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와 총각 불륜사건부터 외국인 사건까지 ‘각양각색’

경찰은 하루 25시를 산다. 그 만큼 잠잘 틈도 없이 바쁘고 고된 하루라는 뜻이다. 크고 작은 사건에서부터 대형 살인사건까지 온갖 사건들로 넘쳐난다. 심지어 길을 묻는 사람에서부터, 잡상인, 범죄자들까지 엉키어 경찰서의 하루는 스펙타클하고 다이나믹하다. [일요서울]은 서울의 중심인 남대문을 관할하고 있는 남대문경찰서를 찾아 경찰관의 애환을 취재했다. 시민들과 다름없이 월드컵 열기에 빠져있지만, 경찰서의 하루는 밤낮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경찰서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지난 6월 22일, 오전 9시 00분.
경찰차가 쏜살처럼 거리를 질주해 경찰서 안으로 들어와 섰다. 차 문이 열리자 사복 경찰들에 이어 수갑을 찬 한 남자가 내렸다. 죄를 진 남자는 초췌한 모습으로 경찰들에게 이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음주에 인사불성, 형사 폭행시도
경찰서의 하루는 이처럼 바쁘게 시작된다. 경찰서 입구에 선 전경들을 지나 경찰서 안으로 들어섰다. 바쁘게 움직이는 경찰관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간밤에 있었던 강력사건 현황을 체크하기 위해 강력1팀을 찾았다. 강력1팀은 7층에 위치해 있었다.
모 방송사 취재팀이 지난밤에 있었던 외국인 범죄를 취재하고 있었다. 취재대상은 신용카드를 불법 복제한 루마니아 국적의 남성. 신용카드를 불법으로 복제하여 5000만 원 상당의 현금을 인출해 사용한 혐의였다
남대문 경찰서는 남대문시장을 비롯해 힐튼호텔, 롯데호텔, 조선호텔, 프라자호텔 등 대형 호텔들이 위치해 있어 외국인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때문에 이곳에 근무하는 경찰들은 외국인 범죄에 대해 능통해 있었다.
사건을 담당한 김득식 형사는 “신고 접수 후 CCTV 분석을 통해 이동경로와 출국사실을 확인했다. 또 다시 범행을 하기 위해 입국한 용의자의 행적을 추적해 검거했다”고 말했다.
오후 5시 30분. 한 여성이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통합형사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연남에게 폭행을 당한 그녀는 내연남을 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이 여성의 진술에 따르면 유부녀인 그녀는 보험설계사로 일하면서 내연남과 동료로 만났다. 남자는 총각이었다. 유부녀와 총각의 만남은 곧 불륜으로 이어졌다. 결국 가정도 파탄이 났다. 그런데 내연남이 다른 여성을 사귀면서 만나주지 않고 피했다. 그녀는 우연히 내연남이 밀회를 즐기는 약속장소를 알게 됐고 화가 난 그녀는 그곳을 찾아 갔다. 이후 두 사람은 실랑이를 벌이다 그녀가 먼저 벽에 부딪쳤고 이에 내연남이 쓰러진 자신을 폭행했다는 것. 이 여성의 고소로 남자는 저녁 9시께 경찰에 출두했다.
총각과 유부녀의 사랑의 종말, 그 한편의 통속소설의 이야기나 다름없는 일이 경찰서에는 매일같이 일어난다. 그들의 고소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한 채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밤 10시 30분. 00백화점 절도사건 피해자 4명과 피의자 1명이 조사를 받기 위해 왔다.
40대의 피의 여성은 수수한 옷차림의 일반 주부였다. 그런 그녀는 백화점 각층을 돌아다니며 명품 화장품, 가방 등을 절도했다고 한다. 백화점 한 층도 아니고 여러 층을 돌아다니며, 절도행각을 벌였다는 점에서 상습범으로 보였지만, 사실 그녀는 초범이었다. 경찰에 온 그녀는 매우 초조한 모습이었다. 40대의 평범한 여성인 그녀가 왜 백화점에서 명품을 도둑질 했을까하는 의구심이 갔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하지만 그녀의 가방에선 백화점에서 훔친 여러 가지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다.
밤이 깊어갈수록 경찰서에는 술에 취한 취객들로 난장판을 이루기 시작했다. 술에 취해 경찰에게 호통을 치는 호통족에서부터, 한번만 봐달라고 사정하는 사정족까지 이루말 할 수 없는 인간군상들에 모습들이 들어왔다.
새벽 1시 25분경.
