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년간 난중일기 번역 결과물을 독자 여러분께…
- <(친필)난중일기>와 <이충무공전서> 합쳐 시간순으로 해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국보 제76호로 지정했고, 유네스코에서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했다. 그러나 <난중일기>를 실제로 다 읽은 사람들은 많지 않다. 본래 한문으로 씌었고, 또 그 시대의 언어와 행동을 기록한 것으로 간결한 문체가 읽고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4년 전부터 <난중일기>의 한문 원본을 읽고 사색하며, 일기 속 이순신의 마음을 배우고자 노력해왔다. 본래 한문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또 역사학 전공자도 아니었기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지난한 과정을 밟아가며 공부해왔다. 이제 그 결과물을, 우리 시대의 곳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작은 이순신으로 살고 있는 평범한 독자 여러분께 드리고자 한다.
이 연재는 이순신 자신의 일기와 편지, 메모, 보고서 등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 번역문 전체 혹은 요약문을 올린 뒤, 기록의 맥락과 전후 사정, 그 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이야기를 곁들여 이순신의 진면목을 찾아가는 이순신 탐험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기존의 많은 번역본을 참조했다. 선배 학자들이신 故 노산 이은상 선생, 故 홍기문 선생, 故 박혜일 선생, 이석호 선생, 박기봉 선생, 고정일 선생, 임기봉 선생, 최두환 선생, 김경수 선생, 노승석 박사의 번역본들이 그것이다. 이 공간을 빌어 그 분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또한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왕조실록은 필자에게 한밤중 등불과 같은 존재가 돼 주었다.
<난중일기>와 <이충무공전서>의 차이
많은 사람들이 가끔씩 묻는다. <난중일기>와 <이충무공전서>가 어떻게 다른 것이냐고. 이순신 자신이 직접 손으로 매일 매일 쓴 <친필 난중일기>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짜 <난중일기>이다. <이충무공전서>는 1795년, 이순신을 존경했던 정조 임금에 의해 <난중일기>와 이순신의 보고서, 편지글, 기타 각종 이순신과 관련된 기록을 집대성해 14권 8책으로 간행된 일종의 종합판이다.
본래 이순신 자신은 <난중일기>라고 자신의 일기를 명명하지 않았다. 그는 매년 한 권의 공책을 만들어 표지에 제목을 <일기>라고 표기했거나, 혹은 해당 연도의 간지(干支)를 표기해놓아 그것이 어느 해의 일기인지 알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친필 일기책의 표지에 기록된 제목은 각기 다르다. ‘갑오(甲午, 1594년)’ 혹은 ‘무술(戊戌, 1598년)’ 같은 경우이다.
그러면 <난중일기>란 명칭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이충무공전서>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당시 <이충무공전서>의 편찬자들이 권5에서 권8에 이순신의 친필 일기를 편집해 넣으면서 일기 전체를 <난중일기>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현재 현충사에 소장된 <(친필) 난중일기>와 <이충무공전서>속의 <난중일기>와는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친필본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충무공전서>에는 친필본에 존재하지 않는 일기가 나온다는 점이다. <이충무공전서>가 없었다면, 친필본만으로는 전혀 알 수 없는 일기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595년 일기는 친필본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충무공전서>에는 들어 있다. 그 이야기는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할 당시까지는 존재했지만, 편찬 이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일기가 사라졌다는 것을 말해 준다. 어쩌면 지금도 우리 땅 어디에 그것이 존재하면서, 자신을 다시 세상에 드러내 보여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 중에서, 댁에 소장된 고서 뭉치가 있다면 그것을 한번 자세히 살펴보시길 당부드린다.
기존 번역본들과 필자의 해설 방식
현재 시중에 번역된 <난중일기>들은 그래서 크고 작은 차이가 있다. 어느 번역본은 <이충무공전서> 속의 편집된 <난중일기>를 번역한 것이고, 어느 번역본은 <(친필) 난중일기> 그 자체를 번역한 것이고, 어느 번역본은 <(친필) 난중일기>와 <이충무공전서>속의 <난중일기>를 합쳐 번역한 것이다. 또 <(친필) 난중일기>도 일기 자체만 번역해 일기 속에 들어있는 각종 메모를 제외한 경우와 그 전체를 번역한 경우로 나뉘기도 한다.
필자는 <(친필)난중일기> 전체와 <이충무공전서>에만 들어있는 부분을 모두 합쳐 시간순으로 해설할 예정이다. 친필본 전체라는 것은 일기는 물론 각종 메모 글까지를 포함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때때로 일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가 쓴 각종 보고서도 관련 날짜 전후에 배치해 일기에서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이순신의 상황, 그의 행동과 생각을 전할 예정이다. 다음은 이순신의 1593년의 일기장 맨 앞에 쓴 메모이다.
“기록할 생각이 있었으나, 바다와 육지에서 바빴고, 또한 쉴 틈도 없었다. 잊고 생각지 않은 지 오래였다. 이제부터 이어간다.”
이순신이 다시 붓을 잡고 일기를 쓰려는 그 자세로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이순신의 일기를 따라, 그를 만나고, 그와 함께 기뻐하고, 그와 함께 울고, 그를 닮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도록 독자들의 질책을 부탁드린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