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동 옥탑방 증오살인 충격
신정동 옥탑방 증오살인 충격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0-09-17 10:54
  • 승인 2010.09.17 10:54
  • 호수 856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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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동 살인범 “ 행복한 모습에 분노 치밀었다”
지난 14일 신정동 옥탑방 살인사건 피의자 윤모씨가 서울 양천구 신정동 다세대 주택에서 현장검증을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지난달 초 서울 양천구 신정동 옥탑방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사건발생 36일 만인 지난 11일 경찰에 붙잡혔다. 피의자 윤모(33)씨는 교도소 출감 후 3개월 만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 동기는 자신이 갖지 못한 행복한 가정에 대한 증오심이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 12일 “탐문 수사 중인 지난 11일 오후 신월동 길거리에서 피의자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윤씨를 추궁해 범행 일체를 자백 받고 13일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또 윤씨의 거주지를 수색해 범행 시 사용한 흉기와 착용 의류 등을 압수 수색하는 등 증거도 확보했다.

경찰에 따르면 윤씨는 순천교도소에서 강도강간 등으로 14년 6개월을 복역하고 지난 5월 출소했다. 윤씨는 한달여 간 형 집에서 얹혀살다 지난 6월 신월동에 있는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에서 생활했다. 한국법무부보호복지공단은 전과자가 출소 후 사회에 적응하도록 돕는 법무부 산하기관이다.

공단에서 지내며 원예치료 기술교육을 받는 등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사회는 전과자인 윤씨를 냉대했다. 공사현장 등지에서 일했지만 이마저도 불규칙적이라 생활에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행복한 가정 웃음소리에 분노 치밀어

범행 당일인 지난달 7일, 윤씨는 아침 6시께부터 12시간 동안 양천구 일대를 배회했다. 공사 현장 일을 위해 작업용 공구를 들고 집을 나섰지만 오후가 돼서도 인력시장의 전화는 감감무소식이었기 때문이다.

낙담한 윤씨는 오후 5시 45분께 신정동 놀이터 인근의 K마트를 들러 막걸리 한 병을 샀다. 막막한 앞날에 속이 타들어간 윤씨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10여분 만에 막걸리 한 병을 모두 비웠다.

좌절감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공단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던 윤씨의 귓가에 한 가족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놀이터 뒤편 3층짜리 다세대 주택 옥탑방에서 TV 소리와 함께 단란한 가족의 웃음이 들린 것.

행복한 가정을 보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윤씨는 분노감을 자제하지 못하고 곧장 옥탑방을 향했다. 좁은 계단을 단숨에 올라가 열려있는 현관을 통해 침입한 윤씨는 거실에서 자녀들과 TV를 시청 중이던 장모(42·여)씨의 눈에 띄었다.

괴한의 침입에 놀란 장씨는 도움을 구하며 소리를 질렀다. 당황한 윤씨가 조용히 하라며 둔기로 장씨의 머리를 망설임 없이 내리쳐 두부골절상을 입혔다. 이내 아내의 비명소리를 듣고 방안에서 나온 임모(42)씨와 실랑이가 벌어졌다. 임씨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윤씨를 붙잡으려 하자 소지하고 있던 흉기로 임씨의 양 옆구리를 찔러 살해했다.

경찰 조사에서 윤씨는 “아주머니가 소리를 지르기에 다가가서 둔기로 때렸다. 당황해서 당시 아이들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쓰고 있던 모자를 떨어뜨리고 간 줄도 몰랐다”고 진술했다.

범행 직후 윤씨는 떨어뜨린 둔기는 그대로 둔 채 흉기를 계단에 둔 가방에 챙겨 넣어 올라왔던 골목의 반대방향으로 도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죽을 줄 몰랐는데 죽어서라도 참회하겠다”

윤씨는 범행 직후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온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검거 당일 윤씨는 범행 당시와 동일한 검정색 상의와 운동화를 착용하고 있었다. 공개 수배됐음에도 도망가지 않고 신월동 길거리를 걷다 검문에 걸린 것. 경찰은 “윤씨는 수배가 내려졌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피해자가 사망한 사실도 몰랐다”고 밝혔다.

한 가족을 불행으로 내몬 윤씨는 사건 이후에도 일을 하는 등 생활에 큰 변화 없이 지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범행 현장에서 6~7km 떨어진 공단에서 생활해 왔다. 또 새벽 4시에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생활 패턴 탓에 뉴스를 시청하지 않아 자신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인 것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조사에서 윤씨는 “언젠가는 붙잡힐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도망을 가지 않았다”며 “죽을 줄 몰랐는데 죽어서라도 죗값을 치르고 참회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며 장씨와 자녀 2명은 2주간의 심리치료를 받고 심리적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현실적 프로그램 통한 교정행정 변화 시급

“행복하게 사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니 어렵게 살며 방황하는 내 모습과 비교돼 순간적인 분노가 치밀었다” 범행동기에 대한 윤씨의 말로, 전과자들의 사회 부적응과 사회적 박탈감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전문가들은 체계적인 근로 교육, 재범 방지 교화 프로그램 등 현실적인 프로그램 마련을 통한 교정행정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교정행정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전과자들의 사회적 재기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지 않으면 유사 사건이 언제든지 재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정행정의 허점은 경찰청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절반에 가까운 범죄자 10만 9859명(47.6%)이 재범자로 파악됐으며, 동일한 범죄를 반복해 저지른 자도 38만 130명(16.3%)에 이르렀다. 특히 살인(62.5%), 강도(64.7%), 방화(65.7%), 폭력(54.0%), 절도(50.0%), 강간(47.9%) 등 강력범죄의 재범률이 높은 것으로 드러나 우려를 낳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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