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펀드매니저 - 증권사, 검은 공생 관계
[추적] 펀드매니저 - 증권사, 검은 공생 관계
  • 강휘호 기자
  • 입력 2015-06-22 10:26
  • 승인 2015.06.22 10:26
  • 호수 1103
  • 2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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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서울남부지검 제공
투자자 맡긴 돈은 주머니 쌈짓돈…불법 채권거래가 관행처럼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이 맥쿼리투자신탁운용(옛 ING자산운용) 채권 펀드매니저들과 7개 증권사 채권중개 임직원 간 불법 채권 거래(이른 바 채권 파킹거래)를 수사한 결과, 이들의 유착 관계가 실체를 드러냈다. 특히 이번 수사에서는 불법 채권 거래 관계를 맺는 대가로 수년간 증권사 직원들로부터 금품을 받거나 여행 경비를 대납 받은 정황도 드러났다. [일요서울]이 이들의 검은 공생 관계를 추적해봤다.

지난 1월 금융감독원 조사 이후 검찰 수사 착수
채권 매매 대가 여종업원 동반 여행 경비도 대납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검사 박찬호)는 불법 채권 거래로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힌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맥쿼리투자신탁운용(옛 ING자산운용) 전 채권운용본부장 두모(44)씨를 구속 기소하는 동시에 펀드매니저 1명과 증권사 전 채권사업본부장 박모(48)씨 등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기소된 이들은 2013년 5월부터 11월까지 투자자 몰래 증권사의 손실이 발생할 경우 위탁 자금에서 증권사의 손실을 보전해 주는 약정을 하고 불법적인 채권거래를 해 기관 투자자에게 약 113억 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투자금 중에는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도 포함돼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명 채권 파킹 거래라고 불리는 이 거래는 자산운용사가 채권을 바로 사지 않고 증권사에 잠시 보관(parking)하도록 했다가 채권값이 오르면 정식으로 사들여 가격 상승에 따른 이익을 운용사와 증권사가 나눠 갖는 방식이다.

금리가 하락하면 채권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투자기관과 증권사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금리가 상승하면 손실을 입을 수 있다. 또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익은 펀드매니저와 증권사 임직원이 서로 정산하기로 하는 장부 외 거래의 일종으로 불법으로 규정돼 있다.

펀드매니저는 펀드 운용한도를 초과하여 운용할 수 있으며 이익발생 시 펀드수익을 임의로 조정할 수 있고(펀드매니저의 성과급이 높은 펀드에 펀드수익을 몰아줄 수 있는 가능성), 증권사 임직원은 중개수수료 등의 수익을 얻을 수 있어 양측의 이해관계가 부합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의 채권 시장 규모가 세계 상위 수준이며, 이러한 불법 거래가 관행처럼 이어졌다는 점이다. 검찰에 따르면 국내 채권시장 규모는 세계 5위권, 채권상장 잔액은 주식시장 시가총액을 웃도는 1500조 원 수준이다.

장외 거래 비중은 70%에 달하고 주로 은행, 보험, 증권 등 기관투자자 간의 매매가 많아 금액 규모가 크고 사설 메신저나 전화 등을 통해 폐쇄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 자산운용사의 관계자는 “채권 파킹은 관행처럼 이루어진 거래 방식이 맞다”면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자산운용사들과 증권사들은 비상등이 켜졌고, 관리 감독 체계를 강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불법의 보너스

파킹 거래 관계를 맺는 대가로 자산운용사들이 수년간 증권사 직원들로부터 금품을 받거나 여행 경비를 대납 받은 정황도 나온 상황이다.

증권사 직원이 채권매매 중개 업무를 따내기 위해 소수의 펀드매니저들에게 고액의 여행비 접대를 제공하는 관행을 저지른 것이다.

검찰은 이미 불법 채권거래 대가로 공짜 여행을 다녀온 은행, 보험, 자산운용사 등 소속 펀드매니저 103명과 이들의 여행경비를 대납한 증권사 임직원 45명을 적발했다.

이들은 회당 1000만 원이 넘는 펀드매니저의 가족여행 경비 전액을 증권사 직원이 대납한 적이 있고, 유착 관계의 임직원들이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을 동반하고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외에는 증권사 채권중개 임직원들이 마치 30~50명이 참석하는 정상적인 채권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처럼 가장한 다음, 사실은 자신들과 직·간접적으로 채권거래관계가 있는 소수의 펀드매니저들에게 수년간 고액의 맞춤형 여행경비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공생관계를 유지해오기도 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1월 맥쿼리운용이 4600억 원 규모의 채권을 파킹해 투자자들이 증권사에 맡긴 자산을 불법 운용한 사실을 적발해 맥쿼리와 파킹에 가담한 증권사들에 제재 조치를 내린 바 있다.

당시 금감원은 맥쿼리에 업무 일부정지 3개월 및 과태료 1억 원, 가담 증권사들에 기관경고와 과태료 및 임직원 정직 조치 등을 부과했다. 이후 검찰은 지난 4월 여의도 일대 증권사 7곳을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관계자들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해왔다.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채권시장의 구조적 비리를 최초 적발해 엄단하였고, 향후 관계기관과 협력하여 채권시장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에 힘쓸 것”이라면서 “수사결과를 금융감독원, 각 금융회사에 전파하여 채권시장을 비롯한 주식시장 등 펀드매니저들의 관행적인 비리에 대한 시장의 자정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와 관련해 맥쿼리투자신탁운용은 회사 차원의 대응은 끝난 사안 이라고 선을 그었다. 맥쿼리투자신탁운용 관계자는 “기소된 건은 우리가 인수하기 전인 2013년 초 ING자산운용이었을 때 일어난 채퀀 파킹 거래”라면서 “맥쿼리투자신탁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이미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재를 받은 상태이며, 검찰 조사는 개인 간 혐의를 입증하는 과정으로 알고 있다”면서 “현재 맥쿼리투자신탁운용은 ING자산운용을 인수한 뒤 비슷한 불법 거래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 감독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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