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광복절특사를 기대하는 기업들의 분위기가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 기업 대부분은 남의 일인 듯 조용했다. 일부러 거리를 둔다는 느낌이 날 정도로 조용했다.
해당 기업 직원들은 괜한 입을 놀리다 자칫 찬물을 끼얹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정부의 발표만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공연한 사실처럼 특사브로커가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아봤다.
특사 발표 하루 전까지 ‘사면 뒷거래 시장’ 활개
최태원·김승연·구본상 등 몸 낮추는 중
또한 그는 “최근 재벌가의 OO브로커와의 청탁설이 일부 매체를 통해 알려지는 상황에서 특사브로커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 총수가 구속된 기업 입장에서 득이 될 것이 없기 때문에 최대한 가릴 것이다”라는 귀띔을 했다.
이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교도소 브로커를 빗댄 듯하다. 조 전 부사장은 한진그룹 측이 조현아 전 부사장의 교도소 생활 편의를 봐달라는 뜻에서 브로커를 통해 상품권 수백만 원어치를 구치소에 전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5일 서울남부지검 등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구치소 생활에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대한항공 관계사가 운영하는 렌터카 업체 출장 정비 사업권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염모(51)씨가 검찰 조사에서 이같은 사실을 진술했다는 것이다
염씨는 “조 전 부사장이 지난 2월 1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한진 측이 먼저 부탁을 해 수백만 원어치의 상품권을 구입해 구치소 관계자들에게 줬다”고 검찰에 말했다.
염씨는 “그 대신 한진 측이 한진그룹 임원 차량 300대에 대한 정비 사업권을 주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한진그룹 측은 “그런 사실이 없으며 염씨가 한 일은 우리와 무관하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는 혹시 모를 반기업 정서를 우려하고 있다.
반면 취재진이 만난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사면 뒷거래 지하시장에 대한 물음에 “(대부분) 있을 거다”는 답변을 했다. 이유를 들어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떠올렸다. 돈 앞에 무너지는 권력이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지 않느냐고 부언했다.
과거 유력 정치인을 통한 사면 로비 사례를 보더라도 사면 관련 뒷거래 시장은 짐작할 수 있다. [본지 1102호- 사면 뒷거래 지하시장 실체 ‘추적’거액 로비설이 거짓? 사실?]을 통해 한 차례 보도한 바 있다. 당시 본지는 박양수 전 의원이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수감된 정국교 전 의원이 광복절 특사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2010년 정 전 의원의 형으로부터 3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2012년 기소됐던 사례를 통해 사면 뒷거래 시장의 실체를 조명했다.
당시 박 전 의원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정 전 의원은 결국 특사를 받지 못했다. 김태랑 전 의원도 전직 군수에게서 특사로 석방되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천신일 전 세중나모여행 회장은 사업가 이모씨로부터 2008∼2010년 특사 청탁과 함께 21억 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허위학력 논란을 빚었던 신정아 씨도 2006년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측으로부터 특사 청탁과 함께 2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가 선고됐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사면에는 지하시장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박 의원은 당시 사면법 개정을 위한 법사위 입법청문회에서 “법무비서관을 할 때 사면에 관여했었는데, (청와대에서 나와 변호사로 활동할 때) 여러 차례 유혹을 받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박 의원은 “어마어마한 거액의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면서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이 같은 제의를 받은 바 있다”고 덧붙였다.
‘물밑작업’ 분주?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특사 관련 심사는 법무부가 하지만 명단 작성은 정무 라인에서 한다는 설이 재계에 만연했다.
법무부가 실무를 담당하지만 실제 핵심 역할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성 전 회장은 참여정부 때인 2005년 석가탄신일, 16대 대선 불법 정치자금 제공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데 이어 사면을 받았고 참여정부 말기인 2008년 1월에도 특사 대상이 됐다.
2004년 행담도 개발 비리에 연루돼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된 지 한달 만이다.
2007년 12월 대선 전에 특사명단에 올랐다가 제외됐던 성 전 회장은 그해 연말 갑작스럽게 특사 명단에 포함됐다. 그것도 특사 발표 하루 전에 이름이 올라간 것으로 확인되면서 여야가 대립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성 전 회장 특사는 전적으로 청와대가 명단을 작성해 법무부에 내려보낸 것으로 청와대가 강요해 이뤄진 부분이 있다”며 “법무부가 부적격이라고 판단한 자료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이 특별사면을 받을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이었던 박성수 새정치민주연합 법률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친박게이트 대책위원회’에 참석해 “성 전 회장은 (참여정부에서) 특별히 챙겨야 할 이유가 없는 인사”라면서 “확인 결과 당시 사면업무와 관련된 인사들 중에 성 전 회장과 친분이 있거나 연고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밝혔다.
물론 특사를 결정하는 과정은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법무부장관이 9명으로 구성된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 의결한 명단을 대통령에게 제가받도록 돼 있다. 그런데 사면심사위원회 자체가 법무부장관 소속으로 위원장도 법무부장관이 맡고 있다. 심사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총수가 구속된 기업입장에선 발표 직전까지 여러곳에 줄대기를 하면서 총수구명로비에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는 실정인 셈이다.
사면 포함 조건을 충족한 기업의 대외협력팀 직원은 “특사명단에 자사총수가 거론되고 확정됐을 것이라 믿고 있다”면서도 “발표 당일까지 혹시 모를 상황에 예의주시중이다”라고 했다.
한편 기업들은 ‘표정 관리’에 들어간 모습이다. 사면되길 바라는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드러내놓고 좋아할 수는 없는 처지다. 여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총수의 사면이 거론되고 있는 한 기업 관계자는 “지금은 조용히 있는 게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물밑 작업’은 다르다. 이 직원은 “일단 진정서부터 작성해 국회와 청와대에 넣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5일 현재 법무와 재계 사이에선 SK그룹 최태원 회장·최재원 부회장,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LIG 넥스원 구본상 전 부회장 등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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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