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서울에서 소위 ‘뜬다’ 하는 동네가 된 곳들의 자릿세가 폭등해 기존 상인들이 떠나고 있다. 유명세를 만들어낸 주역들이 유명세를 타자마자 쫓겨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이태원 경리단길, 서촌, 성수동, 삼청동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상인들과 건물주 간의 갈등이 벌어진 곳도 많다. 이에 [일요서울]은 뜨는 상권들을 중심으로 나타난 부동산 시장의 민낯을 살펴봤다.
임대료 급증 버겁다…젠트리피케이션 우려
지난 20일 [일요서울]이 찾아간 이태원 경리단길, 서촌, 성수동 등은 찾아온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변화의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경리단길의 경우 골목 어귀에 자리 잡은 상가들 중 군데 군데에서 공사에 들어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COMING SOON’, ‘임대 문의’ 등의 문구가 공사장에 걸린 채 기존의 가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서촌과 성수동의 상황도 비슷했다. ‘제 2의 홍대’라고 불릴 만큼 이색적인 분위기로 눈길을 끌게 됐지만, 자리를 비운 가게와 새로 들어설 준비를 하는 모습이 교차하고 있었다.
이들 동네는 3~4년 전부터 예술가와 젊은 자영업자들이 모여들면서 소위 뜨는 동네가 됐다. 기존의 도심 상권들의 비싼 임대료를 피해 저렴한 곳을 찾은 이들이 하나 둘 모여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된 것이다.
특히 경리단길은 유명 연예인들의 등장과 상권 진출, 방송 소개, SNS 등을 통해 순식간에 유명세를 탔다.
성수동은 낡은 공장지대였던 곳에 젊은 예술가들이 공방을 차리거나 소규모 카페,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의 가게가 문을 열면서 도시재생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이 중 디자인협동조합 ‘보부상회’는 디자이너들이 청바지 워싱 공장을 개조해 전시, 판매장으로 활용하면서 가장 눈길을 끄는 명소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새로운 명소가 된 곳들을 둘러싸고,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란 건물이나 거리가 정비돼 임대료가 오르면 기존 주민들이 밀려나는 것을 말한다.
최근 이들 상권은 높아진 인기만큼 올라간 임대료가 발목을 잡고 있다. 유명세를 일군 주역들이 높아진 임대료로 인해 떠나는 현상이 늘고 있는 것이다.
2~3년 전 3.3㎡당 권리금은 1500만~2000만 원대였으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직후부터는 6000~7000만 원대로 올랐다.
월세 또한 최근 5년 사이 20~30%가량 올랐다. 입소문을 타면서 2~3배는 기본으로 뛴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를 타고 들어오는 부동산 투자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기존 20~30억 원대 건물은 50억 원이 넘는 금액으로 거래되는 등 시세차익이 커지면서 건물을 팔고, 동네를 떠나는 건물주들도 늘어났다.
또 대기업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해당 상권에 입점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임대료는 더욱 높아졌다. 이들 상권 중 요우커와 동남아, 일본인 관광객의 방문이 잦은 곳은 이미 커피숍과 음료·요식업, 화장품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프랜차이즈 업체가 출점해 있다.
건물주와 갈등도
부동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임대료가 배로 오르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한 이들이 떠나거나 건물주들이 계약을 연장해주지 않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이태원 상권의 경우 임대료가 20% 가까이 오르는 등 강세를 보이고 있어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순식간에 명소로 부상한 만큼 각종 프랜차이즈들도 입점을 염두한 관심을 보인다”며 “특색을 잃고 정체기를 맞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부동산 시장 자체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운 상권이 뜰 때마다 이 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상권이 뜸과 동시에 대형 자본이 몰려들고, 임대료가 오르는 악순환으로 부동산 시장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1990년대 초반 최고 상권 중 하나였던 신촌은 지나친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서 결국 상권이 몰락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상권이 몰락하면서 치솟았던 임대료는 반토막이 나는 상황도 펼쳐진 바 있다.
가로수길 역시 마찬가지다.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일방통행 도로가 조성되면서 자연스럽게 가로수길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보증금과 월세는 각각 5배, 33% 이상 증가했다. 이와 동시에 가로수길에 입점한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이 늘고, 가로수길의 모습도 처음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를 겪게 됐다.
홍대 역시 주변이 지나치게 상업화되면서 변화가 찾아왔고, 이를 벗어난 상수동과 연남동 뒷골목이 새롭게 떠오르는 추세다.
이 같은 현상 반복으로 인해 상인들과 건물주 간의 갈등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성수동에 자리 잡은 디자인협동조합 보부상회는 결국 장사를 접고 문을 닫았다. 1년 임차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전 건물주로부터 계약기간 연장 요구 조건으로 월세 300만 원에서 10%를 더 올려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이들은 “월 30만 원이 적은 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협동조합의 매출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해마다 임대료가 올라간다면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합정동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일반 상가를 운영 중인 다수의 상인들도 “동네를 찾는 손님이 늘어도 커피숍, 이색맛집 등을 제외한 세탁소, 김밥집 등은 달라진 것이 없는 상황인데 임대료는 올라가고 있어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다른 상권에서 이 같은 일들이 일어났을 때 세입자들의 결말이 어떻게 됐는지 잘 알고 있어서 권리금을 한 푼이라도 더 챙길 수 있을 때 나가야 하나 싶다”고 덧붙였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