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권 인정까지 소송만 4차례…미혼부 지원시설 0곳
개정안 발의 의원 “미혼부 인식 바꾸려 노력”
# 여덟 살 다은이(가명)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의무교육을 받아야 할 나이지만 다은이는 하루 종일 집안에서 혼자 시간을 보낸다. 미혼부인 아빠가 다은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주민등록번호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빈집에서 다은이를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이제 두 돌이 지난 사랑이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사랑이는 태어난 지 15개월 때인 지난해 8월 출생신고를 했다. 사랑이의 출생신고를 위해 미혼부인 아빠는 강남역 등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다행히 사랑이 아빠는 언론과 각계각층의 도움을 받아 법적으로 사랑이의 친부임을 인정받았다.
미혼부 문제가 공론화되기까지 가족관계등록법의 허점에 관심을 갖는 이는 드물었다. 법률이 개정되기 전에는 미혼부는 사실상 친부임에도 직접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 2항은 혼인 외의 출생자는 신고 의무자를 어머니(생모)로 규정하고 있다. 생모가 신고할 수 없는 경우에는 생모의 동거친족이나 분만에 관여한 의사나 조산사 등이 대리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모와 연락이 끊어진 경우라면 출생신고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다.
지금까지는 친부가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려면 네 차례의 소송을 거쳐야 했다. 첫 번째 소송은 미성년 후견인 선임 재판이다. 이는 아버지가 아이의 소송 대리인으로 적합한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후견인으로 인정받으면 다음은 성본(姓本)창설 재판이다. 이는 아이의 성씨와 본관을 창설하기 위한 소송이다. 아이의 성본이 만들어지면 가족관계등록부 창설 재판이 이어진다. 이 재판에서 승소해야만 아이의 주민등록번호가 생성된다.
이후엔 친자 유전자 검사 후 인지청구 소송과정이다. 모든 소송 중에서 인지청구 소송이 제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대개 이 과정에서 친자관계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인지청구 소송에서는 아이와 관련된 증인들이 모두 재판에 출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아이의 생모를 찾을 수 있는지 여부를 알아야 하고, 증인들이 출석하지 않을 시엔 구인장을 발부하는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소송을 아무리 빨리 진행해도 이 과정까지 걸리는 기간은 최소 2년이다.
출생신고보다
유기가 더 쉬워
소송 외에 생부가 신고할 수 있는 방법은 생모와의 혼인관계증명서를 제출하는 방법이다. 만약 생모가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되지 않은 경우라면 생모에게 배우자가 없음을 증명하는 공증서면이나 2명 이상의 인우보증서를 제출해야만 한다. 인우보증서는 특정 사실에 대해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 이를 증명하는 서식이다. 생모를 찾을 수 없는 경우라면 출생신고 자체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출생신고를 할 수 없으니 아이는 의료비나 보육비, 양육비와 같은 정부지원은 일체 받지 못한다. 출생신고 의무자가 임의로 출생신고를 기피해도 과태료 5만 원이 부과될 뿐 별다른 제재방법이 없다. 그렇다보니 미혼부들은 “아이를 버린 뒤 입양하는 것이 더 쉬운 방법”이라는 조언 아닌 조언을 받는다.
유기된 아이를 뜻하는 법률용어인 기아(棄兒)로 발견될 시엔 성본창설 재판만 거치면 곧바로 주민등록번호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이후 입양을 대기하거나 친부의 인지를 받으면 된다. 실제로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유기하는 사례 중에는 ‘생모의 사망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없게 됐다’는 사연을 남긴 경우도 있다.
이 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가족관계법은 50여 년간 변함없이 유지됐다. 하지만 최근 미혼부들이 친권 획득에 나서면서 마침내 법률은 개정됐다. 오는 11월부터 미혼부도 혼외자녀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은 가족관계법 개정안인 일명 ‘사랑이법’을 대표 발의했다.
서영교 의원은 “재판을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소송비용도 적지 않기 때문에 아이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그냥 키우는 경우도 많다”며 “그간 이 문제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민원을 제기할 여유도 없이 사는 소외된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사랑이법’은 4번의 재판과정을 1번으로 줄인 것이 특징이다. 대법원이 지정한 기관에서 유전자 검사를 한 뒤 가정법원에서 아버지임을 확인받는 소송을 한 차례만 진행하면 된다. 최소 2년이 걸리던 과정은 빠르면 3개월, 늦어도 6개월 내에 마칠 수 있다.
서 의원은 “아버지가 맞는지를 소송으로 확정해야 친생자 관계를 파기할 수 없다”며 “혹시 다른 소송이 들어오면 친생자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지만 재판으로 관계를 확정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 의원의 ‘사랑이법’ 이후 새누리당 민현주 의원도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지난 4월 대표 발의했다.
서영교 의원은 “앞으로 미혼부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미혼부가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양육수당 지급이나 직장 내 휴가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자가정 시설도 부족
미혼부 문제가 공론화됐지만 여전히 이들에 대한 지원은 미미하다. 미혼부는 미혼모에 비해 일정기간 동안 주거와 생계를 지원해주는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2015 여성가족부 자료에 따르면 미혼부자 가족시설은 전국에 한 곳도 없다. 이는 미혼모자 시설 58곳과도 비교된다. 부자가정도 마찬가지다. 2013년 기준으로 한 부모 가족시설 121개소 중 부자가정 복지시설은 3곳에 불과했다.
부자시설인 구세군 한아름 측은 “일반적으로 아빠는 일할 수 있는 근로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