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사우디, 메르스 바이러스도 같다
한국과 사우디, 메르스 바이러스도 같다
  • 이종천 [ 한국-사우디 친선협회 회장]
  • 입력 2015-06-15 11:16
  • 승인 2015.06.15 11:16
  • 호수 1102
  • 60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제 경제, 문화 영토 확장하고 통일의 길로 가자

이종천 [ 한국-사우디 친선협회 회장] 사우디 중동에서 왔다는 메르스 바이러스로 한국 경제가 아니, 최고 의료 수준이라는 한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사우디와 메르스 바이러스도 일치한다는데 우연인지, 아니면 일치하는 사례가 있는지, 아무튼 양국에 비슷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에서 씨족 족보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고려 왕조 개국(918년) 전후로 알려져 있다. 학자들에 의하면 지금 한국에 300여개 성이 있는데 이중 과반수는 외래 성씨라고 한다. 아랍 국가인 이슬람 종주국가 사우디도 100년 이전에는 씨족 족보는 없었다고 한다. 국가나 개인이나 씨족 뿌리를 찾는 일은 아주 중요 하다. 과거를 알고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야 강대한 국가, 풍요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

아랍인 후손 한국인 덕수 장씨

한국에 아랍인을 시조로 하는 씨족이 있다. 덕수 장씨다.

덕수 장씨 종친회에 의하면 종원이 남한에만 3만 명이라 한다.

고려시대 많은 아랍인이 왕래한 벽란도는 지금의 북한땅, 개성공단 부근이다.

아랍인처럼 장사를 잘하는 사람을 우리는 개성 상인이라고 한다. 역사를 보면 벽란도 인근에 덕수 장씨 뿐 아니라 많은 아랍인 후손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역사로 추정한다.

불모지 사막에서부터 육지로 바다로 벽란도에 와서 정착한 이들에게 아직도 아랍 상인의 피가 흐르고 DNA가 있다면, 통일 후에 한국에서 통일비용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조선시대에는 원나라에서 화약이 들어온 항구가 벽란도라 당시 원나라에서 많이 살고 있던 아랍인들이 벽란도로 이주 한것으로 추정이 되는 현실로 보아 지금 북한에는 많은 아랍인 후손들이 살고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아랍인들은 이렇게 신라시대에서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 시대에도 육로나 해상으로 아시아에 많이 이주하여 오늘날 한반도에 아랍인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한국과 아랍의 교류는 통일신라에 찾아온 아라비아 상인들로부터 시작한다. 신라는 비단, 검, 사향을, 아랍은 향료, 유리기구 등을 서로 교환 했다.

이런 교류 역사는 통일신라(AD 676-918)를 아랍 세계에 최초로 소개한 아라비아 상인 술레이만의 “중국과 인도 소식”이라는 여행기에도 있고, 현재도 남아있는 중세 아랍 문헌에도 나타나 있다. 중세 아랍 문헌에는 당시 신라 거주 아랍인들의 삶, 아랍인들이 바라본 신라의 지형, 자연환경, 생활상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특히 유럽 세계지도에 한국이 등장한 시기보다 400여년이나 앞서는 아랍지리학자의 세계지도(1154년)는 한국-아랍 만남의 유구한 역사와 뿌리깊은 인연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신라시대 처용가에 나오는 처용도 아랍인이라는 설이 있다. 많은 아랍인들이 육로로 그리고 신라 해상왕 장보고와 무역 교류를 하기 위해 해로로 많이 왔고, 이때부터 신라가 살기 좋은 나라로 아랍인들에게 소개가 되어 많은 아랍인들이 살았다 하며, 페르시아인들도 왔다고 한다

1230년 발행한 <아랍 사서>에 의하면 7세기 중엽 폐망한 사산조 폐르시아 왕자 와비단이 651년 신라에 와서 20여년간 살다가, 왕정 복구를 위해 이라크 바그다드로 귀환했다 한다.

신라 시대는 Abbas 왕조(이슬람 왕조, 750-1258) 시대로 아랍인들은 지금의 울산항으로, 고려때는 벽란도로 왔다. 이슬람교도로서 메카, 메디나 성지를 찾는 아라비아인들은 어느 지역에 살든지 그들의 고향은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다. 이슬람 국가인 이란과 터키는 아랍 국가가 아니다.

