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윤상현 특보 중심 친박계 초선 6인 회동설
친박계, 업무 배제·문자 압박 등 다방면 통해 ‘사퇴압박’
유승민, 실보다 득…수도권 출마 통해 대권 노리나?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친박계가 ‘패닉’ 상태에 빠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 원내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자, 친박계는 곧바로 ‘유승민 사퇴론’에 불을 지폈으나 유 원내대표는 꿈쩍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유 원내대표의 거취가 내년 총선 공천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그 후폭풍은 쉽게 가라않지 않고 있다. 각 계파의 속내 역시 다르다. 우선 유승민 사퇴론을 주장하고 있는 친박계는 ‘사퇴해야 한다’며 의원들을 설득하는 등 사퇴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반면 비박계는 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만으로 사퇴하면 ‘원내대표는 청와대의 국회연락사무소장’에 격하될 것으로 우려,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동안 잠잠했던 새누리당 ‘내홍’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친박계의 입지가 약해졌다는 여의도 안팎에 퍼져 있다. 친박계는 갖가지 상황을 대비해 준비해둔 시나리오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으면서 유 원내대표만 띄웠다는 평이다.
지난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를 둘러싸고 최고위원들이 거친 말을 주고받다가 회의가 중단됐다. 김태호 최고위원이 “저는 오늘 저 김태호가 유승민 원내대표에 드리는 마지막 고언이 되기를 바란다. 콩가루 집안이 잘되는 거 못 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곧바로 원유철 정책위의장은 “긴급최고위원회가 끝난 지 불과 3일밖에 안 됐다”며 “(유 원내대표에게)그만 두라고 하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반격했다. 이에 김 최고위원이 말문을 열려고 하자 김무성 대표가 “그만 하라”며 그를 제지했다.
이어 김 대표는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김 최고위원이 김 대표 퇴장을 지켜보면서도 발언을 이어가자 비서실장인 김학용 의원이 욕설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장면들은 그만큼 새누리당 내에서 유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두고 계파갈등이 얼마나 극심한지 반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내비친 뒤 당 원내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친박계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지만 유 원내대표는 사퇴를 하지 않았다”며 “친박계가 다수였다면 유 원내대표는 곧바로 사퇴를 할 수밖에 없지만 사퇴하지 않고 버팀으로써 친박계가 약화되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친박계 1차 거사 실패
조직적 압박 가하기도
사실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 발언이 있은 후 친박계는 ‘유승민 사퇴’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 정치권에 따르면 박 대통령 발언 직후 윤상현 정무특보를 중심으로 초선의원 6인이 회동을 가졌고, 유승민 사퇴를 위한 역할분담을 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본인들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의원총회에서 유승민 사퇴론에 대한 언급 등을 요구했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심지어 윤 특보가 ‘전화정치’를 통해 오더를 내려주었지만 무산되고 말았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실제 정치권 안팎에서는 “4시간 넘게 토론이 벌어졌지만 유 원내대표에게 사퇴할 것을 직접적으로 요구한 이는 참석인원 40여명 중 김태흠, 이장우 의원 2명뿐이었다”며 “나머지 친박계 인사들은 발언을 하지 않거나 ‘세게’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 국회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이러한 광경으로 인해 여권 내에서는 친박계 의원들의 이탈현상이 일어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친박계에서는 농담 삼아 “친박계 의원은 100여 명”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30여 명에 불과하다는 말이 여의도를 중심을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정치권에서는 친박계의 ‘1차 거사’가 무산된 것은 친박계 이탈로 인해, 예상 시나리오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1차 거사 실패 후, 친박 중진의원들이 긴급회동을 하면서 유 원내대표 사퇴로 의견을 모은 뒤, 조직적 압박이 시작됐다. 의원총회를 거칠 경우 비박계가 다소 앞서, ‘유승민 원내대표 유지론’에 힘이 실릴 것을 고려해 친박계는 의총이 아닌 최고위원회에서 유 원내대표의 거취에 대해 결론을 내려 했던 것이다. 실제 지난달 26일 유 원내대표 거취 관련, 긴급최고위원회를 열어 유 원내대표 사퇴론에 종지부를 찍으려 했다.
