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국회의원 “4년 전세 산다고 무시하냐?”
여야 국회의원 “4년 전세 산다고 무시하냐?”
  • 홍준철 기자
  • 입력 2015-06-22 10:21
  • 승인 2015.06.22 10:21
  • 호수 1103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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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여야 국회의원들이 단단히 뿔 났다. 국회법 개정안을 여야 국회의원 211명이 찬성해 통과시켰지만 청와대가 불만을 표출하자 정의화 국회의장이 여야 원내대표와 중재안을 마련하면서다. 입법기관인 국회의원 과반수 이상이 찬성해 통과시켰지만 정 의장이 법안의 자구수정을 제안해 정부에 이송하자 다수의 여야 국회의원들은 “이럴 거면 국회의원이 법안을 왜 발의하고 통과시키느냐”며 탈법적인 행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설상가상으로 국회의원의 일상생활을 다룬 드라마 촬영을 위해 국회 의원회관을 개방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작 당사자인 여야 국회의원들의 동의가 아닌 국회사무처가 단독으로 승낙한 것을 두고도 불만이다. 드라마 촬영기간 동안 국회의원의 ‘사생활’을 고스란히 노출시켜야 하는데 당사자의 동의는 무시하고 국회사무처가 월권을 행세했다는 비판이다. “4년간 전세 산다고 무시하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 법안 자구 수정 쓱싹 정의화 의장 “월권했다!”
- KBS드라마 ‘어셈블리’ 회관내부 촬영도 ‘불만’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15일 국회법 개정안 일부를 자구 수정해 정부로 이송했다. 당초 원안은 ‘수정·변경을 요구한다’는 문구에 대해 행정입법권 침해 논란이 일자 정 의장이 ‘요청한다’로 수정해 중재안을 보냈다. 이에 청와대는 ‘위헌 소지가 있다.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중재안마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여야 정치권은 “입법기관의 자존심을 접고 중재안을 보냈는데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여의도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간만에 입을 모으고 있다. 아울러 무소속 정의화 의장이 탈법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여당 내에서 불만섞인 목소리도 터져나오고 있다.

거부권 행사 우려해 의장 의안 정리 나서

‘입법 발의’는 국회의원 고유의 권한인데 청와대가 ‘거부권 행사’할 것을 우려해 무소속인 국회의장이 ‘자구수정’한 것은 입법권 침해라는 지적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자구 수정은 국회의장의 의안 정리 권한으로서 법안 소관 상임위인 운영위와 법사위에 통보해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절차도 무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정치연합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15일 “느닷없이 운영위에에서 국회법 개정안의 자구 정리를 요청하는 서류를 보냈다”면서 “이게 왜 자구 정리인가 이런 식으로 눈속임하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번안 의결이 안 될 경우 책임 주체를 분명히 해야 한다”며 “종이 한 장으로 양해해 달라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질타했다.

실제로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장의 자구 수정은 ‘오탈자’나 법안 본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선상에서 행세할 수 있는 권한이다. 그러나 ‘요청’과 ‘요구’의 의미는 법안 본래 취지와 어긋나 번안 의결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회법 개정안은 새정치민주연합 김태년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를 했고 여야 국회의원 211명이 찬성한 법안으로 이를 수정할 경우에는 ‘국가적 재난’이나 ‘국가간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가 아닌 이상 번안 의결을 해야 한다.

번안은 본회의에서 가결된 법안을 정부로 이송하기 전 그 내용을 수정해 재의결하는 절차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해 국회와 정부, 당청 정면 충돌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자는 취지다. 이럴 경우 국회법 91조에 따라 해당 법안 제출자가 발의·찬성했던 의원 3분의 2이상 동의를 얻어 새 안을 제출하면 본회의에서 과반 출석, 출석의원 3분의 2이상 찬성으로 의결된다. 이미 가결된 안건을 번복하는 것이어서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 그러나 정 의장은 번안의결 대신 오탈자 수준의 자구수정으로 중재안을 만들어 정부에 이송해 국회의원 고유의 권한을 침해했고 자존심마저 뭉개뜨렸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TV 드라마 촬영 위해 의원 회관 개방 결정

여야 국회의원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국회사무처가 드라마 촬영을 위해 의원회관을 개방한 것을 두고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자신의 안방을 고스란히 TV를 통해 방영되는데 여야 국회보좌진협의회뿐만 아니라 여야 국회의원들 의사는 무시하고 국회 사무처가 승인하자 “국회의원이 4년간 전세산다고 집주인(국회사무처)이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비등하다. 과거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으로 커다란 인기를 모은 전직 보좌관 출신인 정현민 작가가 과거 10년 동안 보좌관 생활을 하며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루는 드라마로 오는 7월경부터 방영될 예정이다.

국회의원 사무실이 모두 있는 의원회관을 개방하는 것은 국회 개원 이후 사상 처음 있는 일로 2013년 SBS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에 국회 촬영이 허용된 이후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이에 대해 여야 원내대표실에서는 “국회보좌관이나 여야 국회의원들의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는 촬영을 국회 사무처가 독자적으로 허락한 것은 문제”라며 “KBS측과 국회사무처의 공식적인 요청이 있어야 되고 촬영 결정은 국회의원들이 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mariocap@ilyoseoul.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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