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 교수 ‘어보(御寶) 그래픽 아트전’

상명대학교 디자인대학 시각디자인학과 김남호 교수가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지난 8월 24일부터 9월 1일까지 서울 동숭동 상명대 예술디자인센터 갤러리에서 ‘어보 그래픽 아트전’을 개최해 화제다. 500년 조선 왕권의 상징인 어보(御寶ㆍ임금의 도장)를 그래픽 아트로 환생시킨 전시회로 조선 왕조의 어보를 통해 대한제국의 정기를 되돌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그래픽 아트 14점, 전통공예를 활용한 강화화문석 4점, 아트상품 실크 스카프 3점 등 총 48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에 [일요서울]은 김교수를 만나 ‘어보 그래픽’에 대해 들어봤다.
김 교수는 322여점에 달하는 어보를 정리한 문양집이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또 매력적인 디자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어보를 그 누구도 디자인으로 활용하지 않는 것이 의아하게 여겨졌다. 이후 김 교수는 어보를 문화콘텐츠로 발전시키는 작업을 자신이 직접 해야겠다고 결심, 관련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어보 관련자료 전무 어려움 겪어
김 교수도 어보에 대해 처음에는 잘 만들어진 예쁜 금속공예품 정도로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었다. 하지만 작업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깊이 파고들수록 무게감이 더해졌던 것. 관련 자료도 거의 전무했던 데다 원천 자료 접근도 어려웠다. 더구나 자료들을 해석하려면 수준 높은 인문학적 소양이 필수로 요구됐다.
김 교수는 이미지 자료를 찾아봤지만 관련 책도 없고 논문도 2편에 불과했다. 관련 단행본 역시 전무했다. 논문도 일반적인 내용만을 다뤄 참고 자료 정도로만 그쳤다.
그러던 중 지난 1995년 궁중유물전시관에 ‘500년 종실의 상징 조선어보’ 개관 3주년 기념전시회가 열렸고 전시유물자료집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전시유물자료집이 유일한 도판 자료였던 셈이다. 작품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이 자료집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전시유물자료집을 구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책임 연구원까지 찾아갔지만 해당 자료집을 갖고 있지 않았다. 결국 수소문 끝에 복사본으로 입수했다.
이 전시유물자료집에는 현재 남아있는 조선 역대 왕과 왕비 어보 322점에 대한 사진과 기록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종이에 찍힌 문양은 온전치 못했다. 종이에 의해 모양이 틀어지기도 하고, 인주가 묻지 않은 부문도 있어 자료로서 정확성이 떨어졌다.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던 작업이었지만 간신히 구한 자료도 온전치 않아 복원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어보에 왕의 철학과 아이덴티티 담겨
김 교수는 어보에 새겨진 문양을 디지털로 복원하고, 이를 문양집으로 출판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았다. 조선어보 인면(印面)의 실제 크기는 가로 세로 약 10cm다. 하지만 자료집에 수록된 어보 인면 크기는 약 4cm였다. 이 협소한 면적 속에 4~166개의 문자인 보문(寶文)이 새겨져 있었다. 이 때문에 어보의 내용을 해석하기 위해 조선 1대 왕의 어보인 태조금보(太祖金寶)를 약 1600%로 확대했다.
김 교수는 확대한 어보 인면 위에 문자두께의 격자 형태인 그리드를 얹고선 경악했다. 그 작은 면적 속에 문자가 질서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디자인 되어 있었던 것. 김 교수는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전율이 일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작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디지털로 재현하기 위해선 어보 내용인 보문을 정확히 해석해야 했던 것. 하지만 어보자료는 종이에 도장을 찍은 것이라 문자의 획이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더구나 어보에 사용된 서체가 전서체인 탓에 내용 해독에 상당한 어려움이 뒤따랐다. 훼손된 글자를 복원하는 것은 마치 미로 속을 헤매는 것과 같았다. 인문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많은 상상력 역시 필요했다.
김 교수는 어보 몇 점을 디지털화하면 같은 형태의 문자가 있을 것이고 이를 복사해서 사용하면 작업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어보에 새겨진 문자는 단 한글자도 동일한 형태가 없었다.
어보에 공통적으로 새겨진 마지막 문자 ‘보(寶)’의 경우도 서체의 획과 배열, 크기가 각각의 어보마다 다 달랐다. 한마디로 어보 하나하나에 왕의 철학과 삶의 아이덴티티가 새겨 넣어 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어보 3점을 디지털로 재현하는데 1개월을 보냈다. 1년 안에 어보 322점을 디지털화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1년 동안 각 임금별로 1점씩만 재현하는 것으로 수정됐다. 마침내 1조 태조부터 27대 순종까지 ‘디지털 어보’가 완성됐다. 더불어 명성황후와 고종황제 어보, 고종황제 국새 등을 추가해 총 27점을 디지털로 완성했다. 이 디자인을 하며 광해군과 연산군처럼 왕이었으나 폐왕이 된 경우는 어보를 제작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됐다. 또 태종, 세종, 현종의 어보가 유실되어 있었는데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고 전했다.
왕의 상징적 이미지, 그래픽 아트 작품으로 창작
김교수는 “어보를 디지털 형상화하면서 왕의 철학과 아이덴티티를 담기 위해 역사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디자이너의 눈으로 세종을 비롯한 10명의 왕들과 명성황후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상징적 이미지를 그래픽 아트 작품으로 창작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 어보를 디지털로 완성하고 나니 어보를 디자인과 전통공예에 적용시킨 아트 상품을 개발하고픈 꿈도 생겼다. 이에 아트 상품 개발에도 몰두했다. 고민하던 중 강화화문석을 비롯해 스카프, 접시 등을 상품화하는데 성공했다.
상품화 작업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강화 화문석에 어보를 담는 작업이었다. 일상적인 작품들만 제작하던 강화 화문석 장인들에게 ‘어보’문양을 보여주며 제작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김 교수는 고려시대부터 유명한 강화 화문석을 이번 기회를 통해 다른 콘텐츠로 만들어 보자고 거듭 설득했다. 결국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태조, 세종, 고종, 명성황후 4개의 어보문양 화문석이 만들어졌다.
김 교수는 “어보는 조선의 역사이다.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리 것을 상품화해야 한다. 어보문양을 담은 아트상품 개발은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데 큰 몫을 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또, “문제는 안이한 태도를 지닌 정부관계자들이다. 전시회 기간 동안 청와대와 문화관광부에 여러 차례 자료를 보내 아트상품 개발에 대한 제안을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전시회를 찾지 않는 것은 물론 관심조차 갖지 않고 있다. 지금 세계는 문화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관료주의가 결국 ‘한류’의 세계화를 막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김 교수는 가장 한국적인 문양과 디자인을 상품화해 세계시장에 나가게 된다면 아트문화를 통한 ‘한류문화’를 꽃피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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