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로 감추고 싶은 진실은 뭘까?”

‘불법사찰’논란이 대학까지 번졌다. 중앙대학교의 학생 사찰 논란이 법정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이다. 중앙대 총학생회는 지난 7월 27일 학생 사찰 의혹과 관련해 두산중공업과 학교법인 중앙대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학과 통폐합 등 구조조정에 반대하다 중앙대에서 퇴학당한 노영수(28)씨와 재학생들의 집회 참가를 감시하고 그 동향에 대한 보고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중앙대 불법사찰 논란을 알아본다.
지난 7월 24일, 중앙대 학생들과 두산중공업 노조, 두산중공업 해고자들이 연대한 집회가 동대문 두산타워 인근에서 열렸다.
‘노영수 동향보고’ 문서 집회 현장서 발견
이날 두산중공업 소속 직원 오모(32)씨가 노씨 등 중앙대 학생들과 두산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이 집회하는 장면을 몰래 촬영하다 붙잡히면서 불거졌다.
붙잡힌 오씨가 ‘노영수 관련 동향 보고’라는 A4용지 5장 분량의 문건을 소지하고 있어 불법 사찰 논란에 시발이 됐다.
당시 노조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한 총학생회는 오씨에게 문서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오씨는 주변이 소홀한 틈을 타서 도주했다. 오씨가 종로 6가까지 가는 동안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결국 오씨는 쫓아온 학생들에 의해 붙잡혔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노씨가 종로 6가에 도착했다. 학생들과 두산 직원들 간에 집단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오씨와 중앙대 직원은 “그런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하지만 학생과 노씨가 강력 항의하자 중앙대 직원은 “보여주긴 하겠지만 어느 선까지가 문제가 되는지 밝혀달라”며 ‘가이드 라인’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가이드라인’에 대한 양측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시간이 지체되자 총학생회 측에서 혜화 경찰서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이 해당 문서를 당사자인 노씨에게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노씨만 문서를 읽었다.
A4 사이즈에 5장으로 이뤄진 문서였다. 이 문서에는 노씨가 참가하는 집회의 내용 및 규모비롯해 노씨의 행적이 기록돼 있었다. 노씨는 다 읽고 난 후 문서를 카메라로 찍고 자리를 파하려고 했지만 학교 측의 제지를 받았다. 결국 합의하에 혜화경찰서에 문서를 맡기게 됐다.
현재 이 원본 문서는 중앙대 측에서 소유권을 주장해 회수해 갔다고 한다. 이에 증거 보존 차원에서 원본의 앞뒤를 다 복사한 사본을 경찰서에 보관해 놓았다고 총학생회 측은 밝혔다. 하지만 형사소송법상 기소가 되기 전에는 당사자라 하더라도 열람 등사를 할 수 없다.
노씨 “오씨 스스로 두산중공업 직원이라 밝혔다”
[일요서울]은 지난 27일 오후 노씨를 직접 만났다.
노씨는 “해당 문서를 보기 전에는 사찰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현재 중앙대학교는 문제시 되고 있는 문서의 사본을 공개한 상태다.
이에 대해 노씨는 “전체내용 공개라지만 학교측 입맛에 맞게 이름, 소속 등 핵심적인 내용들을 가린 채 공개된 것”이라며 “원본에는 ‘오oo대리 두산중공업 소속’이라고 정확히 명기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오씨는 두산중공업에서 파견된 사실상 중앙대 법인사무처 소속 직원”이라는 중앙대 측 주장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24일에도 오씨는 자신을 두산중공업 소속이라 밝혔다”며 “단순히 학교 직원으로 온 것이 아니다. 두산중공업 노조와 연대집회를 하는 곳에 두산중공업 직원이 온 것이다. 노조 사정을 뻔히 알고 온 사람이라는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마치 조직세계에서 꼬리자르기를 하듯 학교가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숭고한 재단만큼은 불똥이 튀지 않게 하겠다는 의식의 발로”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고소와 관련해서는 “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커다란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 하지만 오늘 구태여 고소장을 접수한 것은 원본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중앙대 총학생회장 임지혜씨는 공개적인 학교측의 사과를 촉구하며 “어떤 목적 하에 특정 사람 동향을 주의해 살피고 기록하면 사찰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해당 문건이 어떤 보고 절차를 가졌는지 밝히고 싶다”고 덧붙였다.
중앙대 “사찰이 아닌 학생 지도다”
두산그룹 배형식 부장은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중앙대의 경우 사회공헌 차원에서 인수했기 때문에 최대한 두산 측에서 지원하고 있다. 오씨의 경우도 월급은 두산중공업에서 받지만 중앙대 사무관련 일만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중앙대 홍보실 김태성 팀장은 전화통화에서 ‘사찰’이 아님을 강조했다. 총학생회 학생들이 노씨와 시위를 나간 것이라 교외에서 학생지도를 했다는 설명이다.
또 두산그룹 직원이 전혀 개입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문과대학 행정실장이 노영수씨 행적 등을 E-mail로 보고한 것에 대해서는 “행정실장이 노씨와 개인적 친분이 있었다. 단지 노씨를 통해 전해들은 집회 정보를 보고했을 뿐”이라며 “노씨가 참여하는 집회가 총학생회와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학생처에 보고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오씨가 지난 24일 자리를 피해 도망가려고 한 것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현장을 떠나려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총학의 고소에 앞서 중앙대 박범훈 총장은 이메일을 통해 “문서는 퇴학 조치된 노모 군이 일부 재학생, 두산계열사 노조원들과 지난 24일 집회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학교에 알려와 내부 보고용으로 작성된 내용이고 사찰은 없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두산 박용만 회장도 트위터에서 “중앙대 일은 박범훈 총장이 발표했고, 그것이 팩트”라며 사찰 의혹을 부인했다.
중앙대가 두산그룹에 인수된 뒤 기업식 구조조정 등으로 시끄럽다. 이번 퇴학생 노씨의 불법사찰 문제가 법정으로까지 비화돼 자칫 기업이미지 제고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재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