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측근행세 ‘대기업도 속았다’
국내와 해외에 유령회사를 차려놓고 대통령과의 친분이 있는 해외기업가로 사칭해 국내 기업가들로부터 수 억여 원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경찰청 외사국은 지난 9월 19일 사기 등의 혐의로 차모(50)씨 등 2명을 구속하고, 김모(42)씨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차씨 등은 카자흐스탄 석탄광산 개발 참여를 희망하는 국내외 기업가들로부터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지급보증서 발급 명목으로 모두 3억 6000여만 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대통령과의 친분까지 사칭해 수억 원대의 돈을 편취한 차씨의 기막힌 사기 사건의 전모를 알아봤다. 차씨가 국내외 기업들을 상대로 주도면밀한 사기행각을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내 대기업 A 그룹을 참여시킨 카자흐스탄 국영기업 S사와의 석탄광산 개발 관련 양해각서와 대통령과의 친분 사칭이 큰 역할을 했다.
대통령 이름 팔아 사기 행각
차씨는 카자흐스탄에서 규모가 작은 무역업체를 운영하는 B씨에게 접근, 수차례 만나며 친밀감을 형성했다. B씨가 국내의 대기업인 A 그룹 간부의 친척인 사실을 알아내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차씨는 능수능란한 거짓말로 국내외 성공한 사업체를 가진 재력가로 행세하며 B씨의 환심을 샀다.
어느 정도 B씨의 신임을 얻었다고 판단한 차씨는 B씨를 매개체로 이용해 A 그룹을 끌어들이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카자흐스탄 자원 개발에 필요한 자금 1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라고 운을 띄우며 “A 그룹이 카자흐스탄 자원 개발에 뛰어들면 어떻겠느냐”며 권유했다.
별다른 의심 없이 차씨를 믿은 B씨는 이를 자신의 친척인 A 그룹 임원에게 전해 두 사람을 연결시켜 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차씨의 사기행각에 다리 역할을 하게 된 셈이 됐다. 결국 A 그룹과 카자흐스탄 국영기업 S사 사이에 석탄광산 개발 관련 양해각서가 일사천리로 체결됐다.
이 양해각서가 체결되자 지난해 5월 15일 중국 경제지 등에 ‘카자흐스탄 국영기업을 상대로 중국 대기업과 한국 대기업이 함께 협약을 맺었다’며 기사를 내는 등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또 이들 신문을 통해 이 양해각서가 대한민국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순방성과인양 보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차씨는 국내외 사업가들을 상대로 “지난해 5월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순방 시 함께 수행했다”고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카자흐스탄 국영기업과 석탄광산 개발에 대한 양해 각서를 체결하고 중국 대기업에서 5조원 규모의 자급을 지급보증하기로 했다”면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양해각서 체결에 A 그룹이 참여했다는 말의 파워는 대단했다. 국내외 사업가들이 A 그룹의 이름만을 믿고 차씨에게 거액의 돈을 스스럼없이 건넨 것.
경찰에 따르면 차씨는 사업가들의 의심을 피하고 유인하기 위해 스위스은행 5000억 원 지급보증서와 홍콩은행 2억 달러 잔고증명서를 제시하고 사업가들로부터 중국 대기업의 지급보증서 발급 비용 명목으로 모두 3억 6000만 원을 갈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전에도 같은 수법으로 범행
경찰에 따르면 A 기업과 카자흐스탄 국영기업 사이에 양해각서가 체결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양해 각서는 ‘광산 개발을 한다’는 내용이 전부로 상호 협조하자는 취지에서 체결된 것일 뿐 세부 계획은 명시되어 있지 않아 법적 구속력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A 그룹은 임원이 개인적으로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일 뿐 그룹 차원에서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이 아니라며 양해각서 자체의 효력을 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과의 친분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 대통령과 대학교 동문이라며 친분을 과시했지만 알고 보니 초등학교 졸업이 차씨 학력의 전부였다.
더구나 성공한 사업가로 나무랄 데 없어 보였던 차씨의 사업체들도 유령업체로 드러나 피해를 입은 사업가들을 경악케 했다.
경찰 조사에서 차씨는 중국에 사업체 4곳, 국내에 1곳이 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결과 한국에 설립했던 회사는 폐쇄된 상태이고 중국의 사업체는 모두 유령회사나 타인 소유 법인 회사로 밝혀졌다.
경찰은 “차씨가 주장하는 사업체를 모두 조사했으나 실체가 없는 회사였다. 남의 회사를 자기 회사인 것처럼 서류를 위조하거나 중국에 있는 내연녀를 통해 마치 존재하는 양 전화번호 등을 통해 속여 왔다”고 말했다.
차씨 등이 피해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제시한 스위스 은행 5000억 원 지급보증서와 홍콩은행 2억 달러 잔고증명서 역시 모두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차씨 등은 증명서가 모두 진짜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증명서를 발행해준 은행이 단 한 군데도 없다. 외국 은행이라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데만 몇 달이 걸린다. 피의자들은 그 기간을 악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들 일당은 이전에도 유령회사 설립, 지급보증서 위조 등의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러 고소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해외 발행 서류의 진위여부 확인이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해외기관이나 외국계 은행에서 발행한 위조서류를 제시해 수사기관의 사실 확인을 어렵게 해 법의 망을 빠져나갔다. 더불어 공범 중 한 명을 국외로 도피시킨 후 도피시킨 공범에게 모든 혐의를 떠넘기는 방법으로 처벌을 피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경찰은 차씨가 국내외 여러 사업가들과 접촉한 정황을 확인, 유사 피해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대통령 이름 판 사기사건 ‘급증’
대통령의 측근임을 내세운 사기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올해 사기전과 4범의 형제가 청와대 측근을 사칭한 사건에 이어 지난 6월 한 남매가 이명박 대통령 등의 측근 행세를 하며 수억 원의 사기행각을 벌였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6월 이 대통령 등 권력 핵심 인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사업개발권을 주겠다며 수억 원을 챙긴 혐의(사기)로 A(58)씨와 A씨의 여동생(52)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전직 방송 관련 업체 대표인 A씨 남매는 지난해 8월 사업가 B씨에게 접근해 고위층과의 친분을 알리기 시작했다. A씨 남매는 B씨 등에게 이 대통령과 함께 캄보디아 총리를 방문한 장면이 담긴 사진은 물론 이상득 의원,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 등과 함께 찍은 사진도 보여 주며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B씨에게 ‘캄보디아 프놈펜 주변 600만평에 대한 신도시 개발권을 확보했는데 이 중 18만평에 대한 사업권을 주겠다’며 3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같은 해 8월 C씨에게 접근해 캄보디아의 같은 지역 도시 설계 용역계약을 체결한 뒤 대금 10억 원을 지급하지 않고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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