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에게 특별한 공간 제공해주는 낙원동의 그곳
노인들에게 특별한 공간 제공해주는 낙원동의 그곳
  • 장휘경 기자
  • 입력 2015-07-27 10:33
  • 승인 2015.07.27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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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서울뿐 아니라 근교에 사는 노인들이 낙원동으로 몰려들고 있다. 낙원동 일대는 경제적 역할을 잃어 소일거리 없이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노인들이 무료로 애용하는 탑골공원서부터 모던한 야외공연장까지 노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은 다양하며, 가격도 저렴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특히 낙원동 일대는 수십년간 박리다매를 추구하며 서민층 노인들의 얇은 지갑을 위로해주는 정다운 곳이다. 일부 노인들은 싼값도 싼값이지만, 추억을 찾아 낙원동 일대 골목을 누비곤 한다고.

 
낙원동 하면 탑골공원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무리를 지어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장기를 두는 노인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당산동에 사는 김일준(78)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이곳에 찾아와 하루를 시작하고 점심 때는 인근의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식사를 한다집에만 있으면 무료해서 죽을 지경인데 이곳에 오면 그 동안 사귀어 놓은 친구들이 많아 재미있다고 말하고는 허허웃었다.
 
탑골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다 지루하면 동쪽 낙원동으로 나오는데 그곳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가게들은 연일 노인들로 성황을 이룬다. 특이한 점은 노인들을 위한 장소라서 그런지 일하는 사람들도 거의 노인들이다.
 
낙원동엔 노인들을 위한 밥집, 술집, 기원, 영화관, 이발관 등 없는 것이 없다. 대개 적게는 7-8년에서 많게는 수십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는 곳들이다.
 
군데군데 모여 있는 밥집들은 아직 개발이 안 돼 허름하지만 음식 맛은 좋다.
 
낙원동엔 노인들 위한 공간 다양해
 
메뉴는 보통 해장국우거지탕콩나물국 등이며 가격은 2000원이다. 소주맥주막걸리도 한 병에 2000원이고 안주 가격은 3000~5000원 정도다.
 
이곳 밥집들은 대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휴일 없이 문을 연다. 조금이라도 더 팔기 위해서다. 또한 쓸데없이 낭비되는 식재료 값을 줄이기 위해 한두 가지의 음식만 만들어 팔고 가스 대신 연탄불을 사용하는 곳도 있다. 점포 임대료가 종로의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점도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낙원동에서 20년간 파고다부동산을 운영해온 김희철 대표는 탑골공원 담벼락 바깥에 밀집한 식당의 풍경은 수십년 전과 똑같다투자 수요가 적고 거래가 적어서 땅값이 오르지 않고 임대료도 오르지 않고 있다고 낙원동의 밥값이 싼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밥집들을 지나치다 보면 이발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광경이 눈에 띄는데, ‘이발 3500이란 간판 문구가 정겹다. 이곳 이발관에서는 세발 500, 드라이 2000, 염색 5000원 등 파격적인 가격으로 할아버지들의 머리를 단장해주고 있다. 이발관들 중 가장 깨끗하고 최신식 설비를 갖춘 곳으로 보이는 스타이발관에 들어서니 5명의 할아버지 이발사와 뒷일을 도맡아 해주고 머리도 감겨주는 아줌마가 웃으면서 반겼다.
 
자신을 헤어커트디자이너라고 소개하는 김창수 사장은 우리 집은 모든 염색약과 이발에 관한 제품을 공장에서 직접 가져오기 때문에 가격은 싸지만 품질이 좋다이발사들도 오랜 기간의 노하우를 가진 전문가라 실력이 뛰어나다고 자랑했다.
 
스타이발관 바로 옆에는 노인들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도시락집이 있다. 스스로 희망을 파는 가게라고 자평하는 도시락집 추억더하기카페는 식사와 음악을 즐기며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 오전 10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청년처럼 스포티하게 멋을 낸 할아버지 DJDJ박스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음악을 틀어주고, 70세 이상의 할머니 알바생들이 유니폼을 입고 음식을 서빙해주고 있다. 가격은 도시락과 잔치국수는 3000원이고 커피는 2000원이다. 하지만 식사와 더불어 커피를 시키면 1000원을 깎아준다. 여름에는 2000원에 팥빙수도 판매하는데 꽤 고급스럽고 맛있다.
 
이곳은 근무조건도 아주 괜찮다. 알바생 조연주 할머니는 사장님이 시급을 다른 곳보다 더 많이 주고 할머니들의 건강을 위해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2교대로 배려해줘서 즐기면서 일할 수 있다보통 식당은 술을 팔기 마련인데 우리 사장님은 기독교인이라 술을 판매하지 않아 건전한 분위기 속에서 일할 수 있어 매우 좋다고 신바람 난 듯 말했다.
 
