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픔과 슬픔, 외로움에 대해 말하고, 내면 토로함과 글쓰기
[일요서울 | 박찬호 기자] 삶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사람들이 끊임없이 만나게 되는 세상살이의 상처나 영원한 문학의 주제인 사랑과 죽음의 문제까지를 섬세한 언어로 즐겨 다루고 있는 작가 공애린.
우리네 삶과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주제를 애용하는 탓에 그동안 독자층을 넓게 형성해 왔다. 그리고 그에게는 ‘감성작가’라는 말이 자주 따라 다닌다.
1986년 중앙일보사가 주최한 여성중앙 중편소설 현상공모에 <아버지의 멍에>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그동안 <멍에목>, <긴 하루 동안의 이별>, <여자는 추억 속에 집을 짓는다>, <순애>,<지금 도시는 잠드는가>, <시간 꽃>, <그대 그리운 날에는 길 떠나리 1, 2권>,<또 다른 사랑>등 8권의 장편소설과 20여 편의 중, 단편소설, 그림 동화집 등을 출간 하면서 발표할 때마다 화제가 되었다.
공애린작가도 이제는 30년 세월의 지내고 중견작가의 반열에 들어섰다.
중앙대 예술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현재는 북한산 근처에서 고양이 3마리와 함께 독서와 사색,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얼마 전 작품집으로 나온 <다리, 넌 뭐야?>(문예바다)에서도 인간의 삶의 근원적인 문제인 소통의 문제, 단절, 고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난 주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 번 작품집에 대해 들어 보았다.
▲ 책을 내는 소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동안 작가로서 책을 펴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저에게는 독수리가 날개 짓을 할 수 없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패잔병처럼 쓸쓸히 퇴장해야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게으름과 무능함, 의기소침해질 정도로 열악하게 바뀐 출판 환경의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저 자신의 재능에 대한 의구심과 자책감이 한몫했습니다. 때맞추어 저작권 시비까지 붙어 희망이 없어 보이는 문단 외의 방송가를 기웃거렸습니다. 활자 예술에 심취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가볍게 변해가고 있다는 성마른 좌절감도 한몫을 거들었을까요.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화한 ‘그린 마일’에서 늙은 폴이 내뱉은 말이 있습니다. 그린 마일은 사형수가 수용된 방에서 사형 집행장까지 이르는 통로를 일컫는데, 복도의 바닥 색깔이 초록색이라 해서 그렇게 불렸다고 합니다.
한 때 간수장이었던 폴은 교도소에서 만난 신비한 초능력자 사형수의 힘을 얻어 간수복을 벗고도 108세의 나이가 되도록 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던 폴은 기나긴 자신의 생을 그렇듯 자조적으로 표현해야만 했습니다.
어쩌면 형벌 같았을 폴의 삶을 지탱해 준 것은 간수장 시절부터 알았던 늙은 쥐 한 마리였습니다. 쥐 역시 초능력자 사형수의 신비한 힘으로 그때까지 살고 있었고, 폴이 매일 요양원의 뒷산으로 올라 갖다 주는 먹이로 질긴 생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폴은 해야 할 일이 있는 늙은이였기에 그 나이가 되도록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유한한 생명체인 인간은 모두 이 그린 마일을 통과하고 있는 사형수나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험로에서도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자는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걸어가야 할 삶의 길, 그린 마일. 길거나 짧은 그 터널은 연금술의 동굴이며 연금술사는 바로 자신입니다. 만파식적의 피리 소리는 그렇게 찾아옵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고, 딱히 채워야 할 형량조차 없는 수인의 길이 그동안 저에게는 소설 쓰는 일이었습니다.
▲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은.
