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해킹’ ‘자살’을 둘러싼 미스터리
국정원 ‘해킹’ ‘자살’을 둘러싼 미스터리
  • 박형남 기자
  • 입력 2015-07-27 11:18
  • 승인 2015.07.27 11:18
  • 호수 1108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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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민간인 사찰을 위해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도입했던 것일까. 국정원은 민간인 사찰은 없다고 말하지만 새정치연합에서는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해킹프로그램을 대북용으로 사용했다면 국정원 직원 임모씨가 자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100% 복구 가능한 파일을 삭제한 것을 두고도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윗선 개입’, ‘총선 개입’ 의혹 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야당에서는 국정원의 해킹 사건과 관련한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해킹프로그램 RCS 구매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 전 원장과 국정원의 구매 대리자 (주)나나테크 등을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구매를 둘러싼 의혹들을 총정리해 봤다.

- 언제, 왜, 누가, 어떻게… 그의 죽음이 수상하다
- 국정원 직원 “내국인 사찰 없었다”면서 극단적 선택 의문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국정원이 이탈리아의 전문 해킹업체 ‘해킹팀사’로부터 구매한 프로그램은 ‘RCS (Remote Control System)’다. 스마트폰이나 PC를 해킹해 이메일, 사진, 녹음 등의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 지난 9일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국정원의 위장 명칭을 발견됐다. 게다가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해당 업체를 통해 RCS해킹 프로그램 도입을 인정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상황이 이런 가운데 해킹 프로그램 운영을 맡던 국정원 직원 임모(45) 씨가 지난 18일 자살했다. 이로 인해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도입과 관련한 의혹들이 걷을 수 없이 번졌다.

민간인 사찰 의혹

이번 사건의 쟁점은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동원, 내국인의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에서 개인 정보를 빼내 불법 사찰을 벌였는지 여부다. 국정원은 이 프로그램의 구매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사찰 의혹은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해외·북한 정보 수집용이나 실험·연구용으로 쓰기 위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는 게 국정원의 주장이다.

하지만 야당 등에서는 불법 사찰 의혹을 제기하며 몇몇 의심스러운 정황을 제시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신경민 의원은 지난 19일 “이탈리아 해킹팀에서 유출된 파일 2개에서 이들이 2014년 3월4일 138개의 한국 IP로부터 데이터를 받았다는 로그기록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IP에 다음카카오, KT, 서울대, 부산대 등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또 국정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해킹팀 측과 주고받은 것으로 보이는 이메일에서 국내 포털 사이트 블로그 등에 해킹 프로그램을 심을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사항이 담겨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뿐만 아니라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 스마트폰 기기 등에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될 수 있는지를 국정원이 문의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 때문에 야권 등에서는 사실상 민간인 사찰을 한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이는 “해외·북한 정보 수집과 실험·연구용으로만 썼다”는 국정원 해명과 배치되는 증거가 될 수 있다. 특히 국정원 직원 임씨의 죽음 역시 ‘민간인 사찰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임씨가 남긴 유서에는 “정말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민간인 사찰이 없었다면 굳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100% 복구, 삭제 왜?

임씨가 자살 직전에 파일을 삭제한 사실도 의혹투성이다. 임씨는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 대북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자료를 삭제했다”고 유서에 남겼다. 국정원에서 20년간 사이버안보 분야 전문가로 일해온 임씨가 실수로 파일을 삭제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더구나 본연의 업무로써 유리한 증거가 될 수 있는 자료를 삭제했다는 주장은 오히려 의혹을 남기고 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이 직원이 4일간 잠을 안 자고 일하면서 공황상태에서 착각하지 않았겠느냐는 게 국정원의 설명”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임씨가 윗선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하던 중 오해를 일으킬 만한 내용이 포함됐을 수 있다.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기록을 공개하겠다고 말하자 임씨가 문제가 될 만한 것을 삭제, 증거인멸을 시도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윗선개입 의혹

해킹 프로그램 도입에서부터 자료 삭제 과정에서 줄곧 제기된 의혹 중 하나가 바로 국정원 윗선 개입 의혹이다. 이 대목에서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자기가 어떤 대상을 선정하고 이런 게 아니었다”며 “대상을 선정해서 자신에게 알려주면 기술적으로 이메일을 심는다든지 이런 일을 하는 기술자였다”고 말했다. 임씨가 스스로 기획하기보다는 지휘·통제하는 라인이 존재할 수 있다는 추론이 나온다. 실제 2012년 나나테크는 해킹팀에 보낸 e메일에서 “목표물 30개를 추가 구입하기 위해선 고객이 ‘보스(boss)’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나나테크가 지난해 1월14일 해킹팀에 “국회가 예산을 삭감했고 내부 사정도 있기 때문에 고객(국정원)이 제한된 예산만 쓸 수 있다”고 밝힌 대목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해킹 프로그램 구입과 운용이 국정원 차원에서 진행된 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자료삭제 등도 상부의 지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야당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국정원에서 자료 삭제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고, 국정원 자료는 국가기밀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정원 자료를 서버에 저장하면 열람 자체도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만 가능하다. 즉, 4급 기술직인 임씨가 윗선의 지시 없이는 자료를 삭제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얘기다.

특히 임씨가 자살 전 4일간 밤을 새워가며 국회 정보위 현장검증에 대비했다는 점도 윗선 개입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임씨가 이탈리아 해킹팀의 유출 자료를 서버에서 돌려보느라고 밤낮으로 일했다”며 “이는 현장검증에 앞서 점검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현장검증에 투입된 임씨가 해킹 관련 자료를 삭제하는 일을 담당했다면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했을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임씨가 실수로 대북·대테러 등 중요한 자료를 삭제했고, 이에 대한 감찰이 이뤄진 것이 압박요인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새정치연합 신경민 의원은 “임씨가 숨지기 전날 17일까지 미스터리한 4일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가 중요해졌다. 삭제 시점이 14일 정보위 이전인지, 이후인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보위에서 해킹 사건 문제가 불거진 이후 삭제했다면 조직적 은폐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거짓 신고 지시 의혹

자살한 임모씨의 실종 당시 가족에게 거짓 신고를 지시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져 논란이 되고 있다. 22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 관계자는 지난 18일 오전 8시쯤 임씨 부인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오늘 (임씨가) 왜 아직도 (사무실에) 안 나왔냐”고 물었고, 부인은 “이미 5시에 (출근한다며) 나갔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로부터 2시간 뒤. 국정원은 오전 10시까지도 임씨가 출근하지 않자, 예사롭지 않은 상황으로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국정원 측은 임씨에 대한 감찰반 조사가 예정된 10시가 되자 국정원 측은 부인에게 전화해 “즉시 경찰에 (임씨)를 실종신고를 해라”며 “(경찰에 말할) 실종 사유는 ‘부부싸움으로 집을 나갔다’ 정도로 하고 위치추적도 요청해야 한다”고 거짓 신고를 지시했다는 주된 골자다.

정보기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국정원 댓글 사건과 간첩조작 사건 당시 초동 대응 미비로 집중 비판을 받았던 국정원이 이번에는 무리하게 임씨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하다 비극을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며 “국정원이 직원의 신분을 숨기면서 향후 파장을 줄이기 위해 (거짓 신고 지시로) 사전에 물 타기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정원은 “사실관계가 다르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 출신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국정원과 부인의 통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임씨가 감찰반에서 조사를 받은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사건 정황을 물어보는 정도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혹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7122love@ilyoseoul.co.kr

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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