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기는 커녕 생계 유지조차 힘들 지경”

추석을 일주일 앞둔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 시장. 추석이라는 대목을 앞두고 있음에도 시장 골목은 한산했다. 손님 대신 팔리지 않는 물건들이 남대문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몇몇 상인들은 날이 어두워질수록 눈에 띄게 손님이 뜸해지자 장사를 파하고 일찌감치 짐을 꾸렸다. 추석 대목을 포기하는 듯한 어두운 분위기가 남대문 시장에 짙게 깔려있었다. 이처럼 서민들이 주 고객층인 남대문 시장은 불황의 후유증에 직격탄을 맞았다.
호황기 때 하루에 수십만 명이 찾던 남대문 시장의 명성이 퇴색하고 있다.
추석 대목임에도 편의성 등의 이유로 대형마트나 백화점으로 손님들이 몰려 명절 특수를 기대할 수 없는 분위기다.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흥정을 벌이는 시끌벅적한 재래시장의 특유의 생동감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추석 특수는 옛날이야기”
그나마 일본인 관광객들이 남대문 시장의 체면을 살려주고 있다. 특히 홍삼 등 건강 상품이나 김을 판매하는 곳에서는 우리말보다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라는 말이 더 자주 크게 들렸다. 이미 주 고객층은 일본 등 외국인 관광객으로 옮겨간 분위기다.
인근에서 건강 상품과 김을 판매하는 이모(43)씨는 “추석 대목이라는 분위기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리 가게의 경우 손님의 95%가 일본인이다. 일본인들의 한국여행 성수기와 비성수기에 따라 매출에 영향을 받을 뿐 추석 특수는 옛날이야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장사도 쉽지 않다. 상인들이 곳곳에서 서툰 일본어로 일본인 관광객들을 향해 손짓하지만 물건을 들추어볼 뿐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다.
가방과 모자를 팔고 있는 김모(57)씨의 사정도 다를 바 없다. 장사가 잘 되느냐는 물음에 답도 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내저었다. 드문드문 일본 관광객들이 가게를 찾았지만 실질적인 구매로 이어지지 못했다. 김씨는 “갈수록 경기가 나빠지는 것 같다. 돈을 벌기는커녕 생계 유지조차 힘들 지경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노점 상인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불황의 늪에 더 깊이 빠져있다. 좌판을 벌여 놓고 저렴한 가격에 의류를 판매하고 있는 박모(55)씨의 표정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오전부터 장사를 시작했지만 고작 옷 한 벌 밖에 팔지 못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하루에 많이 팔아 봤자 10벌에도 못 미친다. 보통 하루 평균 1~2벌의 옷밖에 팔지 못한다. 곧 이 장사도 접어야 할 것 같다. 하루 밥벌이도 못하게 생겼다”며 푸념했다.
“그날 밥값도 못 건지기 일쑤”
가장 추석 특수를 누려야할 식료품점도 판매가 저조하다. 과일, 생선 등은 생물 상태로 판매하기 때문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판매가 어렵다. 더구나 올 봄 이상 저온 현상과 여름 폭염, 태풍 등 기후 불순으로 인해 먹을거리 가격이 급등해 고객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비싼 가격에 서민들이 선뜻 구매할 엄두를 못 내는 것. 판매 부진으로 상인들은 발을 동동 굴리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은 없는 상태다.
수년간 남대문에서 과일과 채소를 판매해왔다는 장모(60)씨는 “장사가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더니 이젠 정말 장사가 안 된다. 가격을 물어보는 사람은 있어도 구매를 하는 사람이 없어 막막한 심정이다”고 말했다. 소비심리가 회복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지만 남대문 시장의 경기는 오히려 더 나빠졌다는 게 장씨의 설명이다.
길 귀퉁이에서 건어물과 각종 곡류를 팔고 있는 조모(59)씨는 이웃 상인과 굳은 표정으로 늦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손님으로 생각하고 반기던 조씨는 추석을 맞이해 장사가 어떻냐는 물음에 이내 표정을 굳혔다. “오늘 흥정 한번을 하지 못했다. 추석이 대목이라는 것은 오래 전 이야기다. 하루 종일 팔아봐야 그날 밥값도 못 건지기 일쑤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물가 급등에 선뜻 지갑 열지 못해
남대문 시장에서 과일 가격을 물어보던 주부 유모(50)씨는 “대형마트보다 재래시장이 저렴하다는 뉴스 보도를 보고 남대문 시장을 들렸는데 가격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며 결국 자리를 떠났다.
지모(41)씨는 “과일 가격이 금값이다.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 정작 필요한 것들을 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추석맞이 장을 보기위해 남대문 시장을 들린 손님들도 물품 구매를 미룬 채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이날 남대문 시장에서 활기가 넘치는 곳은 포장마차와 몇몇 음식점뿐이었다.
한편 남대문 시장 뒤에 위치한 신세계 백화점은 오가는 인파로 분주해 남대문 시장과 뚜렷한 명암을 보였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사진=맹철영 기자] photo@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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