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이해찬·문희상 웃고 울고 정대철·이상수·이재정
정동영·이해찬·문희상 웃고 울고 정대철·이상수·이재정
  • 김판수 
  • 입력 2004-08-18 09:00
  • 승인 2004.08.1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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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승리한 것에 대해 한나라당은 ‘다 이긴 경기가 뒤집혔다’고 분통을 터뜨렸고, 민주당 역시 ‘기적같은 일이 있어났다’는 반응이었다. 사실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노무현 후보가 결정된 후 펼쳐진 ‘친노 대 반노’의 갈등을 기억할 때, 노무현 후보의 승리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그러나 노 후보가 그 어려움을 뚫고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옛날로 따지면, ‘개국공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개국공신이라고 해서 현정부에서 다 잘 나가는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 출범 주역들의 오늘’은 극명하게 나뉘어져 있다.

참여정부 출범과 더불어 가장 잘 나가는 정치인은 역시 ‘천·신·정’으로 불리는 개혁파들이다. 지난 대선에서 공동선대본부장직을 맡아 ‘노무현 정권’ 출범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총선에서 ‘노인 비하’ 발언으로 금배지는 놓쳤지만, 내각에 입각해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수업을 착실히 받고 있다.정치개혁추진본부를 책임졌던 신기남 의원과 천정배 의원은 현재 152석 거대 여당의 당의장과 원내대표로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김원기 국회의장과 이해찬 국무총리 역시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정권 출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김 의장은 당시 노무현 후보 정치고문으로 활약했고, 이 총리는 기획본부장을 맡아 공을 세웠다.문희상 의원 또한 참여정부의 실세로 통한다. 선대본 출범 전부터 선대위에 참여해 노무현 후보를 도왔던 문 의원은 참여정부 첫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그후 지난 총선에서 국회에 재입성한 그는 여전히 ‘노심’을 가장 잘 읽는 실세로 통한다.이들 외에도 참여정부 출범에 기여한 인사들은 정계 곳곳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대선 당시 국민참여운동본부 사무총장을 맡았던 임종석 의원은 우리당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정책본부장이었던 임채정 의원과 조직본부장을 지낸 이호웅 의원, 기조위원장을 역임한 배기선 의원, 그리고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던 신계륜 의원 역시 거뜬히 의원직을 수성했다.

인터넷선거본부장을 맡았던 허운나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지금은 모 대학 총장에 임명돼 교육 일선으로 돌아갔다.‘개국공신’ 모두가 잘 나가는 것은 아니다. 정대철 선대본부장은 굿모닝씨티 비자금 4억원 등 기업들로부터 받은 25억원이 문제가 돼 징역 6년에 추징금 4억원을 선고받아 복역중이다. 이상수 총무본부장과 이재정 전 의원 역시 대선 당시 대단한 공을 세웠지만, 지금은 집행유예 신분이 되어 명예에 큰 상처를 남겼다.민주당 분당과정에서 우리당에 참여하지 않은 인사들의 오늘은 더욱 처량하다.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꼽혔던 추미애 전 의원은 당시 국민참여운동본부장으로 노 후보의 총애를 받았지만, 분당 후 ‘탄핵 후폭풍’속에 치러진 지난 총선에서 처절히 찢겨졌다.

추 전의원은 지난 5일 1년간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 로스쿨 객원 연구원으로 출국했다.‘대선 당시 의원들의 오늘’과 마찬가지로, 당직자 및 선대본 참가자들의 운명도 분명하게 나뉘었다. 일부는 청와대나 공사 등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삶에 적응해 가고 있지만, 백수생활로 생활고를 겪는 경우도 많이 있다. 당시 노무현 후보 캠프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주머니를 털고 카드를 긁었는데, 이제 남은 건 부채 뿐”이라며 허탈해 했다.

김판수  ma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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