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메르스 정국’에 빠져 있는 박근혜 정부의 집권 3년차 시계가 더디게 돌아가고 있다. 집권 2년차는 세월호 참사로 개혁 과제가 뒤로 밀려났는데 임기 반을 돌고 있는 지금은 갑작스럽게 발생한 메르스로 국정운영에 발목을 잡힌 모습이다. 연이은 국가적 불운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정 지지도 추락과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야권 후보에 밀리는 형세로 이어졌다. 삭풍이 불면 작아지는 여권 후보에 비해 야권 후보는 무섭게 치고 나왔다 빠지는 식이 반복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여권 프리미엄을 누려온 영남권이 초조한 모습이다. 10년 가까이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으로 나뉘어 권력의 단맛을 봤지만 인물난을 겪으면서 정권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포스트 박근혜’를 노리는 제3의 인물들이 대권용 운동화 끈을 죄고 출발선에 서고 있다. ‘메이저 주자’가 힘들다면 ‘마이너 주자’라도 키워야 한다는 분위기다.
- ‘불안한’ 김무성·김문수 “내가 적임자!”
- TK 김관용·유승민, PK 김태호·정의화 ‘스타트’

그나마 부산 출신의 새누리당 김무성 당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당대표와 1, 2위를 두고 다퉜다. 하지만 메르스 정국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메르스 시장’으로 빛을 발하면서 1위를 차지했다. 여권은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 안희정 4명의 잠룡군이 돌아가면서 수위를 달리다 처지다 반복하고 있지만 여권 후보는 김 대표가 유일하게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그러나 김 대표 역시 ‘불안한 1위’를 달리면서 여권 내 잠룡 후보군을 더 넓혀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인지도·세력 부재가 마이너 ‘단점’
사실 김 대표는 이런 흐름을 인식하고 대권 경쟁자이지만 경북 영천 출신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당 보수혁신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차기 대선이 많이 남아 있는 만큼 ‘나홀로 독주’보다는 김 위원장과 함께 경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다. 이는 과거 ‘이회창 대세론’의 학습효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김 전 지사가 보수혁신위원장으로 국민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메르스 정국에 19대 대구 출마선언을 하면서 비판이 쏟아졌다.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차기 잠룡으로 꼽히는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전 의원과 대구 수성갑을 두고 일전을 벌여 ‘포스트 박근혜’ 자리를 꿰차고 대구·경북 맹주로 재탄생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경기도 도지사 출신으로 수도권 적지가 아닌 새누리당 텃밭에 출마한다는 점에서 명분이 약해 TK지역 내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자칫 지난 대구시장 선거에서 40%이상 받은 김부겸 전 의원이 승리할 경우 김 전 지사의 정치생명은 끝날 수도 있다.
이렇듯 부산 출신 김무성, 경북 영천 출신 김문수 두 인사가 차기 대권 가도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영남권 보수층을 대변하는 오피니언 인사들을 중심으로 ‘인물 부재론’을 내세워 새로운 인물을 키워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김관용 경북 지사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김태호 최고위원과 정의화 국회의장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올해 72세인 김 지사는 3선으로 더 이상 도지사직에 나설 수 없다. 고령인 김 전 지사의 선택지가 그렇게 많지 않다. 2014년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만큼 2016년 총선 출마는 명분이 약하다. 이에 2017년 차기 대선에 방점을 두고 있다. 현재 김 지사는 직접 메르스 환자의 진료상황 및 방역상태 점검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제2의 박원순’이 되겠다는 복안이다. 또한 유례없는 가뭄 피해를 막기위해 한국농어촌공사, K-water 대구경북지역본부장, 대구기상대 등 관계기관장과 문경시, 영양군·영덕군·울진군의 부단체장을 소집해 대책마련에 나섰다.
또한 지역 최대 숙원사업인 경북 서·남해안의 SOC사업과 북부 지역과 동해안 기간도로망 등 SOC 사업의 마무리를 위해 중앙정부로부터 국비확보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이를 위해 지역 국회의원들과 수시로 당정협의회를 갖기도 했다. 김 지사는 경북 구미출생으로 대구 사범고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 행시에 합격해 세무서장으로 일했다. 그러다 3선 구미시장을 마치고 3선 경북도지사를 한 정통행정관료다.
58년생인 유승민 원내대표 역시 TK지역에서 차기 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블루칩이다. 지난 2월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박 이주영 의원을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4월8일 유 원내대표 국회연설은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진보적 보수로의 전향 선언’이라고 할 정도로 박근혜 정부의 정책기조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당·청관계 갈등의 소지가 된 국회법 개정안을 주도해 청와대가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면서 정치적 기로에 서 있다.
유 원내대표는 판사 출신 유수호 전 국회의원의 아들로 2000년 한국개발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으로 있던 시절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게 발탁돼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으며 정계에 입문했다. 경북고-서울대를 나온 유 원내대표는 경제통이자 전략가로 유명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금배지를 단 이후 내리 당선돼 3선으로 2005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으며 ‘원조 친박’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인지도가 낮다는 게 단점으로 꼽히고 있다.
