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세법개정안 항목 중 증여세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기획재정부는 부모가 자녀에게 주택 구입용이거나 전세자금으로 제공한 돈에 한해 증여세를 일정 기간 유예해주는 안을 검토 중이다. 부모 사망 후에 유예한 증여세를 합쳐 상속세를 내는 방식이다. 주택 시장과 경기 활성화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계획이지만 ‘부자 감세’ 논란도 만만치 않다. 억대 자금을 자녀에게 남겨줄 수 있는 부유층에 대한 특혜란 지적이다.
납부 인원 중 0.8%만 해당…특혜 의혹
‘증여를 통한 부의 이전’ 실효성 의문
기획재정부는 자녀가 주택을 사거나 전세를 얻을 목적으로 부모에게 받은 돈에 한해 증여세를 3000만 원 한도로 유예하는 방안 시행을 고려하고 있다. 한도로 예상되는 3000만 원은 세율을 고려하면 2억 원을 물려줄 때 내야 하는 세금이다.
유예된 증여세는 상속세가 발생하면 상속세로 함께 부과된다.
증여세는 1억 원 이하가10%, 1억 원 초과~5억 원 이하는 20%의 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현행 증여세 면제 한도인 5000만 원(미성년자 2000만 원)을 포함하면 2억5000만 원까지 부모가 주택자금을 지원해도 증여세를 유예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정부의 이 같은 개정안 추진은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를 지원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연애, 결혼, 출산에 이은 인간관계,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이른바 5포 세대들에게 세금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이 반영될 경우 상속재산이 10억 원 이하인 사람은 사실상 증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부부 합산으로 상속재산이 10억 원 이하면 상속세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증여받을 재산을 무이자로 미리 받는 셈이다.
이 같은 소식에 주택시장도 거래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주택자금에 대한 부담이 덜어지는 만큼 젊은 세대의 시장 유입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다.
실제로 이 같은 증여세 감면은 다른 선진국에서도 경기 활성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한시적으로 부동산을 사는 목적인 돈에 한해 10만 유로(약 1억3000만 원) 상속증세 특별 공제를 올해와 내년 동안 시행한다.
특히 일본은 부유한 노년층, 가난한 청년층으로 세대 갈등을 겪으면서 주택 구입이나 교육비 용도에 한해 증여세를 물리지 않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또 최근 비과세 기간을 2019년까지 연장했다. 결혼과 육아 자금으로 조부모가 손자·손녀에게 주는 돈도 최대 1000만 엔(약 8940만 원)까지 증여세를 면제해 주기로 결정했다.
기획재정부가 검토 중인 증여세 유예 방안도 일본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진다. 주택 시장과 경기 활성화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ISA·개별소비세 문턱 높을 것
정부가 최근 증여세로 거둔 세금 수입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2009년 1조2096억 원, 2011년 2조741억 원, 2013년 2조7032억 원으로 늘었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세금 감면 여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면제가 아닌 유예를 하는 방안이므로 부자 감세란 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반응은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부자 감세 논쟁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증여세 납부 인원(2013년 기준) 비중은 전체 직접세 납부 인원(1422만 명) 중 0.8%(10만9644명)다. 억대 자금을 자식에게 남겨줄 수 있는 부유층에나 해당되는 특혜 시비가 일어날 수 있는 이유다.
시민들은 “세금을 면제해주든 유예를 해주든 원래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한 시민 A씨는 “증여세를 낼 만큼 여유롭게 사는 집이 얼마나 될까 싶은데 면제든 유예든 있는 사람들만 편하게 해주는 것 같다”며 “어차피 있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기대하는 증여를 통한 부의 이전, 주택시장 활성화가 일어날 만큼의 소비가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기획재정부의 세제개편안이 부자 감세 논란으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혼선과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형성되고 있다. 증여세 유예 방안뿐만 아니라 비과세 만능통장 가입자격, 개별소비세 과세에 대한 논란의 불씨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비과세 만능통장이라 불리는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의 가입자에 대한 소득 기준 폐지 여부를 놓고 고민 중이다. 당초 소득 1억 원으로 제한하려고 했으나 가입자격을 제한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재형저축 등 소득제한이 높아 흥행하지 못한 금융상품의 존재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고소득층에 세제혜택을 준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일명 사치세로 불리는 개별소비세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고소득층의 소비를 늘리기 위해 명품 가방, 시계, 귀금속 등의 과세 대상을 상향 조정해 세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고려중이어서 부자들만을 위한 세금 감면이라는 논란이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국세수입 대비 개별소비세 비중이 1980년대 7.6%에서 2010년 이후 2.8%까지 줄어든 상황이란 점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세율이 상승하는 등의 역풍을 부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욱이 지난해부터 연말정산, 소득세 세액 공제 전환, 담배세 인상 등 증세 비판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시적인 증여세 유예나 경기 활성화를 위한 정책이란 정부의 설득이 쉽게 통하지 않을 것이란 시선이 많다.
뿐만 아니라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이 손자녀 교육비 1억 원 증여세 면제 법안을 내놨다가 거센 역풍을 맞고 물러난 바 있다는 점도,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