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흔드는 위키리크스 파문
세계를 흔드는 위키리크스 파문
  • 이지영 기자
  • 입력 2010-12-07 15:34
  • 승인 2010.12.07 15:34
  • 호수 867
  • 3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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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언론만이 정부 비리 효과적 폭로” 외쳐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샌지가 기사가 실린 가디언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한국의 목표는 통일이며 북한이 붕괴하면 한국이 미국과 함께 북한을 신속히 접수해야 한다.”(현인택 통일부 장관) “중국의 신세대 관료들은 한국이 북한을 흡수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천영우 외교통상부차관)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 남북관계를 동결시킬 태세다.”(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 “북한은 미국과 직접 협상을 원하기 때문에 ‘어른(adult)’의 관심을 끌려고 ‘떼쓰는 아이(spoiled child)’처럼 행동하는 것.”(중국 고위관료) “우리도 북한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다.”(허야페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하나하나가 신문 톱을 장식할 만한 내용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한국은 물론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인터넷 내부고발 자료 폭로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공개한 한반도 관련 내용들이다. 위키리크스의 폭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위키리크스가 처음 공개한 내용 가운데는 ▲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생체정보 수집을 지시했다 ▲ 사우디 아라비아 국왕이 미군 사령관을 만나 이란의 핵 야욕을 좌절시키기 위해 “뱀의 목을 쳐달라”고 선제공격을 촉구했다 ▲ 중국 정부가 구글의 서버 해킹 사건 배후에 있다는 내용 등도 들어 있었다. 지금 전세계를 흔들고 있는 위키리크스 파문의 전말을 살펴본다.

위키리크스의 보도 가운데 일반인들의 흥미를 돋울만한 내용은 전 세계의 미 대사관 직원들이 각국의 지도자를 솔직하게 묘사한 전문들. 가령 주러시아 미국 대사관은 러시아의 푸틴 총리와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배트맨과 로빈의 관계에 비유했고, 주리비아 대사관은 카다피 원수에 대해 “우크라이나 출신의 관능적인 금발 간호사에게 빠져있는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주프랑스 대사관은 사르코지 대통령을 “비판에 민감하며 권위주의적인 벌거숭이 임금님”이라고 깎아내렸고, 주이탈리아 대사관은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대해 “무능하고, 자만심이 강하다. 푸틴의 대변인이 되고 있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이런 가십적인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하면 미국과 동맹국의 관계를 곤란하게 하고 상대국의 분노를 살만한 내용도 많다. 더구나 공개된 내용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추가 공개될 내용 가운데 어떤 가공할 이야기가 들어있는지 아직 알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미 국무부 전문 공개 전 세계가 들썩

폭로 고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org)가 미 국무부와 각국 대사관들이 주고받은 외교 전문을 공개하기 시작한 것은 29일. 위키리크스로부터 미리 정보를 전달받은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가디언>, 프랑스 <르몽드>, 독일 <슈피겔>, 스페인 <엘파이스> 등 세계 유력언론들이 관련 보도를 쏟아내면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외교가들이 격랑에 휘말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위키리크스 자료들을 분류하면 한국 관련 전문이 2878건, 북한 관련이 2596건에 달한다고 한다. 이중에서 주한 미국대사관이 작성한 전문의 수는 1980건으로, 이 중 한국 관련해 공개된 전문은 겨우 10건이다.

10건의 전문에는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유명환 전 외교장관 등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사령탑들이 미국 관리들을 만나서 한 얘기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앞으로도 수천건의 한국 관련 문서가 폭로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어서 외교당국을 긴장케 하고 있다.

공개된 문서 가운데는 ▲남북이 2009년 가을부터 정상회담을 위해 접촉했지만, 정상회담 전에 상당량의 경제 지원을 달라는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북한 경찰이 최근 평양과 베이징을 연결하는 철도에서 폭발물을 발견했다 ▲한국 관리들이 미국 대사에게 “통일 한국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중국과의 적절한 거래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관리가 “김정은이 권력을 잡을 때 북한이 겪을 혼란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을 때 남한이 겪었던 것의 100배 이상이 된다”고 말했다 등의 내용들이 담겨있다.

