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잠입 조폭 총집합 현장을 가다
단독잠입 조폭 총집합 현장을 가다
  • 사회부 특별취재팀 기자
  • 입력 2010-10-26 13:17
  • 승인 2010.10.26 13:17
  • 호수 861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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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한복판 어깨들 활개에 G20 앞두고 경찰 초긴장

한동안 잠잠했던 주먹계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오락실 등을 통해 자금력을 확보한 조폭은 범죄와의 전쟁 때 접었던 날개를 다시금 활짝 폈다. 참여정부 들어 검·경은 바다이야기 등 오락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 조폭은 대부분 검거됐고 남은 이들은 지하세계로 숨어들었다. 오락실에 대한 단속은 조폭에게 치명적이었다. 조직 운영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자금줄이 막힌 탓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여러 종류의 사업으로 영역을 넓혀 자생력을 갖춘 이른바 ‘전국구 조직’은 세력을 유지해 나갔다. 그 외에 자금줄이 막히거나 우두머리가 수감된 조직은 대부분 몰락의 길을 걸었다. 국민의 정부시절 부활의 조짐을 보였던 조양은씨의 양은이파와 김태촌씨의 서방파도 참여정부 시절 완전히 와해돼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그러나 최근 조폭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여기저기서 조직들이 세력을 키우고 있다거나 화해된 조직을 다시 재건하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얼마 전에는 G20 정상회담을 보름정도 앞두고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조폭들이 총집결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 자리에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경찰은 현장에 다수의 사복형사들을 급파해 동향을 살피게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 커플이 지난 20일 오후 1시경 강남에 위치한 R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A씨였다. 이 결혼식으로 인해 호텔과 그 주변은 혼잡을 이뤘다. 호텔 주차장 입구는 검정색 고급세단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로비에는 검정색 양복을 차려입은 일명 ‘깍두기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그들 특유의 ‘정중한’ 인사를 서로 교환하고 있었다. 이 광경만 봐도 결혼식 당사자가 어떤 인물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날 결혼식에는 일반인들조차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 인사들이 하나 둘 아니었다. 연예인들을 포함해 체육계 인사들도 눈에 띄었다. 주먹계 원로들도 다수였다. 명동 일대를 주름잡았던 신상사(본명 신상현), 아직까지 입김이 살아있는 것으로 알려진 구달웅, 영도파 두목으로 알려진 천달남 등등이 식장 상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날 하객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 칠성파 두목으로 알려진 이강환(67)씨였다. 이씨는 지난 4월 초 부산지역 건설업자를 협박한 혐의로 경찰에 전격 검거돼 검찰로 송치됐으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석방됐다. 이 사건은 국내 최대 조직 보스인 이씨의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꼽힌다.


한번 보스는 영원한 보스

이씨는 몸이 불편해 반드시 필요한 자리가 아니면 참석을 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참석하는 자리에는 항상 여러 명의 수행원이 동반해 그의 주변을 지킨다.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원로들과 함께 상석에 앉은 이씨 주변에는 건장한 남성 여러 명이 굳은 표정으로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야구해설자 하일성씨도 이날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하씨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

A씨는 대체 이 같은 거물급 인사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A씨 역시 주먹계 인사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이씨 등 거물급 인사들과 교류를 할 정도의 위치는 아니다. 그의 가족들도 평범한 일반인이다. 거물들이 모여든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A씨가 서방파 두목 김태촌씨의 최측근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미 여러 사건을 통해 수없이 언론에 이름을 올렸다. 출소한 이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장기 입원해 목숨을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기도 했다. 지금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결혼식 참석자 명단에는 수년전 폭력조직 운영자금을 댄 혐의로 구속된 적 있는 강남 유명 음식점 사장 B씨도 포함돼 있다. B씨가 구속됐을 당시 그 측근은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김씨와는 전혀 무관하며 조직 자금을 댔다는 소문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참석자들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B씨는 당시 주장했던 바와 달리 김씨와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조폭 부활 가능할까

식장 주변에서는 주먹계 동향과 관련된 여러 말들이 오고갔다. 그 중 귀를 솔깃하게 하는 것은 김씨의 조직 재건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날 참석한 한 주먹계 인사는 “김씨 주변에는 아직도 추종세력이 많이 있다”며 “오늘 결혼하는 신랑도 김씨를 따르는 이들 가운데 한명”이라고 말했다.

