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노 특유의 배타성에 넌더리 치는 비노
박지원·조경태 의원 등 비노 거사 임박 說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우리 혁신위원회는 이념의 스펙트럼을 넓히면서 외연을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선명성, 정체성을 찾는 데 주력하면 혁신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금 혁신위의 인적구성을 보면 실패의 길로 갈 가능성이 높아 걱정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중진 정치인이 필자에게 털어놓은 말이다. 그는 당을 장악한 친노(친 노무현 전 대통령) 세력이 패거리 문화에 젖어 있으며, 이번 혁신위 구성도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인물로 채웠다고 지적했다. 혁신위 멤버들이 당내 각 계파의 통합을 추구하기보다 노무현 사상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혁신안을 내놓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의 지적대로 친노계는 패거리 정신, 일종의 ‘선민(選民)의식’에 젖어 있다. ‘노무현 정신’의 본질은 탈(脫)
권위, 친(親)서민임에도, 진작 정치권의 친노들은 그들만의 권위, 특권의식을 움켜쥐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같은 지붕 아래서 정치를 하는 다른 계파는 사이비나 사쿠라 정도로 취급한다. 친노 특유의 배타성은 여기서 출발한다.
새정연 주인은 친노계?
김경협 수석사무부총장의 ‘세작(細作)’ 발언은 친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선민의식의 압축판이다. 김 부총장은 6월 12일 SNS를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은 김대중·노무현 정신계승, 즉 친DJ·친노는 당원의 자격이다. 비노는 당원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당내 비노계를 겨냥해 “새누리당 세작들이 당에 들어와 당을 붕괴시키려 하다가 들통났다”고도 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정권을 잡았던 친DJ도 ‘당원 자격’으로 인정했지만 실제론 지금 당내에 정통 친DJ는 몇 명 남지 않았다. 호남 출신 의원들이 ‘DJ 마케팅’을 하고 있지만 김대중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동교동계 출신 한 원로는 “호남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DJ를 팔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일선 정치권에서 물러난 상태”라고 말했다.
따라서 김 부총장의 ‘친DJ 당원론’은 ‘친노 당원론’을 강조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고 봐야 한다. 실제론 새정치민주연합의 주인은 친노계라는 철저한 배타성이 묻어 있다.
나머지 당원들을 새누리당의 세작으로 표현한 건 선민의식의 극치다. 한 식구로 보기보다는 뒤에서 여당에 이로운 일만 하는 간첩이라는 인식이다. 김 부총장은 노동운동을 하다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 사회조정3비서관을 지냈고, 노무현재단 기획위원도 역임했다. 골수 친노인 그에게 당내 다른 계파는 모두 배척의 대상인 점이다.
친노의 배타성은 뿌리가 깊다.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친노 세력은 그들만의 이너서클을 구축했다. 청와대는 386 친노가 장악했고, 여당에선 ‘노무현 키즈’들이 대거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문재인 대표 주변의 ‘3철(양정철·이호철·전해철) 9인방(정태호·윤건영·소문상 등)’은 참여정부 때 이너서클을 구축해 태생이 다른 같은 당 사람들의 권력 진입을 철저히 막았다. 지금도 이들은 문 대표 주변에 차단막을 치고 있다.
친노는 외부세력의 영입에 의한 외연확장에는 무관심하면서 친노의 확장성에는 열성적이란 비판도 당내에서 자주 나온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김현 의원을 비롯한 친노 비례대표 초선 의원들에게 지역구를 주기 위해 곳곳에서 현직 밀어내기가 시도되고 있다는 불만도 들린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김경협 부총장의 발언은 ‘참을 수 없는 친노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며 “20대 총선에서 친노의 무리한 자기사람 심기가 시도된다면 현직 지역구 의원들의 집단 탈당으로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친노가 선민의식을 갖고 있다면 당내 대다수 비노는 천민(賤民)의식에 빠져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파다하다. 당의 주요 의사결정, 재보선 공천, 비대위나 혁신위 구성에서 철저히 배제됨으로써 당내에서 ‘천민’ 취급을 받는다는 불만이다.
비노는 천민 신세를 탈피하기 위해 여러 갈래로 저항을 하고 있다. 안철수-김부겸-손학규 ‘3각 연대설’, 천정배-박주선 중심의 ‘호남신당설’, 문재인 중심 친노 주류에서도 찬밥 신세인 범친노계의 ‘집단탈당설’ 등 시나리오도 다양하다.
“4개 그룹에서 창당 준비”
박지원 의원은 최근 “최소 4개 그룹에서 분당창당, 신당창당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특히 “호남 여론 주도층은 호남 창당을 바라지 않지만 민심은 다르다”고 했다. 호남신당 창당 가능성을 제기한 셈이다. 이를 두고 야당 관계자는 “일종의 천기누설을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호남의 비노계 현역 의원들은 자신들이 DJ 정신을 계승한 야당의 ‘적통(嫡統)’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동교동계의 원로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또 친노계로 부터도 천민취급을 당하고 있다. 그럴 바에야 뛰쳐나가 딴 살림을 차리는 게 살 길이란 인식이 팽배하다. 호남민심이 문재인 대표가 이끄는 새정치연합에서 떠나 있음은 지난 4·29 광주 서을 재선거에서의 무소속 천정배 후보 승리로 확인된 바 있다.
호남 정치권을 부글부글 끓게 하는 건 김상곤 위원장이 이끄는 혁신위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호남 물갈이론’이다. 박지원 의원은 “새정치연합 국회의원 130명 가운데 호남 의원은 28명에 불과하다. 130석을 개혁의 대상으로 놓아야 국민의 지지를 받지, 28석을 개혁하겠다는 얘기는 반혁신적”이라고 반박했다.
친노계에 사사건건 반기를 드는 조경태 의원의 행보도 심상찮다. 조 의원은 최근 “혁신위원들은 문재인 대표 전위부대 같다”고 일갈했다. 혁신위가 이 말과 박지원 의원의 ‘4개 그룹 신당창당론’을 당내 불신과 분열을 조장하는 막말로 규정하자 조 의원이 반격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소신 발언까지 말문을 닫겠다고 하면서 전권을 쥔 듯한 발언을 하고, 문 대표가 화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항간에서 말하는 것처럼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결국 4·29 재보선 참패로 자중지란에 빠진 당을 추스르겠다며 출범한 혁신위가 혁신은커녕 당내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하는 모습이 잇달아 노출되고 있다. 이 때문에 야당 내에선 비노계 일부가 혁신위 활동 종료 시점에 친노 패권주의 심화를 명분으로 거사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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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