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오션스일레븐’ 금고털이단 사건 전모
한국판 ‘오션스일레븐’ 금고털이단 사건 전모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0-09-13 17:53
  • 승인 2010.09.13 17:53
  • 호수 855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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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탄 오가며 대기업· 대형 병원 107억 원 털었다”
한국판 ‘오션스일레븐’이라 일컬을 만한 대형 금고털이 사건이 발생했다. 영화 ‘오션스일레븐’은 세계적인 권투시합이 열리는 밤, 3개의 카지노를 동시에 턴다는 무모한 계획 아래 11명의 강도단이 결성된다. 이들은 참모, 오른팔, 막내, 폭탄 전문가, 자금줄, 탈출 전문가, 망보는 녀석 등으로 각자의 역할을 맡아 범행을 벌인다. 지난 8월 경찰에 구속된 금고털이범 사건도 ‘오션스일레븐’과 유사하다. 교도소 동기로 구성된 이들 일당 10명은 국내 대기업과 대형병원의 금고를 터는 것도 부족해 일본까지 원정을 가 금고를 턴 것으로 밝혀졌다. 대담하고 치밀한 범행 수법으로 이들이 훔친 금품은 107억여 원에 달하는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마치 한편의 영화와도 같은 이들의 범행 속으로 들어가 봤다.

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8월 25일 수도권 일대를 돌며 금고를 턴 혐의(강도상해 및 특수절도) 등으로 김모(39)씨와 유모(50)씨를 구속하고 이미 수감된 박모(57)씨를 추가 입건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 9월 6일 이들을 수사하던 중 절도 등으로 구속 수감되어 있던 구모(48)씨, 정모(54)씨, 황모(55)씨, 최모씨(51)등 4명을 확인, 추궁해 범행사실을 자백 받았고 해외도피 중인 차모(53)씨 등 3명을 수배했다고 밝혔다.


교도소 동기로 범행모의

처음에 이들 일당은 모두 6명이었다. 박씨의 주도 아래 모인 이들 일당은 지난 2006년 5월께 K 교도소 수감 중에 알게 된 교도소 동기였다. 구씨가 서울 강남의 A 그룹 본사 4층 재무팀에 현금, 주식 등 수백억 원을 보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 발단이었다. 금고털이 전문가 정씨 등 2명, 아파트털이 전문가 황씨 등 2명, 소매치기 절도전문가 최씨 등이 가세, 모두 6명이 모이게 됐다. 이들은 완전 범죄를 꿈꾸며 교도소에서부터 금고털이 기술을 공유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출소한 이들은 지난 2007년 3월말께 서울 양천구 다방에 모여 구체적인 범행 계획을 짰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A 그룹의 금고를 털기로 모의한 것. 이들은 A 그룹 사무실과 금고의 위치, 야간 경비원 근무 시간을 사전 파악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또 신속한 정보 교환과 금고 털이를 위해 무전기와 빠루(노루발못뽑이, 노루발처럼 생긴 금속 공구의 하나로 못을 뽑을 때 사용) 등을 준비했다.

또 보다 효율적으로 범행을 하기 위해 각자 역할 분담을 했다. A 그룹 사무실에 직접 침입해 금고를 털 실행조 4명, 실행조 4명이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망을 볼 망조 2명으로 나눈 것이다.

모든 계획이 완벽하게 갖춰줬다고 판단한 이들은 지난 2007년 4월 16일 새벽 3시 40분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박씨가 운전하는 봉고차에 휴대용 무전기 2대와 빠루 2개, 드라이버를 준비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비원을 결박할 테이프도 챙겼다.

이들의 범행은 대담했다. 비상계단 출입문을 드라이버로 순식간에 망가뜨렸다. 침입에 성공한 이들은 비상구를 통해 A 그룹 본사 4층으로 침입했다. 이 모든 일들이 눈 깜짝할 새 일어났다.

