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으로 시끌시끌 내홍 겪는 인권위
안팎으로 시끌시끌 내홍 겪는 인권위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0-11-16 09:39
  • 승인 2010.11.16 09:39
  • 호수 864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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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잣대냐 ‘정파’의 잣대냐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신세가 바람 앞의 등불 격이다. 상임위원을 비롯해 각 시민단체 등에서 인권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국가인권위 문경란·유남영 상임위원이 동반 사퇴한데 이어 조국 비상임위원도 지난 10일 전격 사퇴 의사를 밝혀 인권위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사실상 기능마비 위기에 처한 인권위는 인권위 내 위원들과 직원들의 줄 사퇴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문경란 상임위원과 유남영 상임위원 동반 사퇴의 직접적인 배경은 지난달 25일 전원위원회에 상정된 ‘인권위 운영규칙 개정안’이다. 사퇴한 두 상임위원들은 상임위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개정안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해왔다.

논란의 시발점이 된 ‘인권위 운영규칙 개정안’은 상임위원 3명이 안건에 합의를 해도 위원장의 판단으로 전원위에 회부할 수 있다. 또 상임위의 의결로만 가능했던 긴급 인권 현안에 대한 의견 표명 및 권고도 전원위에 이관하도록 하고 있다.


상임위원 ·비상임위원 잇단 줄사퇴

이에 대해 사퇴한 두 상임위원은 “위원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 설치된 상임위원회의 존재 자체가 무력화될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두 상임위원의 사퇴로 유일하게 남은 장향숙 상임위원도 지난 4일 “개정안이 관철되면 물러나겠다”며 이들의 편을 들고 나섰다.

현 위원장 측 인권위 관계자는 “두 상임위원이 사임한 것은 운영규칙 개정이 원인이 된 것 같지만 비상임위원 세 사람이 제기한 것이어서 논의를 할 수 밖에 없었다”며 “논의도 이뤄지기 전에 두 상임위원이 사임해버렸다. 이것은 운영에 대한 문제다”라고 밝혔다.

사퇴 파문을 촉발한 ‘인권위 운영규칙 개정안’은 지난달 25일 김태훈, 최윤희, 한태식 비상임위원의 발의로 전원위에 상정됐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고, 다음 전원위에 재상정하기로 했지만 지난 8일 전원위에 재상정되지 않았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지난 10일 비상임위원직을 사임했다. 이날 오전 배포한 보도 자료를 통해 “작금의 인권위 상황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자 임기 전에 국가인권위원직을 사직한다”고 밝혔다.

사직서에서 조 교수는 “현병철 위원장이 이끄는 인권위가 ‘인권’의 잣대가 아니라 ‘정파’의 잣대를 사용하면서 국가권력의 인권침해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방기해왔고 이는 현 위원장의 인권의식, 지도력, 소통능력 부재 때문”이라며 “어느 국가권력과도 맞서는 인권위원장의 당당한 모습은 사라지고 국가권력의 눈치를 보는 인권위원장의 초라한 모습만 남았다”고 질타했다.

이어 “인권위 사태는 궁극적으로 임명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이다. 인권의식이 있고 지도력 있는 보수인사에 인권위원장직을 맡기는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어 이날 오전, 인권위 전직 직원 18명이 ‘국가인권위원회 파국에 대한 전직 인권위 직원들의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현 위원장은 인권기구의 생명인 위원회의 독립성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행태를 거듭하고 있다”며 “현 위원장은 스스로 인권위의 정체성과 국가권력에 대한 독립성을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시민단체 “인권위, 국가이권위원회로 전락”

비판의 날을 세우는 것은 인권위 내부 인사들만이 아니다. 인권단체, 여성단체 등 시민단체들 역시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 등을 통해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40여개의 시민단체로 구성된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 촉구 시민인권단체 긴급 대책회의’(이하 대책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현병철 위원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대책위는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PD수첩 사건, 박원순 변호사 명예훼손, 민간인 사찰 사건 등이 모두 부결됐다”고 지적하며 “용산참사 사건 재판부 의견 제출에 대해서 과반수의 인권위원 찬성에도 불구하고 ‘독재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망언을 남기며 날치기 폐회선언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아니라 국가이권위원회로 전락한 이 기구에 인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책위는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책임을 물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자 시절’ 인권위를 직속기구화 하려 했고 이에 실패하자 결국 21% 조직축소로 독립성을 훼손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 같은 연이은 파문에 여야 의원들도 가세했다. 지난 9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의 국가인권위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인권위원장의 거취 문제가 논란의 핵으로 떠올랐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은 현 위원장이 인권위 조직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해 내부 분란이 촉발됐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위원회가 독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위원장 사퇴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현 위원장은 “저를 비판하는 사람 이상으로 지지하는 사람도 많다”며 “취임 이후 인권위에 대한 진정이 40% 가량 증가하는 등 현재 인권위는 (출범 이후) 가장 잘 운영이 되고 있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더불어 “여러 지적을 참고해 열심히 하겠다”며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사퇴촉구결의안 국회 발의

한편 지난 10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에 대한 사퇴촉구결의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소속 의원 12명은 “현병철 위원장이 독선적 의사결정을 강행해 인권위를 파국에 이르게 했다”는 내용의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사퇴촉구 결의안’을 제출했다.

결의안은 "현병철 위원장이 독단적 조직운영과 독선으로 인권보호의 역사적 사명을 저버렸으며, 대통령과 여당이 추천한 상임위원마저 동반 사퇴하는 전대미문의 파국을 야기했다"고 사퇴 촉구의 이유를 밝혔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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