더 나아가 유승민 사퇴, 친박계 최고위원 총사퇴, 비대위 체제, 전당대회 계최 시나리오까지 흘리며 김무성 대표와 유 원내대표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친박계의 계획은 탄력을 받지 못했다. 유 원내대표 거취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더라도 친박계가 당권을 장악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담감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심지어 유 원내대표는 측근들에게 “최고위원회의에서 나온 발언 등은 개인의견을 청취하는 자리일 뿐 사퇴할 이유를 모르겠다”, “최고위원회에서 사퇴 요구를 받아들이는 전례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항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구나 유 원내대표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이라는 점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 1일 내일신문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디오피니언에 의뢰해 지난달 31일 전국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7월 정례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박 대통령과 친박이 연일 압박하고 있는 원 원내대표 사퇴에 대해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이 28.3%인 반면, ‘의원총회에서 추인한 만큼 사퇴할 필요가 없다’가 57.3%로 두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박 대통령의 텃밭인 대구경북에서도 ‘사퇴 불가’가 54.8%로 ‘사퇴 동의’ 31.6%보다 높게 조사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친박계에서는 ‘물밑 설득작전’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에 따르면 친박 핵심 이정현 최고위원이 유승민 사퇴 반대 성명에 이름을 올린 20여 명의 재선의원들을 잇 따라 접촉, “유승민 사퇴만이 현 정국을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자신과 가까운 친박 의원을 통해 원내지도부에 간접적으로 ‘추경 당정협의에 유 원내대표가 참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 원내대표 사퇴 압박 차원이다.
급기야 최 부총리와 가까운 K 의원 명의의 괴문자까지 나돌았다. “유 원내대표 20대(총선) 불출마 선언. 원내대표직 명예 걸고 끝까지 완수 표명”이라는 내용이 주된 골자다. 정작 K 의원은 “그런 문자를 돌린 적이 없다”고 부인하며 도용 의혹이 제기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친박계 핵심 인사가 도용한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즉, 원내대표 자리를 보전할 경우 내년 총선에서 출마 자체가 어렵게 될 것이라는 압박성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승민 사퇴 ‘시점’만 남아
김무성도 ‘사퇴’에 무게
당내 갈등이 확산되면서 김무성 대표는 당 갈등을 봉합하는 차원에서 유 원내대표 사퇴에 무게를 두고 있다. 청와대와 친박계, 유 원내대표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유 원내대표에게 사퇴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국회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6일까지는 유 원내대표가 명분에서나 정서적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초선 의원실 한 인사는 “지금 현 상황이 유 원내대표에게 시련일 수는 있지만 정치적 득실을 놓고 보면 ‘득’이 많다”며 “여야 상생의 협상을 하다 청와대로부터 핍박을 받는 이미지는 유 원내대표의 전국적인 인지도와 지지도를 올리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에서는 이번 기회를 통해 TK지역이 아닌 수도권 지역에서 정치적 승부를 본 뒤 대권 후보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라며 수도권 출마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차기 대권 후보 여론조사에서 유 원내대표는 4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또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국회법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국회 본회의 투표불성립으로 사문화되면 원내대표로서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유 원내대표의 사퇴 시점이 중요하다. 청와대와 갈등을 지속하면 정치적으로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탓에 유 원내대표 역시 겉으로는 ‘사퇴 불가’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내심 부담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국회법 개정안 정국에서 친박계는 압박이 성공하더라도 유승민 사퇴 과정에서 보여준 친박계의 세력이 약화됐음을 증명했다. 게다가 유 원내대표는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투사’ 이미지를 덧씌웠다는 게 정치권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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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