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사칭 사기사건 ‘전모’
국가정보원 사칭 사기사건 ‘전모’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0-07-06 10:01
  • 승인 2010.07.06 10:01
  • 호수 845
  • 1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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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S대출신 국정원 국장이야!” 여의사 넘어갔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발칵 뒤집혔다. 신분 노출이 안 된다는 점을 악용한 국정원 사칭 사기사건이 매년 발생하고 있기 때문. 국정원을 사칭한 불륜, 사기사건 등이 해마다 증가하면서 국정원의 위상추락을 실감케 하고 있다. 최근 국정원 국장행세를 하며 여의사를 유혹해 억대의 돈을 가로챈 사기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6월 28일, 서울 성북경찰서는 국정원 국장이라며 신분을 사칭해 여의사 김모(40)씨에게 접근, 수억 원을 뜯어내는 등의 혐의(사기 등)로 성모(46)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명문대 출신 미모의 여의사도 국정원 국장이라는 말에 깜빡 속아 넘어간 황당한 국정원 국장 사칭 사기사건 전모를 파헤쳐 본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지난 6월 28일 국가정보원 간부 행세를 하며 여의사에게 접근해 억대의 돈을 사취한 혐의(사기 등)로 성모(46·무직)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성씨는 2004년 11월께 온라인카페 모임에서 만난 의사 김모(40·여)씨에게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국정원에서 국장을 맡고 있다며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접근, 2005년 1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빌라 명의 이전 등의 명목으로 70여 차례에 걸쳐 2억 6000만 원 가량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국정원 국장행세에 속아 넘어간 여의사

성씨의 사기배경엔 서울대와 국정원이 있었다. 완벽한 사기를 위해 둘의 데이트 장소는 서울대와 인근지역이었다. 또한 성씨는 호감형 외모에 뛰어난 화술로 여의사 김씨를 속였다.

성씨는 “서울대 법대에 국정원의 연구소가 있다”며 “정책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고 김씨를 속였다.

성씨의 사기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서울 강남의 요지인 도곡동 타워팰리스 인근에 위치한 자신의 토지 100평을 김씨에게 이전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곤 법원에서 소유권을 인정받은 등기문서라며 사문서 위조도 서슴치 않았다. 때문에 김씨는 별다른 의심없이 성씨의 거짓말을 믿었다.

이후 성씨와 김씨는 가까워졌고, 성씨는 김씨가 자신의 말을 믿고 있다고 판단, 지난 2005년부터 본격적인 사기행각을 벌이기 시작한다.

성씨는 투자하는 사업에 초기 자금이 필요하다며 급히 돈을 요구했다. 별다른 의심없이 성씨에게 돈을 줬다. 그 이후에도 성씨는 빌라 명의의전, 비자금 세탁 등의 명목으로 김씨에게 돈을 가져갔다. 이렇게 성씨는 김씨에게 지난 2009년 2월까지 78차례에 걸쳐 2억 6000만 원을 뜯어냈다.

성씨는 “자신이 국가 중요 정책 담당 실무자라 본인 명의 통장이 없고 인적사항이 노출되면 안 된다”면서 김씨의 통장을 빌려 쓰기도 했다.


다른 사건 중 드러난 성씨 사기 사건

하지만 성씨의 사기 전말은 우연찮게 드러났다.

조직폭력배 남씨 등이 김씨의 병원에 찾아와 진료중인 환자를 내 쫓으며 성씨가 감정평가 수수료 명목으로 받아간 3000만 원을 받으러 왔다며 협박한 것. 남씨 등은 성씨가 쓴 것으로 보이는 차용증을 내밀며 난동을 부렸다. 이로써 김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통장에 3000만 원이 입금되어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된다. 성씨가 김씨 통장을 빌려서 범죄에 사용했던 것. 결국 김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조폭들의 협박에 못 이겨 2000만 원을 건네준다.

또 나머지 1000만 원을 받기 위해 조폭들이 자신들과 성씨를 연결해준 또다른 A씨에게 강제로 차용증을 받아 2008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부하들을 동원해 폭행과 협박을 일삼다 경찰에 적발돼, 결국 성씨의 국정원 사칭 사기행각의 전모가 밝혀진다.

조사과정에서 성씨는 지방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정한 직업 없이 지내던 백수로 밝혀졌다. 게다가 사기 등 전과 7범이었다.

경찰조사에서 성씨는 “김씨와 연인관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거짓말”이라며 강력히 부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성씨는 김씨에게 가로챈 돈 2억 6000만 원은 유흥비로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국정원은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국정원은 지난 2007년 11월 21일, 국정원 사칭 사건이 매년 증가하자 ‘사기사건 유형’을 정리해 공개했다.

국정원이 공개한 주요 사칭·사기 수법은 다음의 다섯 가지다.

▲‘비밀사업’‘비자금 관리’ 등 명목으로 비공개 국가 차원의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고수익을 조건으로 투자를 제안하는 유형 ▲국정원 직원이라 속여 이성의 환심을 산 뒤 결혼을 전제로 사귀면서 거액의 금품을 요구하는 유형 ▲취업 알선·민원 조기 해결·각종 사업 인허가 및 사업자 선정 등에 편의를 봐주겠다면서 금품을 요구하는 행위 ▲정보기관원임을 내세워 협박·폭행·채무 불이행 등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각종 이권사업 등에 압력을 행사 ▲ 각종 지역 선거 등에서 특정 정치인과 결탁해 상대 후보를 협박하는 등 불법 개입을 시도하는 사례 등이다.
국정원은 정보기관 직원은 민간인 대상 투자 알선행위를 일절하지 않고 개인적인 이익 추구를 위해 신분을 노출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그리고 국정원 직원은 공무원으로서 정치 활동이 일절 금지돼 있다. 취업ㆍ사업 인허가 등 민원 청탁도 받거나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국정원은 직원 사칭ㆍ사기 사건 범인들에 대해 “대부분 가짜 신분증과 명함을 사용하고 전화 발신자 표시에 ‘국가정보원’이라고 찍힌 전화를 걸거나 ‘비밀 사무실’이라며 사무실까지 임대해 직원 신분을 과시한 사람도 있었다”고 밝혔다.
덧붙여 “일부는 국정원에서 고위직ㆍ특수직을 맡고 있다고 내세우거나 정부 고위직과 접촉이 잦은 것처럼 속였으며 신원 확인을 통해 가짜 신분이 드러날 우려가 있을 경우 ‘국정원에서도 모르는 비밀ㆍ특수요원’이라고 둘러댔다”고 설명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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