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만남 빙자 채팅사기단
조건만남 빙자 채팅사기단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0-10-19 12:43
  • 승인 2010.10.19 12:43
  • 호수 860
  • 1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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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비 보내주시면 진심으로 가요”
유명 채팅 사이트에 채팅방을 개설해 조건 만남을 하자고 속여 돈을 가로챈 남녀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차비만 주면 잠자리를 하겠다고 남성들을 유인해 평균 2만 원에서 20만 원 사이의 돈을 계좌로 입금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남 창원서부경찰서는 지난 13일 인터넷에서 여성으로 가장해 ‘조건 만남’을 내세워 수십 명의 남성으로부터 수천만 원을 뜯어낸 이모(20)씨, 김모(20·여)씨, 전모(20)씨 등 3명을 구속하고 강모(20)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성별까지 속여 가며 사기를 친 이들의 범행 행각을 되짚어봤다.

“차비만 보내주시면 진심으로 가요”

한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 이같은 채팅방이 떴다. 무료한 차에 채팅이나 하려고 사이트에 접속한 J(23)씨는 이 제목을 보자 솔깃해졌다.

2명의 인원 제한이 있는 이 채팅방에 들어가니 채팅방을 개설한 여성이 곧장 말을 걸었다. “가출중인데 돈도 없고 갈 곳도 없다. 지금 PC방에 있는데 PC방 이용료를 내지 못해서 곤란한 상황이다”고 운을 뗐다. 이어 “차비만 보내주면 잠자리를 같이 하겠으니 계좌로 돈을 좀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이 말에 감쪽같이 속은 J씨는 이 여성이 알려준 계좌로 곧장 10만 원을 입금했다. 하지만 만나기로 한 이 여성은 얼굴을 보기는커녕 연락조차 닿지 않았다. 속았다는 것을 직감한 J씨는 경찰에 곧장 신고했다.


속아 넘어간 남성만 523명

J씨가 채팅방에서 만난 상대는 바로 이씨와 김씨, 전씨, 강씨로 구성된 남녀 채팅사기단이었다. 이들은 인터넷 채팅사이트에 “차비 보내주시면 진심으로 가요”라는 제목의 채팅방을 수시로 개설해 수많은 남성들을 현혹시키고 돈을 갈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씨와 김씨의 계좌로 피해 남성들의 돈을 입금 받아왔는데 J씨처럼 이들 일당에게 속아 넘어간 남성은 무려 523명. 이들은 총 990회에 걸쳐 3200만 원을 뜯어낸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이들 4명은 채팅방을 개설하고 여성 명의의 아이디를 사용해 여자인 것처럼 채팅 남성들을 감쪽같이 속여 왔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이 사용한 여성 명의 아이디는 게임을 하다 알게 된 여성의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이들이 이 여성의 연락처와 신상정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어 아이디를 도용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이들은 채팅을 하던 와중에 상대 채팅 남성이 성별을 의심하면 일행 중 유일하게 여성인 김씨가 전화를 해 의심을 잠재웠다. 채팅 남성에게 돈을 받기 위해 알려준 전화번호는 이들 4명 명의의 핸드폰 번호였으며 상대 채팅남성들을 직접적으로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들의 관계는 독특했다. 일당 중 남성 세 명 모두 김씨가 사귀었던 남자 친구의 친구들이었던 것. 때문에 경찰은 김씨 전 남자 친구의 사기행각 연루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 등은 편부모 가정으로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생활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중퇴했다. 이들은 고등학교 시절 빈번하게 가출하는 등 가출과 비행의 악순환 골에 빠졌다. 이들 중 전씨와 이씨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상습사기로 전과 5범이었다.


가출 후 생활비 마련 위해 범행

무작정 가출한 후 마땅한 직업도 없고 생활비도 떨어지자 전씨의 주도로 범행을 모의하게 됐다. 궁리 끝에 채팅사기를 하기로 결정하고 매일같이 PC방을 드나들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시작하게 된 범행이 손쉽게 이뤄지자 채팅사기를 계속했다. 이씨 등은 검거될 당시에도 PC방에서 채팅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씨 등은 지난해 6월부터 약 1년 4개월 동안 유흥비로 3200만 원을 탕진했다. PC방에서 하루 종일 채팅과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피곤하면 여관방에 머물렀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와 이씨가 애인 사이인 것으로 보인다. 이 둘이 동거하고 있는 여관방에서 전씨와 강씨도 함께 머물렀다. 이들은 사기 친 상당부분의 돈을 여관 투숙비로 지출했다”고 말했다.

이씨 등이 총 990회에 걸쳐 범행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피해남성들의 입금액이 비교적 적었고, 성매매를 전제로 송금한 것이 법에 저촉될 것을 우려해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씨 등으로부터 돈을 돌려받은 사람도 고작 3명에 불과했고 경찰에 신고한 사람도 단 한명 뿐이었다.

경찰은 이 같은 수법으로 활동 중인 사기단이 더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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