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오피스텔, 내부는 요지경

사행성 오락실을 운영해 자금을 모은 폭력배들이 서울 강남 오피스텔과 고급 아파트를 빌려 불법 사설카지노를 운영해오다 경찰에 검거됐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영등포 A조직 폭력배 원모(35)씨 등 8명과 동대문구 B조직 폭력배 최모(37)씨 등 9명을 관광진흥법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 8일 구속했다. 또 공범 17명과 카지노 이용객 32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5억8000만 원과 6000만 원의 불법수익을 두 조직에서 압수했다. 도박의 늪에 빠진 사람들을 호객행위로 끌어 모아 강남 한복판에서 불법 도박영업을 벌여온 이들 일당의 범행을 파헤쳐봤다
경찰에 따르면 A조직은 지난 7월 9일부터 8월 16일까지 한 달여 간 서울 서초구 모 오피스텔에 불법 사설카지노 도박장을 개설, 5억8000여만 원의 불법 수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B조직은 지난 8월 2일부터 11월 2일까지 강남구 역삼동 및 삼성동 고급 아파트 2곳에 불법 사설카지노를 운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깔세’ ‘문방’ 등 치밀한 계획
이들 조직들은 오피스텔 및 고급아파트 펜트하우스를 2~3개월 분 사용료인 1000~3000만 원을 미리 지급하고 임대했다. 임대차 계약을 할 때 보증금 없이 선불로 임대기간만큼의 금액을 선납하는 이른바 ‘깔세’로 오피스텔을 빌린 것. 경찰의 단속 정황을 포착한 즉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수법이었다. 더구나 고급아파트 펜트하우스는 거주자 전용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데다 방음도 완벽에 가까워 경찰과 이웃의 눈을 피하기가 용이했다.
이들 조직들은 각각 도박장을 운영하는 운영자, 손님을 모집하는 ‘롤링업자’, 게임을 진행하는 ‘딜러’, 망을 보고 경찰의 동태를 살피는 ‘문방’, 돈을 관리하는 ‘카운터’ 등 13명으로 꾸려졌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말처럼 사설 도박장 운영정보에 훤했던 이들은 내부 정보망과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손쉽게 사람들을 모았다. 수입배분은 운영자를 통해 이뤄졌는데 딜러는 평균 25만 원, 롤링업자는 30만 원, 문방과 카운터는 10만 원의 일당을 받아 왔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카지노 운영은 상당한 수입이 있어야 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은 경찰의 단속망을 피하기 위해 ‘문방’을 두어 업소 주변을 철통 감시했다. ‘문방’은 RV차량을 타고 다니며 수상한 낌새가 없는지 24시간 내내 주변을 면밀히 감시해 왔다. 효율적인 감시를 위해 2교대로 오후 10시마다 교대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또 원씨 등은 정선 강원랜드 카지노 체계와 같은 시설을 갖춘 후, 게임을 진행하는 전문 딜러를 고용했다. 합법카지노와 동일한 구색은 다 갖췄던 셈이다. 딜러들은 관광학과를 졸업한 20대 후반에서 30대가 대부분으로 강원랜드나 호텔에서 근무했지만 나이를 이유로 경쟁에서 밀려나 사설카지노에 발을 담그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랜드서 호객
경찰조사에서 딜러들은 “국내 합법 카지노 규모로는 졸업자들을 다 수용할 수 없다”며 “생계유지를 위해 불법인 줄 알면서도 사설카지노에서 딜러를 보게 됐다”고 털어놨다. 또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정상 취업한 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졸업자들이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다”며 하소연했다.
이들은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도박 손님들과도 은밀하게 접촉했다. 우선 ‘롤링업자’가 강원랜드에서 호객행위를 통해 손님들을 끌어 모았다. 상습적으로 도박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굳이 멀리 강원도까지 와서 숙박비까지 내 가며 도박을 할 필요 있느냐”며 운을 뗀 뒤 대포폰 번호만 기재돼 있는 명함을 건넸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연락처를 제외한 최소한의 정보도 명함에 기재해두지 않았다. 이들은 “서울에서 강원랜드와 같은 조건에 무료 숙식과 식사 및 담배가 제공되는 사설 카지노가 있다”며 “적은 비용으로 재미있게 게임할 수 있다”고 도박자들을 현혹하고 유인했다.
귀가 솔깃해진 도박자들이 명함에 기재된 연락처로 전화를 해 오면 도박 자금을 미리 차명계좌로 입금 받은 후 인근 지하철역에서 만났다. 봉고차로 도박자들을 태운 후 주변 지역을 우회해 지하주차장을 이용, 사설카지노에 입장시켰다. 그 후 입금 금액만큼 칩을 건네 도박에 참여시켰다.
이들 사설카지노는 거실에 카지노 시설을 갖춰놓고, 주방에서 식사를 제공했다. 또 방은 여자 휴게실과 남자 휴게실로 나눠 운영해 이불과 매트리스를 마련해뒀다. 한마디로 입장과 동시에 ‘게임하고 먹고 쉬고 자는 일’ 모두가 가능했던 것. 원씨 등은 게임 중에서도 두 장의 카드를 더한 수의 끝자리가 9에 가까운 쪽이 이기는 게임인 ‘바카라’를 통해 수억 원대 수익을 올린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드러났다.
이들 도박장은 이런 방법으로 손님을 지속적으로 끌어 모아, 24시간 내내 문전성시를 이뤘다. 운영자 최씨는 “보통 20명에서 25명의 손님이 와 하루 평균 2000~3000만 원의 수입을 올렸다”며 “경찰이 15일간 잠복 수사를 했는데 감쪽같이 몰랐다. 이번 단속으로 강남일대가 쑥대밭이 됐다”고 말했다.
사채까지 손 대
이번에 적발된 도박장 이용자 중 32명은 무직이 16명으로 가장 많았고 가정주부 9명, 종업원 3명, 보험설계사 1명, 교사 1명 순이었다. 대부분의 이용자들이 강원랜드 등 합법 카지노에서 도박에 맛을 들인 뒤 롤링업자의 꾐에 빠져 불법 카지노를 출입 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관계자는 “카지노 이용객들 중에는 도박을 끊지 못해 사채까지 끌어다 써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빚진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경찰은 사행성 오락실 운영으로 자금을 모은 폭력배들이 강남권에서 불법 카지노 영업을 계속할 것으로 보고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B조직 폭력배들의 계좌를 추적, 불법 수입금을 모두 찾아내 몰수할 계획이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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