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패밀리 정보수집 들통 카다피 열받았다

리비아가 현지에 주재하고 있는 한국 외교관에 대해 스파이 혐의를 적용, 지난달 추방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양국이 확연한 입장차를 보여 사건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정부는 일단 리비아 측에 “오해가 있었다”며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나섰다. 하지만 리비아는 한국이 불법적으로 정보를 수집했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그만큼 그에 대한 물증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현재 우리정부는 리비아에서의 정보수집활동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해외에서 첩보활동을 했던 전직 국가정보원 요원의 증언을 들어보면 정보수집활동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직 해외 정보요원에 직접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집트, 수단, 리비아 등 아랍국가에서 대북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통상적인 첩보활동일 뿐 특별 임무가 아니다.
정부 당국자는 “주 리비아 대사관 직원의 리비아 내 활동과 관련해 양국 정부 간 이견이 발생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 대표단이 현재 리비아를 방문, 리비아 관계 당국과 협의 중”이라고만 밝힐 뿐 구체적인 진전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추방된 주리비아 한국대사관의 국가정보원 직원이 무기목록을 비롯한 리비아의 군사정보를 수집하다 적발된 것으로 최근 전해졌다.
지난달 말 모 언론은 “추방된 국정원 직원은 한국 방위산업체의 대리비아 수출을 위해 리비아의 무기목록을 비롯한 군사정보를 수집하다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또 “이 국정원 직원은 건설 근로자와 간호사 등 리비아 내 1000여 명의 북한 근로자에 대한 동향파악 업무도 수행했다”면서 “리비아는 이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고 이 언론은 전했다.
또 리비아를 방문 한 우리 정보당국 대표단은 군사정보 수집과 관련한 리비아측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 근로자 동향파악의 경우 통상적인 정보활동이라는 점을 리비아측에 적극 피력한 것으로 알졌다.
첩보활동의 수준은?
사건의 시작은 지난 6월초 리비아 보안당국은 주리비아 한국대사관 정보담당 직원의 활동이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와 그의 아들이 운영하는 조직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해당 직원을 구금, 조사에 착수하면서 부터다.
그러나 국가원수 주변 조직에 대한 내용은 리비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접근제한구역’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정보당국이 어설픈 행동으로 문제를 야기 시켰다는 것은 납득키 어렵다.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해당 직원은 카다피 원수의 국제원조기구 조사와 아들이 운영하는 아랍권내 조직에 대한 첩보활동을 했고, 이 사실을 파악한 리비아 정부는 우리 측에 문제제기를 했다. 또 이 사건과 관련해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리비아인 직원도 간첩혐의로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에 대해 우리 측은 당시 해당 직원의 정보활동은 북한과 리비아 간 방산협력과 관련된 통상적 활동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과 리비아 정부가 은밀한 무기거래를 한다는 내용이 공공연하게 언론에 보도된 적 있고, 이 무기 거래의 배후에 카다피의 이른바 로열패밀리가 관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정보 수집 내용 중 카다피 주변인들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을 수도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과거 이집트 요르단 등 아랍국가에서 정보수집활동을 한 적 있는 전직 국정원 요인 A씨는 이번 사건에 대해 “일부 언론이 너무 앞서 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허술한 첩보활동”이라는 일부의 비난에 대해서도 A씨는 반박했다.
A씨는 “해외에서 첩보활동을 하다보면 이번 리비아 사건과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적발되는 것을 조심하다보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A씨는 “아랍 국가는 그 특성상 매우 통제가 심하다. 모든 활동이 극도로 통제된 곳이 대부분”이라며 “내 관점에서 봤을 때 이번 사건은 우리정보기관이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일부 진보매체와 좌파인사들은 마치 우리 정보기관을 정권의 하수 기관정도로 매도하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리비아 같이 정보 수집이 열악한 환경에서 그 정도 뚫은 것도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의 해당 요원은 국정원에서 칭찬받지는 못하겠지만, 국가를 위해 노력했음을 국민들은 알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비아 주장 일부 사실
리비아측은 한국과 관계단절까지는 고려치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리비아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철저한 해명을 해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바그다디 알리 알-마흐무드 리비아 총리는 대통령 특사로 리비아에 파견된 이상득 의원과의 면담에서 “최악의 상황은 안되도록 노력하겠다. 그러나 해명을 철저히 해 달라. 오해는 풀어야 하지 않느냐”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좀처럼 면담기회를 갖기 어려운 정보당국의 최고책임자와도 만나 우리 정부 측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우리 정부의 이번 정보활동 이면에 미국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리비아 현지 언론 가운데 일부는 해당 외교관의 첩보활동이 미국과 연관돼 있다는 식의 기사를 보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지 언론은 리비아측에서 해당 외교관을 3개월간 미행한 뒤 체포, 6일간 조사한 뒤 추방했다고 보도했다.
또 현지 언론은 정보활동 이면에 돈이 오간 정황도 있다고 보도하면서 해당 직원이 이 정보를 미국과 이스라엘 등 제3국에 넘겼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무엇보다 리비아와 북한은 수교국이라는 점, 북한의 대(對)리비아 무기 수출과 이에 대한 정부의 견제 및 최근 미국의 강력한 대북제재 등은 이번 사건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A씨는 “미국은 우리와 첩보활동을 공유하지 않는다. 완전 독자적으로 정보를 구한다”며 “아랍국가 등지에서 첩보활동을 하던 우리 요원이 구속되거나 추방되는 일은 사실 수시로 일어난다. 다만 일반인에 그런 사실을 공개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지난 3월말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 조사과정에서 북한 어뢰 설계도를 리비아에서 수집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과도 수교한 리비아로서는 조치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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