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정배· 정대철 등 ‘냉면회동’서 신당 창당 급물살
당산동 20여평 사무실 계약…찻잔 속 태풍 될 수도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야권의 분열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학살’ 공포감에 빠진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노계 정치인들이 딴 살림을 준비 중이란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4·29 재보선 참패 이후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 친노계의 패권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호남 중심의 비노계가 ‘거사’를 도모 중이란 설이 여의도 정가에 파다하다.
결정적인 계기는 세 가지다. 첫째 김상곤 위원장의 혁신위가 발표한 1차 혁신안이다. 여기엔 ‘현역 의원 교체지수 평가’가 들어 있다. 교체지수는 여야를 막론하고 반대파를 공천에서 원천 배제하는 전가의 보도다. 새누리당도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교체지수를 적용해 현역 의원 25%를 퇴출시켰다. 혁신위 방안대로라면 야당 비노계 의원 가운데 상당수가 아예 공천신청도 할 수 없게 된다.
둘째, 김경협 의원의 ‘세작’ 발언이다. 김 의원은 “새정치연합의 당원 자격은 친노(친 노무현 전 대통령)와 친DJ(김대중 전 대통령)”라고 했다. 비노계는 새누리당의 세작(간첩)이라고도 했다. 이 말에는 ‘친노 본색’ ‘친노 순혈주의’가 배어 있다.
셋째, 최재성 의원의 사무총장 임명 강행이다. 최 의원은 범친노계인 정세균 전 대표 계열이다. 야당가에선 문 대표가 순수 친노계만으론 세력의 한계를 느껴 정세균계와 연합을 시도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따라 비노계인 이종걸 원내대표는 당무를 보이콧하며 극렬하게 저항하기도 했다.
문재인-정세균 연합 시도
이런 일들은 비노계에겐 탈당과 신당 창당을 할 수 있는 ‘3대 명분’이다. 총선 공천을 앞두고 친노계의 당 장악 수순이 본격화 되자 비노계 사이에선 “당을 깨더라도 친노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시도다. 그렇다면 우리도 살 길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다만 신당을 만들려면 깃발을 드는 인물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차기 대권주자급의 중진정치인이 선도 탈당해 ‘제3지대 신당’을 만드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현재 야권엔 문 대표 외에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 안희정 충남도지사 정도가 차기 대권주자로 꼽힌다.
하지만 이들이 깃발을 들고 신당 창당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박 시장과 안 지사는 현역 자치단체장이고, 안 의원은 당내에 세력이 없다.
이 경우 전국정당이 아닌 지역정당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 특히 ‘반(反)문재인’ 정서가 팽배한 호남에서 지역정당 태동의 여건이 마련되고 있다. 새정치연합에서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론 박지원 의원과 박주선 의원이 꼽힌다. 박지원 의원은 최근 “신당 추진 세력이 서, 너 개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에겐 한계가 있다. 호남 민심을 끌어안기엔 확장성이 약하다.
호남지역의 언론인 A씨는 “광주·전남을 중심으로 반 문재인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지난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에게 90% 안팎의 표를 몰아줬지만 호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호남사람들은 여기에 더해 지역의 기성 정치인들에게도 반감이 강하다. 새정치연합 간판을 달고 쉽게 당선된 탓인지 투쟁력이 약하고, 지역발전에 필요한 예산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까닭”이라고 말했다.
결국 박지원 의원이나 박주선 의원이 깃발을 들더라도 호남민심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다. A 씨는 “두 사람이 나서면 현역 의원 중에는 따라서 나갈 사람이 없다. 제도권 정치에서 밀려 있는 지역의 정치꾼 몇 사람만 모여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되는 인물이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다. 지난 4·29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를 앞두고 새정치연합을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당선된 천 의원에 대해선 호남민심도 기대를 걸고 있다. 천 의원은 당선 직후 내년 총선에서 호남 전 지역에 후보를 내는 정치 결사체를 만들 수도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비노계에 ‘3대 명분’이 생기자 천 의원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가에선 천 의원과 전직 야당 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6월 19일의 ‘냉면 회동’을 주목한다. 천 의원과 정대철 새정치연합 상임고문, 신중식·문학진·이철 전 의원은 이날 서울의 한 유명 냉면집에서 회합을 갖고 신당 창당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냉면 회동 후 정 고문은 “천 의원이, 새정치연합 혁신위 활동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신당이 나와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하더라”고 전했다. 천 의원도 언론 인터뷰에서 “세력화는 한다. 당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동안 “창당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로선 ‘무소속 연대’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던 말에서 상당 부분 진척됐음을 읽을 수 있다.
현재로선 ‘무소속 연대’
신당 창당에 가장 적극적인 인물은 염동연 전 의원이다. 천 의원에게 신당 창당을 꾸준히 권유하고 있는 염 전 의원은 최근 여의도 정가 건너편인 당산동에 20여평 규모의 사무실을 계약했다.
염 의원은 광주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천 의원은 신당보다는 ‘무소속 연대’를 선호해 왔으나 나는 처음부터 신당은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신당에 동참하려는 호남 지역 전·현직 의원들도 점차 늘고 있다. 사무실 계약은 나의 결정으로, 천 의원에겐 나중에 연락해 상황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천 의원을 돕는 사람들이 그간 삼삼오오 모임을 가져, 때론 중구난방으로 보이던 측면도 있었다. 당산동 사무실은 이들의 의견을 종합하는 사랑방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산동 사무실이 신당의 산실(産室)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재로선 야권 신당 창당 논의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가능성이 더 높다. 무엇보다 천 의원이 깃발을 든다고 그 아래 모일 현역 의원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과거 인물이나 정치지망생들을 모아 호남신당 정도를 창당해야 하는데, 호남민심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창당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돈과 조직이 있어야 한다. 돈이 있고 조직을 갖출 만한 인기 정치인이 깃발을 들어야 하는데, 현재 야권에선 그런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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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