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차별없이 제 능력 인정 받아야”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21세기, 여성인력의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우리나라는 남존여비 사상이 잔존하며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여전하다. 이에 미래사회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이끌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입각해 여성이 사회의 주체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역사적 사례를 짚어본다.
“여성상위시대라고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기자가 미처 질문을 끝내기도 전에 ‘여성상위시대’라는 말을 꺼내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수현 박사는 의아한 듯 응답했다.
여성대통령을 배출한 한국임에도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여성이 정책결정권을 행사하는 고위직에 진출한 사례는 적은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여성국회의원 비율이 15.7%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4급 이상 관리직 여성공무원의 비율도 아직 높지 않고요. 인사혁신처 통계에 따르면 2010년 7.4%에서 지난해 11%로 늘었을 뿐입니다.”
맞다. 분명 여성의 사회적 파워는 커졌지만 진정한 ‘여성 상위시대'가 실현됐는지는 의문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여성의 사회참여도 평가에서 한국은 3년 연속 평가대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국 중 꼴찌를 기록했고, 한국 1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2% 미만에 그친다.
비록 요즘 여성의 대학 진학률(통계청, 74.6%)이 남성(67.6%)보다 높고 직장여성(통계청, 2014년 여성고용률 49.5%)들도 많은 만큼 사회적 지위는 확실히 상승했으나 딱히 여성상위시대라고 단정짓기에는 시기상조인 듯싶다.
얼마 전 ‘여성공무원의 비율이 50%에 육박해 내년부터 공무원 여초(女超)현상이 나타날 전망’이라는 기사가 나가자 여성을 비하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누리꾼들은 “대통령부터 여자가 설쳐대니 나라가 이 모양이지!”, “남자경찰들이 범인을 잡으면 뒤따라가 수갑만 채우는 게 여자경찰들이다”라는 등의 글들을 서슴지 않고 올렸다.
집안에서도 성차별의 벽을 상징하는 유리천장(glass ceiling)을 깨기엔 아직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크다.
외국인 물류회사에 근무하는 김미영(34)씨는 결혼하고 보니 엄마가 왜 이혼했는지 알겠다며 깊게 한탄했다.
“남편하고 똑같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데, 남자들은 어쩜 그렇게 이기적인지 모르겠어요. 전 보통 3시간 이상 집안일을 해요. 주말엔 1시간가량 더 밀린 집안일을 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평소 한 40분 정도 집안일을 하고 주말엔 골프다 테니스다 하면서 밖으로만 떠도네요.”
오산대 사회학과 이현진 교수는 남성의 공개적인 경쟁의 장에 여성들의 참여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가정을 여성의 고유영역으로 국한시키려는 관념이 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릉대 역사학과 권순형 교수는 모든 시대, 어떤 사회도 남성우위라는 것이 당연시돼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류학 연구가 진전되면서 이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함을 강조했다.
“경제의 발전에 따라 모계제에서 부계제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는데 옳지 않다고 봅니다. 현존하는 수렵채집사회를 보면 모계제보다 부계제사회가 많으며, 모계종족이 부계종족보다 경제적으로 더 발전한 경우가 많습니다”
미래사회 주인공은 여성
인구의 절반은 여성이다. 아마 남녀 양성의 협조가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그 흐름이 정지되었을 것이며 인류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여성이 수행해온 역할은 남성 위주의 사회 속에서 저평가돼왔다.
우리나라 전통시대 여성들은 많은 봉건적 제약을 받아왔지만 주체적 관점에서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삶을 추구했고 새로운 사회변화에 부응해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했다.
앞으로 미래사회의 주인공은 현 시대상황을 고려해볼 때 분명히 여성일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남녀가 대등한 위치에서 공존하며 세상을 이끌어갈 때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따뜻한 인간사회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고대사회에서 여성은 자녀의 출산과 양육 그리고 생활의 기본이 되는 의식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아울러 결혼이나 경제활동 측면에서도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자유롭고 주체적인 생활을 영위하기도 했다. 고려시대까지도 여성은 재산상속권, 가계상속권, 제사상속권 등에서 남성과 별다른 차별을 받지 않았음이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들어서면서 유교적 체제를 공고히 유지하기 위해 여성들의 권한과 지위를 축소시키고 엄격한 부덕을 요구하며 가정 안으로 여성의 생활을 제한했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조선시대 때 어느 시기보다 문화활동이 두드러졌다. 이들은 깊은 심지와 강인한 의지로 유교적 지배논리를 극복해나갔다. 비록 직접적으로 공식교육의 수혜는 받지 않았지만 스스로 자신의 글을 남겼던 여성, 또는 높은 예술적 경지에 도달한 여성, 성리학ㆍ실학에 조예가 깊은 여성지식인들이 많이 배출되었던 것이다.
한국역사 속 3명의 여왕 모두 특수한 정치적 감각 발휘
한국역사 속에는 3명의 여왕이 존재한다. 모두 신라시대 여왕들인데 이들은 모두 국가적 위기 때마다 등장해 정치적 어려움을 수습했다. 여왕들의 통치시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성으로서의 특수한 정치적 감각을 가지고 유연하게 정국을 풀어나갔던 점이 돋보인다.
27대 선덕여왕과 28대 진덕여왕은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서 슬기로운 지혜와 유연한 외교력으로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신라 말 51대 진성여왕은 중앙의 권력쟁탈전으로 인해 신라의 국력이 약화되어 갈 때 구원의 지도자로 등장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무한히 내재된 강인한 힘이 있음을 확신할 필요성이 있다. 어디에서나 여성들 스스로 주변으로부터의 압박을 당당히 이겨내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새로운 여성상을 모색해봐야 할 것이다.
오산대 사회학과 이현진 교수는 아직까지도 정치분야에서의 여성진출이 활발히 이뤄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남성들과의 공개적인 경쟁의 장에 여성들의 참여가 점점 많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성들의 능력에 대한 불신으로 여성들이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성들이 남성과의 차별 없이 온전히 제 능력을 인정받고 사회적 지위향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성들 자신의 능력개발, 투철한 직업정신도 중요하지만 전반적으로 사회적인 인식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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