PK지역에서는 김태호 최고위원이 주목받고 있다. 당초 홍준표 경남지사가 ‘무상급식’ 논란으로 보수진영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았다 성완종 파문으로 추락한 사이 김 최고위원의 행보는 단연 눈에 띈다. 김 최고위원은 이명박 정권 당시 총리로 임명됐다가 ‘거짓말 논란’으로 낙마 후 전당대회를 통해 기사회생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갑작스럽게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서 가벼운 처신이 도마위에 오르기도 했다.
12일만에 당무에 복귀했지만 사퇴 선언과 복귀 명분이 약했기 때문이다. 김 최고위원은 사퇴 선언 당시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 부진과 김 대표의 개헌발언과 관련해 비판했다. 그러나 ‘지도부의 거듭된 요청’으로 복귀를 하면서 대다수 새누리당 의원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시각을 보였다. 이에 ‘김무성 대표 흔들기’라는 친박 음모론에 휩싸였고 거꾸러 개헌 발언으로 코너에 몰린 ‘무대(무성 대표) 살리기’라는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최근 정치적 행보는 친이계에서 친박계로 확실하게 전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국회법 개정안으로 청와대와 각을 세우는 사이 김 최고위원은 “용기 있는 결단으로 결자해지해야 한다”며 ‘유승민 사퇴론’을 가장 앞장서서 제기했다. 또한 국회에서 메르스 관련 ‘인적 책임론’이 일자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며 적극적으로 박근혜 정부 옹호에 나섰다.
靑 ‘각’ 세우는 유승민 ‘러브콜’ 김태호
김 최고위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야권뿐만 아니라 여권 일각에서 박 대통령이 미국방문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더 큰 국익을 위해서는 전쟁중이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며 청와대 옹호 입장을 견지했고 황교한 총리 인준안으로 여야가 공방을 벌이는 사이 “결격사유가 없다. 야당은 임명동의안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사실상 ‘포스트 박근혜’ 자리를 염두에 두고 노골적으로 청와대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62년생인 김 최고위원은 경남 거창 출신으로 거창군수, 경남도지사 재선을 했고 18,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농고 출신으로 서울대 농업교육학과를 나왔지만 교육학 박사 출신이다.
경남 창원이 고향이지만 부산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무소속 정의화 국회의장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 국회의장의 최근 일정은 대학 특강에 맞춰져 있다. ‘청년의 꿈’을 주제로 정 의장은 5월26일 대구 영남대를 시작으로 6월3일 경남 창원대와 서울대에서 4일에는 수원 아주대, 7일에는 부산 경성대를 방문해 청년들과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 의장은 청와대와 ‘각’을 세우면서도 언론과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 의장의 ‘대망론’이 흘러나오는 배경이다. 정 의장은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이 포함되자 “언론은 빠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청와대가 친박 의원을 정무특보로 임명하자 “국회의원이 행정부 수반의 보좌 역할을 한다는 것으로 그 자체가 말에 어폐가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박 대통령이 개헌불가를 주장할 때 정 의장은 “독일식 연정이 중요하다. 개헌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정 의장은 대국민이 좋아할 만한 주장도 내놓았다. 아베 신조 일본총리의 과거사 발언에 대해서 “아베는 내가 보니까 역사 문제에 대해서 정신 상태가 정상 상태가 아니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국회의장은 대통령 다음으로 서열 2위고 당 대표는 7위다. 서열 2위의 거침없는 발언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에 여권 내에서는 “대권 도전을 위한 전략적 행보로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친이계인 정 의장은 48년생으로 의사 출신 정치인이다. 15대에 배지를 달고 내리 5선을 해온 중진으로 19대 국회부의장을 거쳐 국회의장직에 올랐다. 부산고-부산대를 나온 의학박사다.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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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튀는 단체장, “금배지보다 낫네~”
여야를 막론하고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자치단체장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여야 잠룡으로 구분되는 인사들이 대거 광역단체장에 들어간 이유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박원순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홍준표 경남지사 등이다. 박 시장은 최근 메르스 정국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사로 단숨에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1위에 올랐다.
남 지사는 광역단체장으로선 처음으로 ‘연정’을 실험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새정치연합 소속 인사에게 부지사 자리를 줬고 전권도 행사하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최문순 새정치연합 강원지사와 ‘광역 연정’을 성사해 재차 주목받았다. 안 지사는 ‘친노’인사지만 튀지 않는 합리적 사고와 행보로 안정감을 주고 있고 원 지사는 고향인 제주에서 지방행정경험을 착실하게 쌓고 있다.
이밖에도 각종 현안에 거침없이 발언을 하는 이재명 성남시장도 주목받고 있다. 기초단체장중 유일하게 차기대선 선호도 조사 명단에 들어가 있다. 지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최고위원 전당대회에 출마해 아깝게 탈락한 박우섭 인천남구청도 있다. 박 구청장은 최근 김상곤 혁신위 위원으로 참여하며 재차 중앙정치에 뛰어들었다. 기초단체장들이 이렇게 지역현안에서 벗어나 중앙정치에 자유롭게 뛰어들 수 있는 것은 당 소속이지만 국회의원보다 언행에 자유롭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은 계파 수장이나 공천권을 쥔 당대표 눈치를 봐야 한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인사들은 청와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상대적으로 언행에 자유롭다. 지방선거는 작년에 치러 당분간 선거도 없다. 앞으로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중앙정치에서 활약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철>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