… 요양원으로 직행할 확률은 5배로

[일요서울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노인의 반사신경 둔화 등으로 인한 자동차 사고 위험을 들어 “아무래도 이제 자동차 운전은 그만두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어르신들에게 건의하려던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한 번쯤 재고해 봐야 할 것 같다. 오래 자동차를 몰아온 노인에게서 어느 날 갑자기 운전을 그만하라며 자동차 열쇠를 빼앗는 것이 정서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노인의 건강에 엄청나게 좋지 않다는 새 연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연구와 교육을 통해 생명을 구한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1902년 설립 이래 활발히 활동해 오고 있는 미국 비영리기관 ‘교통안전을 위한 AAA재단’과 미국 콜롬비아대학이 최근 내놓은 교통안전 관련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운전을 중단한 노인은 계속해서 운전대를 잡는 노인보다 우울증에 시달릴 확률이 근 2배 더 높고, 장기 요양원에 들어갈 확률이 5배 더 높다. 그뿐만 아니라, 자동차 열쇠를 박탈당한 노인은 인지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생산성이 감소하며 집 밖의 일상 활동에 참여하는 정도가 낮아진다.

사교 반경 크게 줄어들어

AAA재단의 대표 겸 최고경영자(CEO) 피터 키신저는 “종합적인 이번 연구는 노인의 운전 중단이 초래하는 결과를 확인시켜 주었다”면서 “자발적이든 아니든 운전 중단 결정은 노인들에게 다양한 건강문제, 특히 사교 반경이 크게 줄어들면서 우울증을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베이비붐 세대(미국에서는 1943~1960년생, 한국에서는 1955~1963년생)가 대거 ‘인생의 황금기’라 불리는 노년으로 진입하면서 미국에서 현재 65세 이상 운전자는 3950만 명에 이르렀고 계속 증가하고 있다. 앞서 나왔던 비슷한 주제의 AAA 재단 보고서는, “65세 이상 운전자의 90%가 관절염에서부터 시력 저하에 이르기까지 운전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건강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더욱이 “노인 운전자는 55~64세 운전자에 비해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거의 2배 더 높고, 그 중 특히 85세 이상 운전자는 4배 더 높다”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고속도로안전협회(GHSA)에 따르면, 노인 운전자는 대부분 시력(대비(對比) 민감도가 떨어지고 빛 수준의 변화에 적응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인지력(기억력, 시각적 처리, 주의력, 실행력), 운전 기능(근력, 지구력, 유연성)에서 장애에 직면한다.

그런데 노인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어떻게 해서든 노인에게 자동차를 팔아보겠다는 자동차 회사들의 집념 덕분에 이제 노인처럼 운전능력이 떨어진 사람들도 운전을 쾌적하고 안전하게 할 수 있게 해주는 각종 편의·안전장치가 자동차에 속속 달려 나온다는 사실이다. 이런 다양한 장치 가운데는 시력이 나빠 도로상황에 즉각 반응하기 어려운 노인 운전자가 충돌사고를 피하게 해주는 첨단 안전기능도 있다,

자식이 만약 노부모를 위해 새로 자동차를 구입한다면 자동차의 어떤 기능에 주목해야 할 것인가. 주머니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노인용 자동차에서는 이런 기능을 살피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권한다.

먼저 무엇보다 자동차 시동을 거는 것이 편해야 한다. 신경통으로 손가락 기능이 시원찮은 노인으로 하여금 이전처럼 손목을 비틀어가며 자동차 열쇠를 돌리게 해서는 곤란하다. 그러므로 버튼을 눌러서 시동을 거는 기능이 노인에게 중요하다. 요즘은 버튼 식에서 한 걸음 더 발전해 자동차 열쇠를 호주머니나 지갑 속에 넣고 자동차에 접근만 해도 저절로 시동이 걸리는 모델까지 시중에 나와 있다.

데워지는 의자와 운전대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전기로 가열된 따뜻한 의자는 노인의 삐걱거리는 관절을 부드럽게 해주고 운전 중 등 통증을 완화해 준다. 고급 제품에는 안마 기능까지 달려 있다. 의자와 마찬가지로, 데워지는 운전대는 손과 손가락의 신경통을 완화해주고 손이 뻣뻣해지지 않게 도와준다.

노인 겨냥 안전장치 등장

전통적인 아날로그 계기판은 시력이 나쁜 노인 운전자에게 금물이다. 자동차 속도 같은 수치나 기름 잔량을 나타내는 막대그래프 같은 각종 표지가 시원시원하게 디지털로 표시되는 계기판을 가진 신형 모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돈을 좀 더 쓰면 아예 디지털 계기판이 운전자 눈높이, 즉 앞 유리 중턱쯤에 매달린 고급 모델을 구입할 수도 있다.

주차도 노인에게 큰 부담이다. 따라서 후방 카메라는 필수적이다. 카메라에 비친 후방을 보여주는 화면도 큼직큼직한 것이 좋다. 한낮에 야외에서 주차할 경우 햇빛 때문에 화면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는데 이 부분에 신경을 쓴 제품을 골라야 한다. 요즘에는 후방을 360도 비춰주는 카메라가 많다. 돈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아예 화끈하게 자동 주차 기능을 갖춘 최신형 모델 구입도 고려해 볼 만하다.

정속 주행 장치(오토 크루즈 컨트롤)도 노인에게 도움이 된다. 특히 미국처럼 고속도로가 발달한 곳에서는 이 장치를 일정 속도에 맞춰 가동시켜 놓으면 신체를 별로 움직이지 않고도 주행할 수 있다. 신모델 가운데는 고속도로 상에 갑작스러운 상황이 발생해 길이 막혀 있을 경우 자동차를 완전히 멈춰주는 기능도 있다. 심지어 길이 뚫리면 이를 저절로 알아내 주행을 자동적으로 재개하는 기능까지 있다.

이밖에 맹점(盲點)을 노인 운전자에게 일러주는 기능도 중요하다. 고속도로를 주행 중인 운전자의 측면과 후면의 시야 사각지대에 다른 자동차가 출현하면 이 사실을 처음에는 시각 신호로, 이어 소리로 알려준다. 이 기능은 특히 운전자가 집 차고나 공동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뺄 때 가로질러 다가오는 다른 자동차를 탐지하는 데 유용하다. 차선을 벗어나면 그 사실을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기능도 노인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안전장치다. 추돌 방지를 위한 경고 장치도 중요하다. 대개 정속주행 장치와 묶음으로 판매되는 이 장치는 자동차가 추돌 상황에 근접하면 운전자에게 경고음을 발하며, 만약 자동차가 앞 차에 너무 빨리 접근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제동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차를 자동 정지시킨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각종 첨단 안전장치를 구비한 자동차를 몰게 된다고 해도 노인은 어디까지나 노인이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는 노인들에게 운전 실력을 전문가에게 정기적으로 점검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scottnearing@ilyoseoul.co.kr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