그러나 30일까지 공개된 내용들은 아직 ‘새발의 피’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위키리크스가 공개를 약속한 자료 251만287건 중에 30일까지 공개된 분량은 281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계 많은 외교관들 심장마비 걸릴 것”

전세계적으로 미묘한 사안이 담긴 문건들이 앞으로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영국 가디언지는 “힐러리 클린턴과 세계의 많은 외교관들이 아침에 깨어나 심장마비에 걸릴 것”이라고 논평했으며 이탈리아의 프랑코 프라티니 외무장관은 “이번 사태는 세계 외교가의 9·11 테러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는 미국 국무부가 지난 3년 동안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270개 해외공관과 주고받은 외교문건 25만여 건을 지난달 28일부터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들 전문을 살펴보면 공개되서는 안되는 아주 미묘하고 곤란한 외교 내용들이 가득하다. 가령 미국 외교관들은 적국은 물론 동맹국에서도 스파이와 같은 활동을 하도록 본국의 지시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오바마 대통령이 일방적 외교를 청산하고 공정한 국제관계를 수립하겠다고 공언한 것이 하나의 빈말임을 보여 주고 있다.

위키리크스의 이같은 공개에 대해 미국 정부는 기밀 공개가 무고한 생명을 위협하고 실정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한 바 있지만 세계의 주요 매체들은 일제히 주요 내용을 보도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 문건중 지난 봄 미국의 아파치 헬기가 두 명의 로이터 기자를 살해하는 동영상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의 비밀 자료는 미군 병사로 정보 분석전문가인 브래들리 매닝(23)이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닝은 이라크에서 정보 분석 업무를 맡아왔는데 아파치 헬기 동영상 유출 직후 구금됐다. 매닝은 이밖에도 23만여 건의 기밀 문서를 위키리크스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닝은 현재 미 버지니아주 콴티코 해병 기지 교도소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미국 정부는 위키리크스가 미국의 국익과 외교활동을 침해했다고 보고 위키리크스 설립자와 조직에 대해 ‘간첩법’을 적용해 처벌하는 법률적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 고위 국방 당국자는 지난 11월 30일 “법무부와 국방, 국무부 소속 변호사들이 위키리크스의 외교문서 유출사건에 대응하기 위한 법률적 대처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에 간첩법이 적용될 수 있는지, 이 법으로 위키리크스를 처벌할 수 있는지도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법무부, 국방부와 연방수사국(FBI)까지 참여해 위키리크스 조직, 이 조직에 정보를 제공한 혐의를 받는 사람은 물론 기밀 외교문건에 접근이 가능한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방위 수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006년 설립된 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는 정부와 다른 단체로부터 온 민감한 문서를 누설하는 웹사이트로, 스웨덴에 서버를 두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6년 12월에 처음 문을 열었으며 2007년 1월에 처음 웹 상의 대중에게 공개됐다. 설립자이며 대표인 줄리안 어샌지는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집단 지성으로 만들어지는 위키백과에서 착안한 위키리크스는 익명의 제보에 의존하지만 자체적인 검증 시스템을 통과한 소식만을 사이트에 올린다”며 “이미 공개된 내용, 단순한 소문은 다루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위키리크스는 흔히 협업 문서 작업에 쓰이는 위키 기반의 사이트다.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와 구조는 비슷하다. 누구나 글을 쓰고 링크를 걸고 수정할 수 있다. 언뜻 간단한 디자인이지만 위키리스크는 해킹과 개인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최첨단 보안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으며 정보 제공자를 보호하기 위해 스웨덴과 아이슬란드 등 취재원 보호가 보장된 나라에 서버를 두고 있다. 자원봉사자만 800여 명, 후원금도 답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키리크스가 처음 발족된 해에 만도 120만 건이 넘는 문서들이 계속 업데이트됐지만 자금 조달 문제로 2009년 12월 일시적으로 활동을 중지했었다. 그러다 2010년 2월 3일 활동을 재개한 위키리크스는 그동안 수많은 비밀 문서들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위키리크스는 2007년 이라크에서 미군 아파치 헬기가 로이터통신 기자 등 민간인 12명을 사살하는 동영상을 공개해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지난 4월 이 사이트에 오른 이 동영상은 이라크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세계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들을 사살하고 “나이스”라고 외쳤던 헬기 조종사는 희생자들을 반군으로 판단하고 기자가 들고 있던 카메라를 무기로 착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밀문서 9만여 건을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민간인 사망자가 최소 195명, 부상자는 174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자 가운데는 어린이와 여성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불 전쟁일지(war diary)’라는 이름이 붙은 이 방대한 기록은 기자들에게는 기사의 보물창고나 마찬가지다.

