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추적-신형전투화 불량일 수밖에 없는 이유
심층추적-신형전투화 불량일 수밖에 없는 이유
  • 윤지환 기자
  • 입력 2010-10-05 11:57
  • 승인 2010.10.05 11:57
  • 호수 858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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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의혹-막대한 개발비 낭비한 신형전투화개발사업
북한의 정세가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우리 군은 여전히 비리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어 국가의 안위가 우려스럽다. 북한은 노동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낙점한데 이어 핵개발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군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채 전투화 납품업체와 짜고 졸속으로 신형전투화 사업을 강행하는 등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새로 보급된 신형 전투화의 뒷굽이 떨어지고 물이 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군 내부에서 검사 기준을 완화해주고 품질검사도 소홀히 했기 때문인 것으로 국방부 감사결과 밝혀졌다. 국방부는 전투화 불량과 관련해 자체 감사를 벌인 결과 5명을 징계하고 이 가운데 제조업체와 결탁한 방위사업청 관계자 1명과 국방기술품질원 관계자 1명을 군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전투화 접착력 약화 물질에 대한 검사항목을 없애고, 접착력 기준을 제조업체의 요구대로 절반으로 낮춰준 것으로 확인됐다. 더 큰 문제는 신형 전투화의 불량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무시한 군 당국의 안일한 태도다.

국방기술품질원은 전투화의 국방규격을 검토하면서 접착강도와 방수도 시험을 제외하자는 의견을 제시해 불량품이 나오게 된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군 감사결과, 방사청은 국방규격을 제정하면서 전투화 접착력 약화 물질에 대한 검사항목을 누락시키고 접착력 규격을 제조업체의 요구에 따라 임의로 변경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군은 방사청과 기술품질원 등 관련기관과 전투화 제조업체가 결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군 검찰에서 추가 조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국방부는 “접착력에 대한 규격은 원래 39.2뉴튼(힘의 단위)이었지만 실무자가 임의로 20뉴튼으로 수정해 접착력 약화원인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군은 지난해 신형 전투화의 본격적인 보급에 앞서 신세대병사들의 체형과 한국의 전투 환경을 고려해 기존 전투화보다 무게는 줄이고, 방수성능은 4배나 향상됐다고 홍보했었다.


전형적인 전시행정 결과

또 방사청은 부대시험단계와 양산단계에서 각각 상이한 조달방법을 적용하고, 바닥창의 시제품을 제조한 트랙스타사의 기술이 관급 조달업체(재향군인회)에 제대로 이전되는지 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기품원은 시험기관인 한국신발피혁연구소에서 생산업체를 알 수 없도록 해야 함에도 생산업체가 시험기관에 직접 시험을 의뢰하게 해 결탁 의혹이 있다”며 “프로세스 검증을 직접 수행해야 하는데도 제조업체에 위임해 하자 발생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또 국방부는 “시험 후 양산, 납품된 제품에서 대량의 하자가 발생한 사실을 고려할 때 시험기관의 신뢰성에도 문제가 있고, 이 시험기관은 4년간 보관해야 하는 시료 및 검사 관련 기록 등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해 국방부는 현행 수의계약에 의한 업체별 물량배정 방식을 경쟁체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미흡한 관련 규격을 보완할 방침이다.

신형 전투화는 봉합식 제품으로 2008년 62만 켤레, 2009년 63만 켤레가 생산됐으며 올해는 40만5000 켤레가 생산되어 보급됐다. 하지만 정작 이 전투화들은 제대로 검증을 거치지 않고 보급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부 제화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을 “이미 예고된 사건”으로 보고 있다.

오랜 기간 전투화를 제작해온 A사의 한 관계자는 “신형전투화 개발 사업은 8년 전부터 진행돼 온 것으로, 지금의 이 모든 사태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탓”이라며 “사업 초기부터 업체들 사이에서는 분명히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신형전투화 개발 사업은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부터 여러 의혹이 불거졌다. 전투화 개발 경험이 없고 전투화 제작 기술력을 보유하지도 않은 업체에 막대한 연구비까지 지원하며 전투화 개발을 맡겼다. 업체 선정 과정에서 특정 업체의 특혜 의혹도 처음부터 제기됐던 사항이었다. 하지만 경쟁업체들은 입찰자격제한 등 보복조치를 우려해 사업자 선정 과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또 다른 업체 B사의 관계자는 “당시 전투화 제작 납품 사업자로 선정된 한 업체는 입찰 당시 사업자가 이미 폐지된 업체였다. 하지만 이 업체는 서류를 가짜로 꾸며 과거 사업자증명원 복사본을 제출하고 사업자로 선정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일부 업자들은 방사청에 신형전투화 개발 사업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하지만 방사청은 이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신형전투화 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정리한 서류를 방사청에 여러 차례 제출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다”며 “지금 신형전투화를 놓고 제기되는 여러 문제점이나 업체 선정의 불합리성에 대해서도 수년전 이미 모두 알렸던 부분이다. 그때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런 혈세낭비는 없었을 것”이라고 분개했다.

전투화를 제작해 해외로 수출하는 C사 관계자의 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지금의 신형전투화는 KC규격에도 없는 전투화다.


정치군인들 사라져야

C사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군인들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신형전투화는 애초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정치인들의 지시로 정치군인들이 신형전투화로 바꿀 계획이라고 말부터 흘렸다”며 “검토 개발 검사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신형전투화가 있다고 말했고 그 다음 아랫선에서 급급하게 사업을 진행했다”고 이미지 관리와 실적 내기에 급급한 정치군인들을 비난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군은 업체의 전문성을 따지지도 않았고 사업의 타당성도 전혀 따지지 않았다. 더구나 사업자 선정도 불투명하게 이뤄졌다. 더욱 가관인 것은 군 당국의 사건 뒷수습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일을 처리했던 실무자는 대부분 자리를 옮기거나 퇴직한 상태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군은 이번 사건을 야기한 당사자들에 대한 처벌은 없고, 전임자의 일을 넘겨받기만 한 애꿎은 해당 부서 직원만 징계 처벌하고 있다”고 군의 전시행정을 비난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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