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최전선으로 변해가는 중·동부 유럽
신냉전 최전선으로 변해가는 중·동부 유럽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 입력 2015-07-06 13:37
  • 승인 2015.07.06 13:37
  • 호수 1105
  • 28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러시아 인접 나토 국가들에 첫 중화기 배치
러 핵무기 증강 계획에 놀란 나토, 연일 군사훈련

[일요서울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 냉전 이래 최악의 대치국면이 형성된 가운데 미국이 처음 중·동부 유럽 국가들에 중화기를 배치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이 지역에서 긴장이 높아가고 있다.

애쉬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6월 23일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국방장관들과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우리는 일시적으로 1개 기갑여단 분의 차량과 관련 장비를 중부 및 동부 유럽에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사전 배치되는 유럽 활동 조합에는 탱크, 보병 전투차량, 대포가 포함된다”면서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불가리아·루마니아·폴란드가 중대(中隊)~대대(大隊) 분 장비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애쉬턴 장관이 말한 ‘사전 배치’는 미군 장비들이 미군보다 먼저 현지에 도착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미 지상군의 파병은 없으며 단지 무기와 장비만 위 6개국에 지원된다. 물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미군이 현지로 건너올 수 있지만 지상군 파병은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이에 관한 언급은 없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카터 장관이 “우리는 러시아와 열전(熱戰)은커녕 냉전도 추구하지 않는 가운데 우리 동맹국들을 방어할 것”이라고 덧붙인 것은 중·동부 지역에 배치될 중화기가 방어용이자 훈련용임을 굳이 강조한 것이다.

“우리 동맹국들 방어할 것”

미 국방부는 중화기 250점이 배치될 것이며 여기에는 에이브러햄스 탱크 90대, 브래들리 장갑차 140대, 자주곡사포 20문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폴란드 국제문제연구소의 마르친 테를리코우스키 분석가는 “미국의 움직임은, 미국이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위협을 격퇴할 능력이 있는 주도적인 세계 군사강국이며 기울어가는 강대국이 아니라는 신호를 러시아, 미 동맹국들, 그리고 여타 강대국들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AFP 통신에 밝혔다. 미국의 이번 중화기 배치 선언은 그 보다 이틀 전인 21일 나토가 우크라이나 분쟁을 배경으로 동유럽에서 군사력을 증강하겠다고 약속한 데 이어 나온 것이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거나 인접한 중·동부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옛 소련 국가들과 옛 소련 위성국들)을 미국이 보호하겠다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가운데 우크라이나에서는 지금도 친(親)서방 정부군과 친(親)러시아 반군 사이에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15개월간의 전투 과정에서 6500명이 사망했으며 전투 종식과 휴전을 위한 외교적 담판은 좀체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들은 최근 파리에 모여 ‘신속한 전투 점감(漸減) 방안’을 논의했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로랑 파비우스 프랑스 외무장관은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가리켜 “우리는 돈바스의 보안 상황과 관련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면서 “정치적, 인도적, 사회경제적 분야에서 진전을 가져올 신속한 점감화(漸減化)와 즉각 휴전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한 것과 이어 발발한 우크라이나 내전에 대한 대응으로 나토는 폴란드와 발트3국에서 각종 군사훈련을 벌이는 등 무력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6월 24일 "우리는 나토가 변화하고 있는 도발적인 안보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또 다른 조치를 막 취했다"면서 나토가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신속 대응군 규모를 현재의 3배인 4만 명으로 증원한다고 밝혔다고 미국 CNN방송이 보도했다. 스톨텐베르그 총장은 우크라이나 동부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과 최근 러시아의 핵무기 증강 결정 등을 고려해 나토가 "핵 활동을 비롯한 러시아의 활동이 미칠 영향을 신중히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트3국서 나토 군사훈련

나토가 최근 몇 차례 군사훈련을 실시하자 러시아 외무부는 6월 22일 나토 회원국들이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새로운 대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고 비난했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월 16일 올해 안에 40기 이상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실전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푸틴은 6월 6일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라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서방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우크라이나에서 폭력사태가 새로이 발생하고 있지만 자신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전투를 중지하자는) 민스크 평화협정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와 나토 국가들 사이에 어떤 충돌도 없다면서 “나로서는 (나토가) 러시아를 겁낼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푸틴은 또 러시아가 외부위협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려 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 입에서 핵무기를 추가 배치하겠다는 말이 나왔고, 나토가 냉전 종식 이래 최대 규모의 방위력 증강에 돌입했으며, 미국이 중·동부 유럽에 중화기 배치를 결정한 일련의 사태는 사라졌던 냉전이 부활했음을 실감시키기에 충분하다. 러시아와 중·동부 유럽 지역, 정확히는 미국 사이에 형성되고 있는 이러한 신(新)냉전 기류는 그 뿌리가 우크라이나에 있다.

친(親)러시아 반군 세력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맹렬히 싸우고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친(親)서방 국가로 굳어져 나토에 편입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나토에는 옛 소련 소속 국가들과 위성국들로서 나토에 대항해 ‘바르샤바조약기구(WTO)’를 구성했던 옛 WTO 회원국들이 대거 편입되어 현 회원국은 모두 28개국이다. 러시아는 나토가 러시아를 포위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마저 나토로 넘어간다면 러시아로서는 직접적인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우산 밑으로 들어가고 싶어한다는 것이 러시아 입장에서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1990년 동·서독 통일을 앞두고 미국은 당시 동독에 군대를 대거 주둔시키고 있던 옛 소련에게 “독일 통일에 동의해주면 앞으로 나토를 더 이상 확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래놓고 옛 소련이 해체된 이후 WTO 회원국들을 몇 차례에 걸쳐 대거 나토로 영입했다. 러시아는 짙은 배신감 속에 우크라이나에 끝까지 집착하고 있다.
scottnearing@ilyoseoul.co.kr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