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여야가 내년 4월에 치러질 20대 총선룰을 두고 치열한 수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선전포고를 한 쪽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겠다’며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야당에게 제안했다. 이에 야당은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전제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맞받아쳤다. 여당의 ‘국민공천권’ 주장을 ‘지역구도 타파’ 카드로 대응한 셈이다. 그러나 여당에서 국민 여론의 반대를 들어 의원정수 확대에 난색을 보이자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의원정수 확대는 접고 ‘오픈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맞바꾸자’며 ‘빅딜’을 역제안했다. 그러나 여당에서 ‘사실상 거부’하면서 ‘빅딜’은 무산되는 분위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여야는 총선룰을 놓고 벌이는 ‘핑퐁 게임’이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면서 오히려 내년 총선에 역풍이 불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 명분은 ‘지역주의 타파’ 실행은 ‘…’
- ‘빅딜’속 숨겨진 ‘밥그릇 챙기기’ 정치신인 ‘죽을 맛’

자칫 ‘국민’내세워 ‘밥그릇 싸움’으로
여당에선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을 들어 의원정수 확대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지역구도’를 타파할 수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반대할 명분은 미약했다. 특히 김 대표는 DJ와 YS 시절 상도동계 대표 인사로 영호남 대통합을 위해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 문 대표는 급기야 오픈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빅딜을 제안하면서 역공에 나섰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보이진 않았다. 자칫 ‘국민’을 내세워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김 대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원래 취지가 좋고 야당 대표의 제안인 만큼 여러 방안을 놓고 논의하자”며 “그러나 전문가를 위한 기존의 비례대표제의 의미는 퇴색되고 특히 의석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제도이므로 실제 적용이 곤란한 측면이 있다”고 완강히 거부 의사를 밝혔다.
김 대표의 이런 발언에 대해 문 대표는 재차 압박에 나섰다. 문 대표는 “망국적 지역주의 정치구조를 극복 못하면 우리 모두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통 크게 결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문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김 대표도 망국적인 지역갈등 해소 없이는 결코 정치발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을 실천해 달라"며 권역별 비례대표제 수용을 거듭 촉구했다.
여야 당 대표가 ‘정치적 이해관계는 없다’면서도 한 치의 양보없이 공방을 벌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김 대표 입장에서는 오픈프라이머리가 성사될 경우 현 비박 주류가 20대 총선에서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청와대의 압박을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접을 수 없는 카드다. 반면 권역별 비례대표에 따른 의원 정수 확대는 다당제로 가는 데다 야권의 영남 잠식 의석수가 훨씬 많다는 점에서 반대하고 있다.
반면 문 대표는 오픈프라이머리로 할 경우 주류에서 비주류로 전락한 친노 세력이 공천과정과 총선에서 대거 탈락할 공산이 높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은 영남이 TK와 PK로 분열되는 상황에서 충분히 영남에서 의석수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원정수와는 별개로 반드시 관철시켜야 하는 사안이다. 이에 문 대표는 한 발 양보해 현행 300석인 의석수를 유지하면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 거대정당에 ‘유리’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독일식 비례대표제라고도 불린다. 유권자 입장에선 기존 방식과 동일하다. 현행 선거제도처럼 1인2표를 행사한다. 지역구 의원 투표와 정당 투표를 각각 1표씩 행사하는 방식이다. 큰 차이점은 정당투표의 비중이다. 국회의원 300명 중 각 당이 몇 명을 차지할 것인지 정당 투표 결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정당 투표에서 총 51%를 차지했다면, 지역구에서 몇 명이 당선됐든 결국 전체 국회의원의 51%는 새누리당 몫이다. 이를 권역별로 나눠 진행하기 때문에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된다.
결국, 정당 지지율이 각 당의 의석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설령 한 정당이 지역구 선거에서 전멸하더라도 정당 투표에서 50%를 차지했다면 전체 국회의원의 50%를 차지할 수 있다. 정당 투표가 지역구 투표보다 중요한 이유다. 해당 의석 중에서 지역구ㆍ비례대표 의원 수를 결정하는 건 다소 복잡하다.
예를 들어 수도권 의석수를 100석으로 가정할 때, 새누리당 정당 득표율이 50%라면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50석을 확보하게 된다. 이 50석 중에서 새누리당이 수도권 내 지역구 의원 당선자 수가 30명이라면, 20명을 비례대표로 추가하는 식이다. 다시 말해, 현행 선거제도로는 의석 확보가 어려운 소수정당도 정당 지지율에 따라 다수의 비례대표를 배출할 수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자연스레 다당제를 유도하게 된다.
김 대표가 ‘의석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점도 맞지 않는다. 정확히 보자면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자체가 의원정수 증가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취지는 비례대표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이지만 현 지역구(246석), 비례대표 수(54석)를 유지하더라도 도입 자체가 불가능하진 않다. 원래 제도의 취지엔 미흡할 수 있지만, 반드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이 의원 수 증가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지역구 의석 증가를 권역별 비례대표와 연관짓는 것도 무리가 있다. 선거구 개편에 따라 지역구가 증가할 것이 유력하기 때문에 의원정수 300명을 대전제로 한다면, 지역구 증가에 따라 비례대표 수 감소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와 무관하다. 현 선거제도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같은 문제점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즉,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과 비례대표 증감 여부, 의원정수 확대 논란은 별개의 사안이다.
결국 핵심은 권역별 비례대표 도입에 대한 찬반 여부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새누리당의 의석 수에서 손해를 보고 소수정당과 야당이 이득을 본다는 점에서 반대하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진보정의당이나 야당에서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배경이다. 결국 본질은 현 선거구 제도가 거대 양당에 유리하다는 이해관계에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자체에 여야 간 합의를 볼 여지는 충분하다. 즉 지역구 의원 수 증대를 용인하고 비례대표 수를 감소하는 건 여야 모두 크게 반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신인들 ‘여야 못믿겠다’ 당원 확보 주력
결국 여야 모두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목소리를 내고 있는 셈이다. 여당은 ‘국민에게 공천권을 주자’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야당이 반대할 경우 무리하게 추진할 공산은 낮은 게 현실이다. 원내 제1 야당인 새정치연합 역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지만 여당이 반대할 경우 자신들의 의석수가 줄어들 수 있기에 끝까지 고집할 공산도 낮다.
이에 여야가 공천룰을 두고 ‘핑퐁게임’을 하는 동안 20대 총선에 출마할 정치신인들은 당원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한 오픈프라이머리가 무산될 경우 여론조사 비중이 높아질 것을 대비해 인지도 높이기 작업에 착수한 상황이다. 정치신인들이 한결같이 “여야 모두 현역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배경이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