위키리크스의 애초 목표는 내부고발자들이 민감한 메일, 문서들로 인해 감옥에 가지 않도록 보장하는 데에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1971년 다니엘 엘스버그의 월남전 관련 미국방부 분서 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사이트는 2008년 이코노미스트의 ‘뉴 미디어 어워드’를 포함하여 수많은 중요한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9년 6월, 위키리크스와 설립자 줄리안 어샌지는 2009년 영국 국제사면위원회의 ‘미디어 어워드’를 받기도 했다.

위키리크스 팀은 5명의 전임 직원 그리고 800명의 월급을 받지 않는 예비 근로자들을 두고 있으며 공식적 본부를 두고 있지는 않다. 경비지출은 주로 관료식의 복잡한 절차와 서버 유지비로 20만 유로인데 자원봉사자들에게 급여를 지급할 시에는 현재 60만 유로로 추산하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변호사한테 돈을 지급하지 않고 AP 통신사,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그리고 미국 신문 출판인협회같은 미디어 기구에 의해 법적인 지지와 기부를 받는다고 한다.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안 어샌지(39)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전직 해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샌지는 어린 시절 영화산업에 종사하던 부모 때문에 자주 학교를 옮겨 다녔다. 10대 때부터 정보의 자유를 수호하는 ‘언론 활동가’라고 자칭하며 전문 해커로 활동, 호주정부와 기업 사이트의 보안 시스템을 공격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기도 했다.


설립자 어샌지는 해커 출신

어샌지는 2006년 12월 언론의 자유와 검열 반대 등을 외치며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위키리크스를 설립했으며 핀란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어샌지는 그를 뒤쫓는 각국 정부의 추적을 피하고 있어 정확한 소재 파악이 안되고 있다. 그는 지난 6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샌지는 현재 성폭행 혐의로 스웨덴 검찰의 추적을 받고 있기도 하다. 스웨덴 검찰은 지난 11월 18일 “어샌지가 2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가 있어 조사해야 하지만 소재파악이 안된다”며 법원에서 국제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또 그는 같은달 26일 “기밀 문서를 공개하면 무고한 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주장해 온 미국 정부에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위험에 빠지는지 알려달라”고 서면 질의를 보냈고, 아랍 언론인들과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오마바 정부가 언론의 자유를 신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클린턴 미 국무 사임 요구

위키리크스의 폭로 파문은 상상 이상이다. 전문에서 ‘미쳤다’고 표현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연설에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파라과이는 외교 전문이 공개된 이후 미국 대사를 소환했다.

독일과 프랑스 등 미국의 우방국들은 일단 위키리크스를 비난하면서 미국 정부와의 관계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란 입장이지만 내심은 편치 못하다.

러시아도 논평을 하지 않았으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크렘린궁은 일단 “현재로서는 어떤 말을 하기 어렵다”며 “그같은 표현을 한 외교관이나 관계자, 어떤 문건인지 등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많은 부분이 언급된 중국은 당초 불같이 화를 냈으나 파장이 더 커지는 것을 꺼려 미국에 “함께 해결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양국 간 갈등 고조의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이번 폭로사태는 외교정책 전반에 걸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며 “비밀에 속하는, 그것도 가장 최근의 외교교섭 과정이 대외적으로 낱낱이 공개될 경우 그 자체로 외교적 신뢰관계에 문제가 생기며 관련 당사국들로부터 불필요한 오해와 반응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파장이 커지면서 정부는 이번 사태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책을 모색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의 협의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민 저항 불가피” 주장

위키리크스의 이번 폭로는 평가가 엇갈린다. 그를 간첩죄로 기소하려는 미국의 입장이 이번 폭로를 비난하는 측의 대표적 태도다. 하지만 언론들은 이에 동조하지 않는다. 미국과 영국의 언론들은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폭로 문건들을 보도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정보를 차단하려 할수록 정보는 더욱 넓게 파급될 것이라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샌지는 위키리크스의 소개 글에서 미국 대법원 판례를 인용, “오직 자유로운 언론만이 정부의 비리를 효과적으로 폭로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자유와 정의가 결핍된 곳에서는 윤리적으로 무장된 시민의 저항이 불가피하다”면서 “우리는 모든 독재정권과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기관 및 비윤리적인 기업들에게 있어 단순히 국제적 외교관계, 선거, 정보의 자유에 대한 제재뿐 아니라 보다 강력한 수단을 통한 압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지영 기자] sky1377@dailypot.co.kr

이지영 기자 sky1377@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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