또 검찰의 한 관계자도 “김씨의 영향력은 아직도 살아 있다. 오늘 식장에 모인 하객들만 봐도 알 수 있다”며 “김씨 주변에서는 조직을 재건하자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이미 김씨가 서서히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아직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억측을 경계했다.

하지만 주먹계 일각에서는 김씨가 조직을 재건한다는 소문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다.

김씨와 한때 가까웠지만 지금은 다소 소원하다는 한 인사는 “김씨가 조직을 재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검·경이 김씨의 동향을 밀착감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조직 재건에 필수조건인 자금력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씨의 주변인들에 따르면 김씨는 특별한 수입원이 없는데다 건강이 나빠 조직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비단 물리적인 여건 뿐 아니라 김씨의 심리적 여건도 조직 재건 가능성을 희박하게 한다. 김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변신해 신앙생활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씨는 신앙생활을 통한 자신의 변화를 주변에 틈틈이 알려왔다. 이 처럼 공공연하게 ‘새 삶’을 강조해 온 김씨가 다시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그러나 이날 결혼식장의 광경은 김씨의 영향력이 살아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날 결혼식에 참석한 거물들을 두고 “대부분 김씨 손님”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이런 점에서 “김씨가 마음만 먹으면 세력을 다시 규합해 조직을 재건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행사 내세운 공식 모임

거물들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검찰과 경찰은 조폭들의 각종 경조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김씨의 경우 완전히 조폭세계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고, 김씨 자신도 조폭계와 완전히 교류를 끊었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김씨의 조직재건 소문이 솔솔 나돈데 이어 전국 조폭들이 그의 최측근 결혼식에 모여들자 검·경관계자와 김씨를 아는 이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조폭계 인사들이 총집결하는 경조사는 해마다 여러 건이다. 이 경조사는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조직에 관여하고 있는 인사들과 관련된 것이다. 조직을 완전히 떠난 인사와 관련된 행사에 이씨 등 거물급이 나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2007년 이씨 아들 결혼, 2009년 신 씨 딸 결혼, 같은 해 구씨 고희연 등등에 전국 각지의 수많은 주먹계 인사가 몰려들었다. 원로뿐 아니라 현역 보스들도 모두 모였다. 하지만 조직원 결혼식에 전국구 보스가 찾는 일은 드물다. 이에 검찰은 김씨가 아직 완전히 손을 씻은 게 아닐 수 있다 보고 수시로 김씨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김씨측은 이날 결혼식에 대해 “A씨의 결혼식 하객들은 대부분 김씨가 일일이 초대해서 온 게 아니다”라며 “A씨가 돌린 청첩장 등을 보고 찾아 온 것이고 김씨 역시 하객으로 참석한 것일 뿐 다른 조폭계 인사들과 만남을 위해 식장에 참석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김씨는 건강이 좋지 않아 이날 참석도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라며 “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주변인들이 오해할 소지도 있어 자리에 오래 머물지도 않았다”고 김씨측은 덧붙였다.

김씨측에 따르면 A씨 역시 평범한 삶을 사는 인물이며 현재 조폭과는 무관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한편 경찰은 결혼식 당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사복 경찰들을 곳곳에 배치했으며, 주요 인물들에 대한 동향을 세밀하게 파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부특별취재팀]


#하일성 해설위원 일문일답

- 지난 20일 R호텔에서 있었던 결혼식에 갔었다고 들었다.
▲ 호텔에 갔었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가?

- 김태촌씨 측근인 A씨의 결혼식에 참석한 것으로 알고 있다.
▲ 아니다. 나는 그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 결혼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당시 지방의 아는 지인을 그 호텔에서 만났을 뿐이다. 결혼식과는 무관하다.

- 김태촌씨도 결혼식에 참석했다고 하는데 같이 만나지 않았나?
▲ 아니다. 그곳에서 지인을 만나 강남의 ○○음식점에서 밥을 먹었다. (○○음식점은 김태촌의 측근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알려져 있음)

- 그 식당도 김태촌씨의 측근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건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잘 가는 식당이다. 그리고 나는 그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

- 김태촌씨와 요즈음 연락은 자주 나누지 않나?
▲ 내가 지금 식사하러 가는 중이라서 통화가 곤란하다. 나중에 또 연락하도록 하자.





사회부 특별취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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