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사면 뒷거래 지하시장’에 대해 일반인을 상대로 질문해봤다. 취재진이 만난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부분) 있을 거다”는 답변을 했다. 이유를 물어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떠올렸다. 돈 앞에 무너지는 권력이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지 않느냐는 부연이었다.
모 대기업 관계자는 “전관예우가 통하던 시절 기업 총수의 사면이 걸린 경우 기업 법무팀이 나서 법조계 인맥을 찾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대형로펌의 변호사는 “가석방이나 사면의 경우 검찰 고위직 출신이나 판사 출신 변호사를 통해 문의가 들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과거 유력 정치인을 통한 사면 로비 사례를 보더라도 사면 관련 뒷거래 시장을 짐작할 수 있다.
박양수 전 의원은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수감된 정국교 전 의원이 광복절 특사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2010년 정 전 의원의 형으로부터 3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2012년 기소됐다.
박 전 의원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정 전 의원은 결국 특사를 받지 못했다. 김태랑 전 의원도 전직 군수에게서 특사로 석방되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천신일 전 세중나모여행 회장은 사업가 이모 씨로부터 2008∼2010년 특사 청탁과 함께 21억 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허위학력 논란을 빚었던 신정아 씨도 2006년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측으로부터 특사 청탁과 함께 2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가 선고됐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사면에는 지하시장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박 의원은 당시 사면법 개정을 위한 법사위 입법청문회에서 “법무비서관을 할 때 사면에 관여했었는데, (청와대에서 나와 변호사로 활동할 때) 여러 차례 유혹을 받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박 의원은 “어마어마한 거액의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면서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이 같은 제의를 받은 바 있다”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또 “사면은 기준이 분명치 않고 형기 절반이 잘려나가기 때문에 큰 시장(이 형성돼 있다)”면서 “(변호사) 선임계를 내서 합법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자신에게 로비를 요청한 사면 대상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는데, ‘어마어마한 거액’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재벌 등 재계 거물이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업계는 특사를 둘러싼 청탁과 뒷거래가 성행한 데는 사면에 외부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는 제도상의 맹점에서 비롯됐고 전한다.
일반사면의 경우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특사는 법무부장관의 보고를 통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하는 절차로 이뤄진다.
때문에 특사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인 만큼 로비는 여권의 실세 중 실세를 타깃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과거 정치권에선 특사를 두고 ‘정경유착의 끝판왕’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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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