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 친아버지 살해사건 전모
충격 - 친아버지 살해사건 전모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0-10-05 13:11
  • 승인 2010.10.05 13:11
  • 호수 858
  • 3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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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해체·가정폭력이 살인자 만들었다”
이씨는 16㎡(5평) 남짓한 좁은 집에서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반영하듯 창문이 유리가 아닌 나무 판자로 막혀 있다.

술을 많이 마시고 술주정을 부린다는 이유로 친아버지를 살해하고 시신을 집안 장롱에 19개월 간 유기한 인면수심의 3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 고양경찰서는 친아버지를 폭행 후 목 졸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이모(30)씨에 대해 존속살해 등의 혐의로 지난달 27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2009년 2월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자신의 집에서 친아버지(63)를 살해한 후 사체를 김장용 비닐봉투로 밀봉해 19개월간 방에 은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씨와 함께 거주하는 누나(32)는 초등학생 저학년 수준의 지적장애를 앓고 있어 아버지가 숨져 화장했다는 이씨의 말을 의심 없이 믿은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사건이 발생한 지역은 노령 인구가 많은 평화롭고 한적한 마을로 현재 충격과 공포로 술렁이고 있다. 패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이씨의 인생사를 지난 20여 년 간 이씨 가족을 지켜봐 온 이웃 문모(59)씨의 이야기를 통해 들여다봤다.

이씨의 아버지는 덤프트럭 운전기사로 벌이는 신통치 않았지만 열심히 살고자하는 의지가 강한 성실한 가장이었다. 이씨의 부모는 적은 액수의 월급을 알뜰하게 모아 생활을 꾸려나갔지만 좀처럼 형편이 나아지질 않았다. 이씨의 어머니도 생활력이 강해 집에서 부업 등 소일거리를 하며 가정 살림에 보탬이 되어줬다.

이씨가 중학생이던 무렵까지 이씨의 가정은 화목하고 소박한 가정이었다. 이씨와 이씨의 아버지의 관계도 여느 평범한 부자처럼 돈독했다. 술을 유난히 좋아하던 이씨 아버지가 만취하면 당시 중학생이던 이씨가 마중 나와 업고 가곤 했다. 서로 안고 쓰다듬는 등 애정 어린 스킨십도 자주하는 다정한 부자사이였다고 문씨는 회상했다.

부모의 별거, 무너지는 가정

이씨가 고등학교 1학년 무렵, 이씨 가족에게 집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행신동 S아파트 107㎡(32평) 아파트 입주권이 생겨 가족 모두 꿈에 부풀었다. 이것이 이씨 아버지가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을 가질 수 있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잠시, 이씨 부모의 사이는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씨의 어머니가 성격차이를 이유로 별거를 요구했고 이로 인해 잦은 말다툼이 벌어졌던 것.

옥신각신 하던 이씨 부모는 이미 두차례에 걸쳐 중도금을 냈던 아파트를 포기하고 정산해 이씨 어머니가 일정 몫을 갖고 별거를 시작했다.

1300만 원 가량이 수중에 남은 이씨의 아버지는 이 돈을 모두 털어 중고 덤프트럭을 샀다. 당시 새 덤프트럭은 4000만 원 가량으로 이씨 아버지가 산 덤프트럭은 낡고 오래된 차였다. 또 집을 얻을만한 여유자금이 넉넉지 않아 보증금 50만 원, 월세 10만 원인 지금의 집을 얻었다. 골목 깊숙이 외진 곳에 위치해 쉽사리 찾아보기 힘든 이씨의 집은 방 두 칸을 갖춘 16㎡(5평) 넓이였다.

자녀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이씨의 아버지는 별거 후 1년간은 적극적으로 일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부모의 싸움을 여과 없이 지켜본데다 질풍노도의 사춘기시기에 부모의 별거를 경험한 이씨는 고등학교 1학년 무렵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문씨는 “부모님의 별거 후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씨가 고등학교 2~3학년 무렵 자퇴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자퇴 후 마땅히 할 일이 없어진 이씨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일용직으로 막노동을 했다. 이씨 아버지는 아들이 고생하는 것이 싫어 막노동을 만류했다.

1년여 가까이 가족을 부양해오던 이씨 아버지는 별거 후 마음을 다잡은 듯 보였으나 아내의 빈자리에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모질지 못한 성품인 이씨의 아버지는 아내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 있었던 것.

원래 술을 좋아했던 이씨 아버지는 속상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잦은 음주로 술 의존도가 높아져 벌이가 끊어졌고 생활정착도 힘들어졌다. 벌이는 없는데 이미 구입한 덤프트럭으로 인해 자동차 보험료, 세금 등 지출은 꾸준했다. 때문에 덤프트럭을 처분한 이씨 아버지는 이후 일을 손에서 놓고 술로 세월을 보냈다. 어려웠던 이씨의 가정형편은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아버지의 벌이마저 뚝 끊겨 악화를 거듭했다.