하지만 이들의 침입은 순찰 중이던 경비원에게 발각됐다. 발각된 즉시 가지고 있던 공구로 경비원에 위협을 가했다. 경비원이 소리를 지르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 판단, 경비원의 입을 막고 넘어뜨렸다. 이어 준비해온 테이프로 경비원의 손과 발, 입 등을 결박해 재무팀 사무실 구석에 감금했다.

이후 이들은 경비원이 지켜보는 앞에서 금고를 터는 대담함을 보였다. 경찰에 따르면 금고털이범들은 당시 금고 안에 있던 현금 3500만 원과 주식 208만주(액면가 104억 원 상당)를 절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일당은 훔친 금품을 공평하게 나눠 가졌다. 1인당 300~400만 원씩 나눈 후 남는 돈은 주범 박씨가 가졌다.

문제는 주식이었다. 이들은 훔친 주식 208만 주는 일련번호 등으로 인해 장물로 발각될 위험성이 높아 국내 처분이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다. 때문에 박씨가 싱가폴, 홍콩 등 국제 암시장을 통해 처분 후 배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A 그룹이 도난신고를 하는 바람에 3년 간 처분하지 못한 채 보관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수도권 소재 대형 병원 금고 털어

또 이들 금고털이범들은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 등 대형 병원들이 진료비 등으로 받은 현금을 당일 은행에 입금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정보를 입수했다. 이들 일당 3명은 병원이 현금을 경리부서 금고에 보관하다 다음날 은행에 입금하는 것이 관행이라 금고에 현금이 많다는 사실에 귀가 솔깃해졌다.

A 그룹 금고털이에 성공한 이후 자신감이 붙은 이들은 곧장 범행을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수도권 소재 대학 병원 6개 병원을 침입했다. 이번에도 빠루 등을 이용해 출입문을 부수거나, 천장을 뜯고 경리부서로 침입해 금고를 털었다.

이들이 턴 병원만 모두 6곳으로, 피해금액만 5000여만 원에 달한다고 경찰은 밝혔다.


수사망 좁혀오자 일본으로 원정

이에 경찰이 인천 및 수도권 일대에서 발생한 금고털이 수법 절도사건을 3개월간 끈질긴 수사를 펼쳤다. 이들 일당은 그동안 저지른 연쇄 범행으로 인해 수사망이 좁혀오고 있다고 판단, 차씨의 주도로 일본으로 원정을 가기로 결정했다. 지난 7월 28일에서 8월 7일까지 일본에 머물며 금고털이를 하기로 결심한 것. 성공적인 일본 원정 금고털이를 위해 공범도 더 끌어들였다.

당시 중국에 체류 중이던 차씨는 일본으로, 한국에 있던 유씨는 일본으로 출국한 후 차씨가 데리고 온 공범 2명 등과 함께 4명이 오사카에서 만났다. 이들은 오사카에 위치한 일본 기업들의 금고를 노렸다.

같은 범행방식으로 일본 기업 건물에 침입, 금고를 뜯어 일본 은행 발행 2천만 엔(한화 약 2억 8800만 원) 상당의 수표를 훔쳤다. 경찰은 인터폴을 통해 해당 회사가 어느 곳인지 파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수감 생활을 하던 교도소에서 서로의 범행 수법을 공유하는 등 교화에 문제점을 보였다”며 “수도권 대형병원 6곳과 일본에까지 원정 출국해 거액을 절도한 국제적인 추태를 보인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한국과 일본 간 비자면제협정이 체결돼 마음대로 양국을 오갈 수 있는데다 3개월간 무비자 입국 체류가 가능하다는 점 등을 악용한 국제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또다른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피의자 중 2명을 검거 구속하고, 절도 등으로 구속 수감 중인 공범 5명을 추궁해 일본 원정 금고 털이 추가 사실을 밝혀냈다. 현재 경찰은 중국과 태국 등에 도피중인 나머지 피의자 3명을 수배하는 한편 여죄를 추궁하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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