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집세, 인간관계의 확장 등 하우스메이트 장점 많지만…
악용한 사례 늘어…신원 확인 등 철저히 주의해야
지난해 9월 취직에 성공한 A(여·29)씨. 취직만 되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경상남도에 거주하던 A씨는 직장이 서울인 관계로 급하게 살 집을 마련해야 했다. 자신의 여유자금으로 마땅한 집을 마련하는 데 실패한 A씨는 ‘셰어하우스’를 구하기로 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셰어하우스는 한 집에서 여러 사람들이 방을 각자 쓰는 형태로, 쉽게 말하면 ‘집 공유하기’다. A씨는 일단 하우스메이트와 집을 공유하는 게 급한 불을 끌 수 있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을 구할 수 있는 모 사이트에 들어간 A씨는 자신의 직장과 가까운 집을 고르는 데 성공했다. 집 주인과 메시지 연락으로 집의 사진과 정확한 위치를 알게 됐다. 계약 하기 전, 집을 직접 보려고 나갔다가 놀란 가슴을 부여잡아야 했다. 집 주인이 30대 남자였고, 하우스메이트들 역시 다수가 남자였기 때문이다. 결국 A씨는 셰어하우스 대신 여성 전용 고시원을 택했다.
또 다른 여성 B(여·28)씨는 얼마 전 하우스메이트를 구하는 사이트를 방문하고 깜짝 놀랐다. 월세를 받지 않겠다거나 공과금을 포함, 10만원만 받겠다는 글을 쓴 작성자가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글 작성자가 집을 공유하고 싶은 대상자가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그저 한 방을 쓰고 애인처럼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설명이 글 아래 덧붙어 있었다. B씨는 당시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하우스메이트 문화 확산
최근 들어 셰어하우스가 주거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에게 각광받고 있다. 전세 값이 폭등 하고 집주인들이 전세에서 월세로 돌리는 비중이 높은 사회 환경은 셰어하우스의 확산을 가져왔다. 또한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 다양한 인간관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인기 비결이다.
중·장년층에게도 셰어하우스는 인기가 있다. 다양한 이유로 혼자 살게 된 중·장년층이 하우스메이트를 구하는 사례가 증가한 것이다. 서울 성북구에서 자신의 아파트를 셰어하우스로 활용하는 C(여·67)씨는 자식과 떨어져 지낸 지 오래다. C씨는 하우스메이트와 ‘함께하는 삶’을 통해 외로움을 달랜다고 전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D(남·43)씨도 하우스메이트를 구했다. 아내와 중학생 아들이 필리핀으로 조기유학을 떠난 뒤, 20대 남학생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다.
하우스메이트…본래 목적과 다르게 변질돼
하지만 최근 들어 셰어하우스에서 함께 사는 하우스메이트의 본래 의미가 변질된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하우스메이트와 관련된 사이트에서 동거녀·동거남을 구하기 위한 글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모 사이트에선 ‘용돈을 줄 누나를 찾는다’는 글이 버젓이 올라왔다. 혹은 A씨와 B씨의 사례처럼 자신이 남성인 것을 숨기고 여성 하우스메이트나 룸메이트를 구하거나, 대놓고 ‘애인처럼 지낼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는 글이 올라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관련 사이트를 분석한 결과, 전체 게시글 5766건 중 ‘상대방의 성별이 이성이었으면 한다’는 게시글은 7월 9일 목요일 오후 4시 30분을 기준으로 4162건에 달했다. 또한 여성만 작성하고 이용할 수 있는 여성 전용 게시판에 자신의 성별을 설정하지 않고 게시글을 올린 건수는 21건이었다. 단, 남성 전용 게시판에 여자가 올린 글은 모두 ‘하숙’을 위함이었다. 결국 동거를 위한 글이 사이트 내 전체 글에서 약 72%의 비중을 차지했다.
범죄 위한 창구로 활용
문제는 이런 변질된 문화가 범죄를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2013년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금전적 여유가 없던 E(여·29)씨는 월세를 아끼려고 온라인 직거래 카페에서 만난 F(남·31)씨와 하우스메이트로 지내왔다. 사건은 2012년 2월 말에 터졌다. 우연히 F씨는 속옷을 입지 않은 E씨를 보게 됐다. F씨는 E씨에게 성폭행을 시도했고, E씨는 당시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하우스메이트와 관련된 성범죄의 전형적인 사례다.
하우스메이트 범죄 사건을 담당했던 L 법무법인의 한 관계자는 “하우스메이트와 관련된 범죄 사건의 증가율은 정확한 기관 매체를 통해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 다만 2013년 이후 이와 유사한 사례의 상담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실제 유사사건을 맡아 진행했다”며 “개인사정 및 보복의 두려움 등으로 사건화 되지 않은 사례가 상당하다”고 언급했다. E씨와 유사한 하우스메이트 범죄 사건이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용 창구의 관리 등 범죄 예방해야
한편 하우스메이트 문화가 처음 시작된 해외에선 이런 사례가 드물다. 독일, 호주, 캐나다 등의 경우 하우스메이트가 오래된 제도다. 현지에선 제도가 잘 안착됐다는 평이 주다. 캐나다에서 1년 간 워킹 홀리데이를 했던 G(여·27)씨는 “하우스메이트와 관련된 문제점을 캐나다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캐나다의 경우 ‘Craig`s list’란 사이트에서 집을 구할 수 있다. 이 사이트는 주거뿐만 아니라 직업, 물건 구매 등 다양한 범주의 공유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이트 관리가 철저할 수밖에 없고, 하우스메이트가 왜곡된 현상으로 나타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는 하우스메이트 범죄가 점점 많아짐에 따라 사이트를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씨 사건 이후 일부 부동산 직거래 카페에서는 여성 회원이 올린 글은 남자 회원이 아예 볼 수 없게 차단했다. 하지만 여전히 관리가 미흡하다고 전문가들은 평한다.
L 법무법인 관계자는 “현재로썬 상대방의 신분을 철저하게 알아보고 집을 계약하는 게 최선”이라고 언급했다.
김현지 기자 yon8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