원나라와 고려는 혼인을 하는 전략적 우방국이었다. 고려 충렬왕(1274-1308)과 결혼을 하기 위해 원 세조의 딸 제국공주가 고려에 올 때 공주의 시종으로 아랍인을 많이 데리고 왔다고 한다. 그때 한국에 온 아랍인 중 한 분이 장순용이라는 이름을 왕으로부터 하사받아 정착하였는데, 이분이 덕수 장씨 시조이다.

이때 고려에는 아랍인들만의 공동체가 만들어졌고, 고려 정부의 관리로 아랍인이 임명되기도 했다.

고려사에는 1024년과 1025년에 각각 100명의 아랍인들이 국제 무역항인 벽란도로 입국했다. 고려 왕으로부터 성씨를 하사받은 아랍인으로는 덕수 장씨만 알려져 있지만 다른 성씨를 하사 받은 아랍인도 있을 것이다.

그간 조상을 찾기 위해 덕수 장씨 종친회에서는 “한국-아라비아 관계”라는 제목의 소논문을 영문으로 발행, 1967.8.8 사우디 아라비아 파이잘 국왕에게 편지로 전달한 바 있다.

한반도에 사는 아랍 후손 통일의 가교 된다

한국은 아랍, 아라비아인들과 1200년 전 신라시대부터 교류가 있었고, 1962년 양국 수교 이후 70년대 중동 건설 붐이후 많은 근로자와 간호사들이 사우디에 갔다.

KSFS는 이러한 양국간 교류 역사의 공동 연구와 병행하여, 관계 발전사업을 진행 하고자 한다.

한국에는 70년대 1,2차 오일쇼크 이후 사우디에 주로 건설근로자로 고생한 연인원 500만 명(절반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을 위한 공동 쉼터가 되는 ‘Saudi Arabia Culture Town’을 조성하려고 한다.

고구려 유민으로 당나라 장군이 된 고선지는 이슬람제국과 싸운 Talas전투(751)에서 패하여 포로 2만 명이 이슬람국가에 살면서 이들 제조기술을 이슬람제국에 전파하였다. 이중 상당수가 고구려 유민(인구 미상)이라는 학자들의 주장이 있다. 최근에도 매년 10만명의 한국 기업인들이 사우디를 찾고 있어 이들과 후손들에게 역사와 한국을 알리는 ‘Korea Culture Town’이 필요하다.

아라비아 반도는 위대한 문화와 역사를 가진 국가다. 금년 초 즉위한 사우디 살만 국왕의 리더십과 새로운 세대교체가 인류평화에 기여하는 새 역사를 건설하길 희망한다. 그리고 신라 후손인 한국인들에게 아라비아 상인들의 DNA도 있을 것이라 여긴다. 우리의 우수한 기술을 아라비아에 이전하여 자본이 많은 사우디와 함께 번영을 향해야 한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인도 모디 총리는”한국은 인도 발전에 영감을 주는 나라”라고 했다. 인도의 공주가 신라의 김수로왕과 결혼하여 공유하는 가치가 많다는 의미였다.

“한국은 인도발전에 영감을 주는 나라”

중국의 수나라, 당나라 황실은 70% 이상이 북방민족, 호족이라 한다. 그러나 당나라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우수 인재를 시험으로 선발, 신라의 최치원도 당의 공무원이 되었다. 원나라도 상인적 마인드를 가진 아랍인을 왕실 측근 고위직에 임용했다.

이제 6자회담은 북한과 인연이 있는 형제국가들이 참여 해야 한다.

아랍과 이슬람 종주국 사우디가 과거 아랍인들이 많이 거주한 북한 벽란도 인근 개성공단에 진출하여 북한을 도와주고, 그리고 북한에 거주하는 덕수 장씨를 사우디 정부 공무원으로 임용하는 교류가 시작되면, 통일의 가능성도 바라볼 수 있다.

사우디에는 70년대 ‘중동붐’ 시대에 간호사로 진출한 한국 여성들이 사우디 남자와 결혼하여 가정을 가진 세대도 많다. 사우디가 그리고 인도가 한반도 통일에 가교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ilyo@ilyoseoul.co.kr 

이종천 [ 한국-사우디 친선협회 회장] ilyo@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