자퇴 후 방안에 틀어박힌 외곬

이씨 가정의 형편을 딱하게 여긴 동네주민이 이씨 누나에게 모자 공장 일자리를 소개시켜줬다. 이씨 누나는 이씨 어머니가 임신 당시 감기약을 먹는 바람에 이상이 생겨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지적 장애를 앓고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재봉일은 할 수가 없어 실밥 뜯기 등 허드렛일을 하며 한 달에 80만 원의 돈을 벌어 가정 살림에 보탰다.

반면 이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방안에 틀어 박혀 무협지와 만화를 읽으며 지냈다. 주위에서 일자리를 소개해 줬지만 이씨는 자신의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문씨는 “이씨가 이때부터 사실상 삶의 의욕을 잃은 상태였다. 대인기피증이 있어 사람 만나는 것을 경계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주사를 부리는 아버지, 지적 장애를 겪고 있는 누나 등 어려운 가정 형편을 비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회에 부적응한 자기 자신의 모습이 남에게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이웃들은 전했다. 더구나 기자가 만난 이웃주민들 중 대부분이 “이씨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좀처럼 집 밖에 나오지 않아 이씨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온순하고 예의 바른 성품이었던 이씨는 부모의 별거와 자퇴를 겪으며 폐쇄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문씨는 “방안에 틀어 박혀 있다 보니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 군대도 면제된 것으로 안다. 군대를 다녀왔으면 방 밖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씨 가족은 이웃과 사회로부터 철저히 고립되어 갔다. 이씨는 방 안에서 세상과 동 떨어진 채 살아가 친구도 애인도 없이 외톨이로 살았다. 또 이씨의 누나 역시 지적장애를 앓아 속내를 터놓고 말할 만한 친구가 전혀 없었다. 아버지도 지나친 음주에다 술을 사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돈을 꾸러 다녀 이웃들도 점차 외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집 밖 골목에서 소주를 마셨던 이씨의 행방이 묘연해졌음에도 이웃들이 의심하지 않았던 까닭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더구나 이씨가 주변 지인들에게 늦여름께 고향인 강원도 평창에 내려갈 것이라고 여러 차례 말해왔던 터라 이씨의 범행은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살해 후 김장용 비닐봉투로 밀봉

이씨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주사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씨의 아버지는 사회에 부적응하고 있는 아들을 안타깝게 여기며 “왜 이러고 사냐”“밖으로 나가 조그만 일이라도 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자주 말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아버지의 키를 넘어선 건장한 체격의 이씨는 이에 반발해 폭력을 행사했다. 이씨는 평소에도 아버지가 술을 먹고 술주정을 부리면 잦은 폭행을 했고, 함께 사는 누나 역시 폭행해온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결국 지난해 9월 2일 집에서 아버지를 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하기까지 이른 것이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죽이려고 때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때리다 보면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범행 이후 2~3일 간 장롱 속에 아버지의 사체를 유기했다. 하지만 사체가 부패하며 악취가 나자 김장용 비닐 봉투에 사체를 담아뒀다. 냄새가 날 때마다 지난 1월까지 지속적으로 비닐을 씌우고 테이프로 밀봉해 와 사체에 싸인 비닐이 총 50여 겹인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또 이를 감추기 위해 비닐로 밀봉한 사체 위에 이불과 옷을 덮어뒀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가을께 친척이 이씨의 집을 찾아 이씨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으나 지방에 내려갔다며 연락처를 모른다고 둘러댔다. 재차 이씨 아버지의 안부를 묻자 화를 내며 급격한 감정기복을 보였다.

올해에도 여전히 이씨의 아버지 행방이 묘연하자 의아하게 여긴 친척들이 이씨의 집을 찾았다. 하지만 현관문이 굳게 잠긴 채 열리지 않아 친척들이 이씨 집 바로 옆에 위치한 이발소에서 공구를 빌려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방은 자물쇠에 잠긴 채 폐쇄돼 있었다. 불안한 예감이 스친 친척들이 공구로 자물쇠를 열고 작은방 안을 살폈다. 장롱에 큰 비닐봉투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수상하다고 생각해 오후 2시께 경찰에 신고했다. 이씨는 친척의 신고로 19개월 만에 범행이 드러나 밤 11시께 집으로 귀가하다 검거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뚜렷한 직업을 가진 적 없이 무직으로 생활해온 데다 사람과 교제 없이 지낸 내성적이고 폐쇄적인 인물이다”며 “이씨의 아버지는 술을 매일 5병씩 마셔왔던 알코올중독자였다. 이씨는 아버지가 잦은 술 주사를 부려 목 졸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씨의 친척들이 집 근처의 Y 병원에서 이씨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가 살해되고 동생이 검거돼 오갈 곳이 없어진 이씨의 누나는 이씨의 큰 아버지가 맡아 돌보게 됐다. 아버지의 죽음을 뒤 늦게 알게 된 이씨의 누나는 오열을 해 동네 주민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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