저는 사랑, 죽음, 인간의 내면세계를 다룬 작품들을 주로 읽고 있습니다. 미국의 작가 잭 런던의 <바다의 이리>와 <황야의 절규>와 브라질의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 독일의 작가인 파트리크 쥐스 킨트의 <좀머씨 이야기>. 미국의 작가인 하퍼 리<앵무새 죽이기>미국의 작가인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에 파수꾼>은 저에게 문학적 자양분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저는 잠시라도 소설의 무대를 비워 두고 살고 싶지 않습니다. 문학(소설)은 작가에게는 종교가 되어야합니다. 그런 점에서 세인들의 평가에 아랑곳 하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창조해 내는 작가들을 좋아하고 저는 존경합니다. 저도 그렇게 쓸려고 합니다.
포르투갈의 작가 주제 사라구마를 닮고 싶습니다. 환상적인 리얼리즘 안에서 개인과 역사, 현실과 허구를 가로 지으며 우회적 비유와 신랄한 풍자, 경계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한 그는 73세에 <눈먼 자들의 도시>를 82세에 <눈뜬 자들의 도시>를 써서 98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 했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서도 사라구마처럼 오래 동안 소설을 쓰는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소설가란 끈기와 승부욕이 필요하고 근성이 없으면 안 되는 너무 힘든 길입니다. 등불조차 없는 캄캄한 길을 홀로 걸어야 하기 때문에 지적인 허영심에서 출발하는 문학을 지양해야 합니다.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말하고자합니다.
▲ 이 번 작품집에서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다리, 넌 뭐야?>작품집에 있는 10편의 단편은 소통 <다리,넌 뭐야?>, 죽음<프로방스 가는 길>,<비뚤어진 입>, 삶의 관계성<연어살 같은 입술>. 무기력<소리닭>, 인간관계<비틀즈가 있는 풍경>, 생명과 죽음<독이 있는 꽃>, 아버지의 상실<가숙자>, 삶의 관계성<우주 정거장> 부재와 단절, 가족, 인간의 아픔과 슬픔, 군중속의 고독 등의 소재를 닮았습니다.
저는 소설은 기본적으로 쉽고 재미있는 가운데 시대와 삶과 아픔에 대해서 작품으로 육화 시킬 려고 늘 고민합니다.
작가 자신에게 맞는 감수성을 소설을 통해 추구해야지 비평가의 입맛에 맞는 글은 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는 의술로 신체의 상처를 치유 하듯이 소설가는 글로써 독자들의 정신적인 아픔을 달래야 합니다. 앞으로 미국의 작가 허먼 멜빌의<모비 딕>과 같이 분량이 많지 않아도 군더더기가 없는 깊이 있고 깔끔한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우리사회 속에서 깊이 느끼긴 하나, 현실타파의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대다수의 보통사람에 대해서, 있는 삶 그대로에 대한 사랑을 강조해 주기 위함이라고나 할까.
비록 메마르고 거친 땅에 잘못 심은 나무라 할지라도 옮겨 심는 용기를 갖지 못한 바에는, 현실 속에서 힘써 가꾸고 거름 주어야 할 수 밖에는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그 ‘어찌할 수 없음’이 그의 소설 인물들의 움직임이다.
공애린작가는 아무리 자신의 삶이 어려워도 소설 창작의 목표를 최우선으로 두고 다른 타협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비록 그것이 작가자신에게는 형극의 길일 수 있어도 공애린작가가 신인과 같은 의욕 또는 열정의 도정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이었다.
문학평론가 김종회교수는 공애린 소설에 대해 “일상에 엄습한 병증과 동통(몸에 장애를 주는 자극이 가해진 경우 생기는 감각)”, “복잡하고 깊은 가족관계의 질곡”, “버려야 할, 버릴 수 없는 이름의 아버지”, “비극적 결말의 극한을 통한 길 찾기”, “가지 않는 길, 판도라 상자”. “작가와 독자가 함께 행복한 소설”로 정의를 내린다.
앞으로 공애린 작가는 2권의 장편소설과 동화책 1권을 올해 안에 출간 목표로 원고를 다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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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기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