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안정성 논란이 제기됐던 두통약 게보린(삼진제약)과 사리돈(바이엘제약)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남아 있는 모습이다. 건강한 사회를 위한 약사회(이하 건약)는 이소프로필안티피린(이하 IPA)가 함유된 이들 의약품이 혈액 관련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게보린과 사리돈의 성분을 재평가한 결과, 부작용을 입증할 수 없다고 판단해 시판을 유지하도록 결정했다. 그러나 정부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선 “복용 안정성 의혹이 깨끗하게 해소되기엔 이번 재평가의 부족함이 많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어 문제가 된다. 소비자들 입장에선 시간이 지날수록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분위기다.

시민단체 “여전히 해소해야 하는 의혹 넘쳐난다”
IPA 제제의 안전성 논란은 2008년 건약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건약은 “IPA 성분은 미국에서는 허가되지 않았으며 재생불량성빈혈 등 혈액 관련 부작용 등으로 아일랜드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사용금지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 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부작용 사례가 많지 않아 퇴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건약과 국회 등지에서 IPA 성분 의약품에 대한 안전성 조사 요구가 거세졌고 결국 2011년 IPA 의약품 판매 기업들은 안전성 입증조사 연구를 진행해야 했다.
아울러 해당 연구를 위탁받은 대한약물역학위해관리학회는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충남대병원, 전남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동아대병원 등에서 환자-대조군 임상 연구를 실시했다.
그리고 올해까지 3년간 지속된 연구 결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IPA를 함유한 ‘게보린정’과 ‘사리돈에이정’ 등의 일부 주의사항을 수정하는 선에서 시판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개된 재평가 결과에 따르면 의약품 사용시 주의사항에 ▲심한 혈액 이상 환자 ▲심한 심장기능 저하 환자 ▲바르비탈계 약물, 삼환계 항우울제를 복용한 환자 ▲알코올을 복용한 사람은 복용하지 말라는 내용이 추가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이 같은 결정은 임상 연구에서 IPA가 재생불량성빈혈 등 혈액학적 문제를 일으킨다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 배경이 됐다. 이로써 IPA는 문제가 제기된 바 있는 호흡곤란, 혈관부종, 어지러움 등 일부 부작용 위험에서 벗어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던 재평가는 건약의 재반박으로 이어져 여전한 의혹을 남기고 있다. 건약 관계자는 “재평가 과정에서 모집된 사례가 너무 적고, 해외 판매 실정에 대한 조사도 부족했다. 앞으로도 몇 년간의 시간을 두고 안정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건약은 이번 연구 결과 보고서가 몇 가지 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고 의문 부호를 달았다. 첫 번째는 제제 부작용 범위에 대한 부분이다. 건약에 따르면 IPA와 유사한 피라졸론계 약물들은 발암, 혈액질환 유발로 전 세계적으로 시판이 금지됐다.
또 IPA 또한 혈액학적 부작용뿐만 아니라 인지기능저하, 경련, 부정맥, 심인성 쇼크 등의 다양한 부작용에 대한 논란이 있다. 하지만 보고서는 무과립구증과 재생불량성빈혈이라는 혈액학적 부작용에만 초점을 맞추고 다른 주요한 부작용을 검토하지 않았다.
두 번째, 해외 판매금지 및 사용현황에 대한 조사가 의아하다는 목소리다. 재평가 보고서는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에서 안전문제로 게보린 제제가 퇴출되었다는 WHO (세계보건기구) 보고서를 언급하면서도 시판 회사에서 이를 부인한다며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팽팽한 의견 대립
이와 관련해 건약은 “각각의 국가 보건당국이 제출한 보고서를 근거로 작성된 WHO 자료를 믿지 않고 회사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라며 “게보린 제제의 안전성 문제를 판단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되는 해외 상황자료가 이처럼 흐지부지 된 것은 본 보고서의 큰 맹점”이라고 덧붙였다.
시판이 안 되고 있는 국가에 대한 판단도 의심스럽다는 점도 제기했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제약사에서 식품의약국(FDA)에 아예 허가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FDA는 회사 기밀을 이유로 개별 약물에 대한 허가 신청 유무를 알려주지 않고, 아예 허가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제약사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건약의 견해다.
마지막으로 연구의 한계 지점을 말했다.
건약은 “이번 연구는 데이터마이닝과 생태학적 연구, 환자-대조군 연구 세 부분으로 진행됐다. 데이터 마이닝은 식약처의 자발적 부작용 보고 자료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총 약물 부작용 보고 중 0.16%만이 게보린제제 보고 건이었다는 점과 한국에서의 낮은 부작용 보고율은 데이터 마이닝 기법이 본질적인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생태학적 연구는 게보린 제제의 판매량과 부작용 발생률과의 상관성을 본 것인데 해당 질병은 WHO에서도 인정하듯이 발병률이 매우 낮은 질환으로서 개인에서의 약물 노출 결과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다.
또한 이들은 IPA 위험 논란으로 사용량이 급감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연구 방법의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환자-대조군 연구가 진행되었던 점도 연구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건약은 “보고서의 한계를 보완한 추가적인 안전성 정보 수집과 연구가 계속되어야 한다. 연구에서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중대한 유해사례가 8가지나 발견됐다”면서 “지난 10년간 12억정이나 판매된 의약품의 제대로 된 정보가 제조사는 물론 식약처에도 없었던 일이다. 의약품 부작용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항상 ‘현재형’이어야 하는 이유다”라고 자신들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다만 해당업체는 건약의 주장이 터무니없고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해당 의약품을 제조, 판매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건약의 주장은 이미 몇 년 전 모두 증거를 가지고 반박한 부분들이다”면서 “그런데 이제 와서 또 다시 반복된 지적을 하는 것이 이해가지 않는다”고 맞섰다.
아울러 “시민단체와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 이미 우리는 너무 부정정인 이미지 타격은 입은 상태로, 당국에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을 내려줬기 때문에 우린 우리 나름의 안정성 홍보 등의 길을 가겠다”고 선을 그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