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파괴 인륜 파괴… 아물지 않는 상처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친족관계 성폭력범죄 가해자 수가 686명을 기록했다. 3년 전인 2006년의 331명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친족관계 성폭력 범죄 가해자수는 2006년 331명, 2007년 360명, 2008년 373건으로 꾸준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대책이 절실한 실정이다. 고소율도 2.2%에서 7.7%로 급등했지만 아직도 미미한 수준이다. 친족관계 성폭력은 4촌 이내 혈족과 2촌 이내 인척 사이에서 발생하는 강간 및 강제추행을 말한다. 가장 신뢰하고, 보호막이 되어주어야 할 관계에서 일어나는 친족관계 성폭력 범죄는 피해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한 사람의 인생은 물론 가족과 인륜을 송두리째 흔드는 친족관계 성폭력, 그 일그러진 실태를 들여다봤다. 한국성폭력상폭담소에 따르면, 지난해 성폭력 상담건수 1338건 중 201건(15.1%)이 가정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상담으로 집계됐다. 가정 내 성폭력 상담 201건 중 104건은 친족에 의해 발생했으며. 이 중 친아버지에 의한 성폭력도 50건으로 집계됐다.
장기적·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경향
A양은 지난 2007년부터 최근 6월까지 아버지에게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 가정불화로 이혼한 A양의 아버지씨는 술만 마시면 “딸의 얼굴이 이혼한 아내의 얼굴로 보인다”는 이유로 딸을 성폭행했다. A양의 나이는 불과 16세였다. A양은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가족은 물론 누구에게도 피해를 호소하지 못한 채 혼자 끙끙 앓아왔다.
급기야 A양은 아이를 임신하고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채 쉼터에서 출산했다. 그 후 아이는 입양기관에 보내졌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아버지의 파렴치한 행각은 그칠 줄 몰랐다. 아버지의 모습을 져 버린 짐승의 모습이었다.
A양의 남동생이 아버지가 A양의 치마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장면 등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해 질긴 악연의 고리가 끊기게 됐다. 반인륜적인 범행으로 구속된 A양의 아버지는 징역 10년이 선고됐다.
이처럼 친족관계 성폭력은 장기간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경향을 보인다. 가정 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가족 중 누군가 발견하지 않으면 중단되지도 외부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의 피해를 인지하고 해결하려는 사람이 부재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어진 상담인권국장은 “친족 성폭력은 아동기 때 발생해 중·고등학교 때 피해자들이 성폭력을 인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발생 후 인지할 때까지 장기간 지속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성폭행 사실 알고도 묵인해
일가족 모두가 10대 소녀를 짓밟은 사건도 있었다. B양은 11살이던 지난 2004년 영문도 모른 채 할아버지로부터 상습적 성추행을 당했다. 명절 때 집을 찾아온 작은아버지와 고모부도 성폭행으로 B양을 유린했다. 사촌오빠도 이에 가세했다. 이 뿐만 아니었다. 지난해부터 B양의 아버지는 딸을 이들로부터 보호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성폭행했다. B양은 일가족 5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재판부에 제출된 증거기록에 따르면 B양은 성폭행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다 중학교 2학년 때 성교육을 받다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충격에 휩싸인 B양은 용기를 내 할머니와 새어머니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절대로 신고하지 말고 참아라’는 것뿐이었다. 누구도 성폭행에 노출된 B양을 보호하거나 구해주지 않고 묵인한 것이다. 급기야 아버지까지 자신을 성폭행을 하자 참다못한 B양이 경찰에 신고해 인면수심의 범죄가 외부로 드러나게 됐다. 검찰은 가해자들에게서 반성의 기미를 찾아볼 수 없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친족관계 성폭력의 경우 가족 내의 권력이 크게 작용한다. 이 상담인권국장은 “가족 중 한 사람이 함부로 대하면 보호하고 구해줘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가담하기가 더 쉽다”고 말했다. 가령 가정에서 어머니가 폭력을 당하는 경우 자녀들이 어머니를 보호해주기보다 같이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법적으로 대응할 경우 가족들이 이를 지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지원해주기 보다 은폐를 권하며 가족을 유지하려는 절박함을 보인다”고 밝혔다. 또 다른 성폭력과는 달리 친족관계 성폭력은 여러 사람이 얽혀 있어 해결방법을 결정할 때 고려할 것이 많고 해결하기도 어려운 경향을 보인다.
가해자, 죄책감보다 보복심 갖기도
친족개념이 강한 한국문화 특성상 친족관계 성폭력 사건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또 신고를 하더라도 피해자와 가족들이 가해자로부터 또 다른 범죄에 노출된 위험성이 상당하다.
가해자는 가족을 성폭행해 고통을 안겨다 줬다는 죄책감 보다는 자신을 신고했다는 배신감에 사로잡혀 보복심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상담인권국장은 “가해자들은 형을 살고 나오더라도 가족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경로로 피해자를 추적할 수 있다”며 “최근에도 가해자들이 끊임없이 피해자들을 쫓아다녀 고통을 호소하는 상담이 여러 건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가 주소지를 다른 곳으로 해 놓고 지낼 수 있는 사회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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