추억더하기카페를 지나 낙원상가 쪽으로 가다가 왼쪽을 보면 렛츠고 노래주점이 보인다. 커다란 간판에 호프 500cc 2000(안주 무료)’라고 크게 씌어 있어 너무 저렴한 가격에 놀랐다. 올라가는 입구는 초라하지만 안에 들어가면 공간이 넓고 시설이 잘돼 있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노래 부르는 장소로 딱이다. 커피, 유자차, 생강차 등도 2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밥값, 술값, 영화값 등이 모두 2000원
 
낙원상가에 가면 입구에 부착된 실버영화관간판이 시선을 붙잡고, 안내판에 따라 4층으로 올라가면 2000원에 추억의 영화를 볼 수 있다.
 
2009년에 문을 연 실버영화관은 하루에 1000명 정도의 노인들이 이용하고 있다.
 
가뜩이나 노인의 문화가 없는 한국에서 실버영화관은 참으로 반가운 공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점은 노인연령을 55세 이상으로 지목하고 있는 점이다.
 
딸에게 이끌려 실버영화관을 찾았다는 김영철(57)씨는 “55세 이상은 2000원이고 재밌는 영화도 많이 한다고 해서 와보니 내 나이를 노인 연령대로 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실버영화관 김은주 사장은 “55세 이상이 노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55세 이상이면 은퇴를 하고 시간이 많을 나이니까 배려하는 차원에서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실버영화관은 서울시로부터 노인정책을 위한 우수한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어르신들의 눈높이에 맞는 전략으로 감동을 공유해 고령자 친화기업으로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실버영화관에는 무대도 마련돼 있고 로비도 있어서 영화뿐 아니라 행사나 쇼도 많이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은 노인의 사교장으로서 옛 친구를 만나게도 해주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도 해주는 곳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특히 실버영화관 앞에는 야외공연장인 <THE ART LOUNGE ‘멋진 하늘’>을 설비해놓아 시낭송 발표회나 공연 등을 할 수 있는데 시설이 굉장히 모던하고 참신했다. 바닥엔 인조잔디를 깔았으며 커다란 상영관도 설치해서 항상 공연이나 행사 등의 영상을 볼 수 있게 했다.
 
이곳에서 내려와 골목길에 들어서면 실버영화관의 김 사장이 한 달 전에 오픈한 어르신 뷰티살롱이 새롭게 자리 잡고 있다.
 
아름다운 100세를 만들자를 모토로 삼은 이곳에서 할머니들은 3000원에 헤어드라이를 하고 화장은 무료 서비스 받고 있다.
 
김 사장은 할머니들이 이곳에서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얻어 활력있는 삶을 찾고 젊은 여성들 못지않은 건강한 아름다움을 뽐냈으면 좋겠다모든 것을 나이 탓으로 돌리는 분들이 많은데 자포자기하지 않고 젊게 사시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매일 저녁때만 되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 있다. 바로 낙원동에서 가장 번화한 골목길에 위치한 호프집이자 바이고 레스토랑인 먹고 갈래 지고 갈래이다.
 
이곳은 1인당 1만 원만 있으면 식사를 하면서 흥겨운 분위기도 즐길 수 있어 좀 논다하는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은 다 모이는 장소다.
 
서울시로부터 착한가게 물가안정 모범업소로 표창받은 바 있는 이곳에서는 노인들이 색소폰 연주를 들으며 식사와 반주를 하다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곤 한다.
 
그리고 할머니할아버지들끼리 부킹(?)도 성사시켜 이성간 만남을 주선해주기도 한다.
 
먹고 갈래 지고 갈래와 같은 골목에 위치해 있고 비슷한 형태로 영업을 하고 있는 파고다 타운은 경제적으로 약간 여유 있는 노인들이 많이 간다.
 
이곳에서는 색소폰 연주를 하고 라이브 공연도 하지만 손님들이 직접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지는 못하게 돼 있다.
 
조용히 앉아서 술을 마시다가 부킹을 해주면 할아버지할머니들이 합석해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술은 주로 양주를 시키며 가격은 7~9만 원선이다.
 
파고다 타운에서 나와 건너편을 보면 사랑방 기원이 보인다.
 
지금까지 할아버지들이 있을까하는 의문을 안고 올라가보니 8시가 넘었는데도 바둑을 두는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오전 930분부터 저녁 9시까지가 영업시간이며 가격은 한 시간에 2500원인데 기원을 운영하는 사장은 불만이 많은 것 같았다.
 
사랑방 기원의 백만주 사장은 이쪽 라인에만 기원이 6곳인데 모두 3000원을 받고 있어 나도 올리려 했더니 2000원을 받는 기원이 생겨 올리지를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백 사장에 따르면 이곳을 찾는 노인들은 대부분 성품이 온화하고 조용한 편이다.
 
의정부에서 거의 매일 낙원동에 출근하다시피 한다는 최용석(82) 할아버지는 집에서 있자니 며느리 눈치가 보여 낙원동에 와서 소일하는 날이 많다그래도 어딘가 올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낙원동엔 노인들이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많다. 특히 탑골공원에서 하루를 보낸 노인들은 밤이면 인근 주막집에서 술 한잔 하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한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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