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연방대법원 합법화 판결…결정문에 공자 어록 언급
반대했던 대법관은 공자 어록을 유사철학으로 매도
[일요서울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6월 26일 대법관 9명 중 5명의 찬성으로 4개 주의 동성결혼 금지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함으로써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이번 판결에서 4대 4로 팽팽히 맞선 대결구도를 무너뜨리고 미국을 세계에서 21번째로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국가로 몰고간 사람은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었다. 그는 이번 결정문에서 “결혼보다 더 심오한 결합은 없다”며 “왜냐하면 결혼은 사랑과 신의, 헌신, 희생 그리고 가족의 최고 이상을 구현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동성커플 남녀가 이러한 결혼의 이상을 경시한다고 하는 것은 오해이며, 그들은 그것을 존중하며, 그것도 매우 존중한 나머지 그들 자신을 위해 결혼을 실현하고 싶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합법 이끈 케네디 대법관
그런데 케네디 대법관이 결혼이라는 제도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중국 성인 공자의 어록을 끌어다 결정문에 언급한 것이 미국과 중국 양국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케네디는 결정문에서 “인간으로서 처한 상황에 대해 갖는 결혼의 중심성은 그 제도가 수천 년 간, 그리고 문명들을 가로질러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놀랍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라고 결혼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결혼이 정치의 기초를 이룬다고 공자가 가르쳤다(“Confucius taught that marriage lies at the foundation of government.”)라는 영어 문장을 인용함으로써 느닷없이 공자를 끌고 들어갔다. 이 문장은 영국인 중국학자 제임스 레그(1815~1897)의 영어 번역문을 저본(底本)으로 1967년 출판된 영문판 『예기(禮記·영어 제목 ‘Li Chi: Book of Rites’)』 266쪽에 실려 있다. 케네디가 인용한 “결혼이 정치의 기초를 이룬다(愛, 其政之本與)”는 대목은 공자와 노나라 애공(哀公) 간 대화에 나온다.
케네디의 공자 인용에 대해 동료 대법관으로서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했던 안토닌 스캘리아가 당시 뼈있는 반박을 한 바 있다. 그런데 스캘리아가 케네디 주장을 법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은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케네디의 결정문에 등장한 공자 말씀을 깎아내린 것은 동양문화에 대한 단순한 무지를 넘어 동양을 얕잡아보는 서구인의 편견 표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미국 뉴욕 주 동남부 포키프시 시(市)에 소재한 바사르대학의 철학교수 브라이언 W. 반 노르덴이다. 동양철학을 오래 연구해온 노르덴 교수는 미국 최고의 지성이어야 할 대법관이 공자를 우습게 보는 것을 학자로서 좌시할 수 없어 최근 아시아·태평양 문제 전문 잡지 《더 디플로매트》에 동양문화를 옹호하는 글을 실었다.
노르덴에 따르면 스캘리아는 케네디를 반박하는 글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존 마샬(전 대법원장)과 조셉 스토리(전 대법관)의 규율 바른 법률 추론으로부터 점괘 과자(운수를 점치는 종이가 들어 있는 쿠키)의 신비주의적 격언으로 내려왔다”고 빈정거렸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세상은 시(詩) 또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유사(類似) 철학에서 논리와 정밀함을 기대하지 않는다. 세상은 법에서 그런 것을 요구한다.”
케네디의 공자 언급은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동성결혼이 온당한가를 놓고 새삼 한바탕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게이 가운데 90%가 자신이 게이임을 숨기고 이성과 결혼한다는 통계가 있는 중국에서 동성결혼은 아직 사회적 금기어다. (한국에서는 영화감독 김조광수와 김승한 부부가 동성간의 혼인신고를 거부한 서울 서대문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현재 심리중이다). 《인민일보》는 온라인 판에서 케네디가 공자를 들먹인 것에 대해 중국인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상하이 소재 퉁지(同濟)대학의 한 철학교수는 케네디가 공자를 왜곡했다며 유교를 신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성애를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케네디를 비판하는 중국 지식인들은 『주역(周易)』에서 전통적인 성(性) 정체성이 불변하는 우주원리라고 명시한 것을 들먹이기도 했다. 흥분한 중국인 사이에서 케네디가 문제의 구절을 잘못 해석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
노르덴 교수는 케네디의 공자 인용을 놓고 중국에서 갑론을박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이 스캘리아 대법관의 반박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에도 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공자 말씀을 “점괘 과자의 신비주의적 격언”으로 폄하한 것은 공자의 가르침을 일종의 허튼소리로 일축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면 무엇이냐는 것이다. 케네디가 결정문에서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의 말도 인용했는데, 스캘리아는 키케로에 대해서는 비방으로 간주될 만한 발언을 일절 내놓지 않았다는 것도 노르덴은 문제 삼는다.
어떤 사람에게서 “당신이 틀렸다”라는 지적을 받아 기분이 상했다고 해서 “내가 지식인인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고 반박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하지만 진정 합리적인 주장과 빈정거리는 식의 일축은 엄연히 다르다고 노르덴은 말한다. 그는 영국 목사 윌리엄 페일리(1743~1805)가 “빈정거림을 어떻게 반박하랴? 그런 식의 공격은 조사해 보지도 않고 처형하는 격”이라고 말한 것을 상기시킨다. 그는 수십 년 간 중국철학을 강의하고 옹호해온 학자로서 유교, 도교, 불교가 공부할 가치가 없는 이유를 제대로 대는 사람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면서, 만약 그런 사람이 있으면 자신은 그를 환영할 것이며 직접 당당하게 상대할 것인데 현실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조롱하는 듯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개탄했다.
스캘리아의 발언이 ‘오리엔탈리즘’의 표현이라는 것은 노르덴에게 슬픈 현실이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작가·평론가인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가 만든 이 용어는 “이집트에서 일본에 이르는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같으며 서방과 정반대”라고 보는 견해다.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인들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철학적인 반면 ‘오리엔트(동양) 사람들’은 열정, 미신, 그리고 소문에 의해서만 동기부여가 된다”고 본다.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을 받는 사람은 중국 원전(原典)을 실제로 읽거나 그 속에 든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중국, 인도, 중동 등 동양의 사상은 별것 아니라는 헛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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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