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 초청 비공개 오찬, 최경환 ‘사면’ 거론…朴 외면
원칙과 명분 챙기기…“국민적 공감대 형성돼야 특사 가능”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정·재계 인사들에 대한 사면이 이뤄질까. 박근혜 대통령이 제 70주년 광복절 특별사면 방침을 공식화하면서 정·재계 인사들에 대한 사면 여부가 뜨거운 관심사다. 박 대통령이 ‘국가발전과 국민통합’이라는 기준을 제시해 정·재계 사면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정·재계 인사들이 사면대상에 포함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 사면에 대한 명분과 실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박 대통령이 광복절 특사 방침을 한 달 전에 흘린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국정운영 동력과 국민통합 차원에서 특별사면이 필요하지만 박 대통령이 추구하는 원칙을 파기하지 않기 위해 사면 여론을 살펴보는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여론이 좋지 않다면 정·재계 인사에 대한 사면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내막을 살펴봤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특별사면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대선 공약부터 그랬다. 대기업 지배주주·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한 사면권 행사 제한이 대표적이다.
특히 2013년 당선인 시절 이명박 대통령의 설 특사 계획을 두고 ‘특사가 강행되면 이는 국민이 부여한 대통령 권한 남용이며 국민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안정적 국정운영
정치권 보듬기 차원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국가 발전과 국민 대통합을 이루기 위해 사면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달 16일 5개월 만에 이뤄진 박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폭넓은 사면을 건의했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업이라고 원칙에 어긋나게 엄하게 법 집행을 하는 것은 경제 살리기라는 관점에서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광복절 특별사면’ 발언과 여당 지도부 등까지 힘을 보태면서 ‘정·재계 인사들의 사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셈이다.
이는 악화된 대내외 경제 여건과 거부권 정국으로 촉발된 정치적 상황을 모두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 민심을 하나로 묶고 갈라진 정치권도 보듬어 안을 특단의 조치로 광복절 특별사면을 꺼내든 셈이다. 여기에는 정치적 셈법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로 인한 비판여론도 만만찮다. 특별사면에 부정적이었던 박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꺼내들면서 보수진영 일부에서조차 ‘공약·원칙 파기’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정·재계 인사들에 대한 사면을 통해 경제 활성화 등을 이뤄 국정운영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광복절 특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정·재계 인사들에게는 ‘희소식’이다. 기업인으로는 최태원 SK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횡령으로 징역 4년을 받은 최 회장은 형량의 약 60%를 복역했고, 사기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구 전 회장은 형량의 약 70%를 복역했다. 뿐만 아니라 배임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철창신세는 면했지만 경영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는 김 회장 등이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치인으로는 이명박·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이광재 전 강원지사 등이다.
사면대상 언급 無
“국민적 공감대” 강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박 대통령이 사면과 관련한 발언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사면권 행사에 엄격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고, 사면에 대해선 국민적 합의를 강조해왔다. 이 때문에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과 관련, 사면대상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도 여론을 의식했다는 평이다.
실제 지난달 16일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광복절 특사 대상과 관련해 “국민적 공감이 있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여당 지도부 등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부정부패나 비리에 연루된 정·재계 인사에 대한 사면을 단행할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특별사면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데다 구체적인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박 대통령이 전국 17개 광역시·도 창조경제혁신센터의 관계자와 전담 지원 기업 대표단을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기업인 사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오히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혁신센터) 지원기업 대표 여러분께서는 직업훈련, 일·학습병행제 등 다양한 인재양성 노력과 함께 유망한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가 많이 제공될 수 있도록 신규채용에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에 재계도 적극 화답하는 정도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이날 “최근 전국 18개 창조경제혁신센터(포항의 민간자율형 혁신센터 포함)를 지원 중인 16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신성장동력 투자계획을 조사한 결과, 올해부터 2017년까지 136조 원을 투자하고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을 위해서도 5조 원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회동의 주요 대화 내용이 경제 활성화와 창조경제센터의 원활한 운영에 맞춰졌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기업인 사면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특히 비공개 오찬회동 자리에서 기업인 사면 얘기가 흘러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및 지식경제부 장관이 사면 관련 발언을 했던 것. 이에 박 대통령이 급히 화제를 돌렸다는 후문이다. 그 이면에는 기업인 사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지난달 21일부터 3일간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기업인 사면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4%가 반대했고, 35%는 ‘찬성'했다. 11%는 ‘유보’했다.
또 기업인 사면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엔, 응답자의 52%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 응답자도 41%를 기록했다.
여기에 롯데그룹 후계 경영권을 둘러싼 이른바 ‘형제의 난’이 격화되면서 광복절 특별사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과거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과 ‘성완종 리스트’ 의혹 등이 기업인 사면론에 찬물을 끼얹었던 것처럼 롯데그룹 경영권 갈등이 재벌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업인에 대한 사면 대상 범위가 줄어들거나 기업인들이 배제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정치인 사면 제외 방침?
반대여론 79%에 달해
그렇다면 정치인들에 대한 사면 가능성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기업인들에 비해 정치인 사면 가능성은 낮다는 분위기다. 일부에선 청와대가 법무부에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위반 사범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이유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강할 뿐만 아니라 정치인 사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갤럽 조사결과에 따르면 정치인 사면 여부에 대해 반대가 79%, 찬성이 12%로 나타났다. 이러다 보니 청와대가 정치인에 대한 특별사면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해 보수진영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을 중요시한다. 따라서 정·재계 인사들에 대한 사면 여부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만 사면에 대한 명분이 생긴다”며 “국민적 여론을 무시하고 대대적인 사면을 단행할 경우 박 대통령의 원칙이 무너질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잃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재계 인사들에 대한 사면 여부는 여론에 달려 있다. 박 대통령이 광복절 특별사면 방침을 공식화했으나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하다면 정·재계 인사에 대한 사면이 불가능하다는 게 일각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기업인에 대한 가석방과 사면이 재계의 희망대로 흘러가기 위해서는 해당 기업이 국민들에게 납득할 만큼 큰 선물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업인에 대한 사면을 추진하더라도 논란의 소지가 되는 인사들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보다는 국민들이 바라봤을 때 ‘사면을 해도 문제가 없다’는 인사들에 한해서 특별사면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즉, 특별사면 여부에 대한 열쇠는 박 대통령이 쥐고 있지만 여론을 살피면서 명분과 실리를 챙기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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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