술에 만취한 70대 남성이 폭행혐의로 경찰서에 왔다. 입술이 터져있고 얼굴과 팔등에 선명한 멍자국이 몸 다툼을 증명해줬다. 알코올 냄새가 진동할 정도로 만취한 이 남성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혀 꼬인 소리로 “동네싸움에 경찰이 왜 끼어드나. 나는 집에 가겠다. 경찰청장과 통화해 다 말하겠다”며 계속 돌아다니면서 경찰업무를 방해했다. “내가 왜 붙잡혔나”라는 질문도 수차례 반복했다.
피의자가 술에 취한데다 피해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어 조사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피의자는 집에 가겠다면서 쉴 새 없이 욕설을 했다. 형사들은 “어르신 진정하시라”면서 어르고 타이르고 의자에 다시 앉히기를 수차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계속되는 욕설과 형사를 툭툭 치며 업무를 방해해 결국 피의자 손에 수갑을 채웠다. 수갑을 채우는 과정에서 이 남성은 강하게 저항하며 손과 발로 형사들을 쳤다. 3명의 형사가 각각 양쪽 손 등을 잡고 제압하자 형사들의 손을 이로 깨물었다. 가까스로 수갑을 채우자 그제서야 조용해졌다. 형사들은 “어르신 힘이 장사”라며 혀를 내둘렀다.
지난 22일 오후에는 황당한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주변사람들이 나를 째려보는 것 같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면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며 처벌이 가능한지를 묻는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 형사는 잘 타일러서 끊었다. 형사는 “오늘 소금이라도 뿌려야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상 풀가동 시스템
형사들의 주당 근무 시간은 계산이 힘들다. 특히나 범죄현장에 있어야 할 외근 형사들에겐 ‘칼퇴근’은 꿈같은 이야기다.
강력계의 김 모 형사는 “주당 근무 시간은 계산이 어렵다. 사건이 있으면 밤낮 없이 철야로 뛰어다녀야 한다”고 외근경찰의 애로점을 전했다.
경찰들은 범인을 쫓다보면 범인이 휘두른 칼에 맞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민생치안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얼마 전 살인사건을 해결했다는 박 모 형사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범인의 주변을 수사해, 범인 은신처 근처에 1개월 이상 잠복해 있다가 체포했다. 집에도 못가고 차에서 잠자고, 숙식을 해결하다보니 노숙자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범인을 체포할 때 경찰관으로서 보람을 참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형사들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푸석한 피부에 눈이 붉게 충혈 된 형사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복도 끝에 위치한 계단은 형사들의 흡연 장소다. 높은 업무강도 때문인지 형사들의 흡연량도 상당했다.
경찰 관계자는 “여름은 여름이라서 힘들고, 겨울은 겨울이라서 힘들다”면서 “교대근무라곤 하지만 사실상 풀가동 시스템”이라며 고충을 이야기했다.
이어 “소방서나 경찰서 모두 인력이 부족하고 환경이 열악하다”며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적 부담은 없는가란 질문에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집회 잦고 강력범죄 드문 지역
남대문경찰서는 평소 시위 및 집회가 잦고 강력범죄 발생은 드문 곳이다.
남대문 경찰서는 관할구역에 서울광장·서울역·청계천 일대가 포함돼 집회가 잦을 수 밖에 없다.
여성청소년계 한철민 형사는 “남대문경찰서는 상해·절도·단순폭력사건이 일어나지 강력범죄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오피스와 본사 밀집지역이라 대낮에 사람이 많고 밤이 되면 다 빠져 나간다. 주거지가 없고 주변에 조폭진원지도 없기 때문에 강력범죄를 찾기 힘들다”며 최근에는 명동 화장품가게 절도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지능팀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기획수사가 없다. 이 부근은 집회가 많아 기획수사를 할 만한 여유가 없다”며 종로와 4대문 일대는 유난히 집회가 잦다고 답했다. 집회가 많을 때는 하루에도 수 십여 차례 일어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날 타임오프제 폐기를 요구하며 서울지방노동청 회의실을 점거한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 민주노총 간부 4명에 대해 퇴거불응혐의로 연행돼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경비계는 이날 남아공 월드컵 나이지리아전의 경기가 열려 밤부터 거리응원 질서유지를 위해 오후 10시께 출동했다. 경비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약과다. 16강 올라가면 더 힘들어 질 것”이라며 운을 뗐다.
“승패에 따라 인파 해산시간이 틀리다. 아르헨티나 전은 지는 바람에 1시간 안에 대부분 해산했다. 그리스전은 이겼지만 비가 와서 인파가 많지 않았다”고 전했다.
아르헨티나 전의 경우 거리응원을 위해 모인 인파는 서울광장이 10만명, 강남이 12만명이었다며 “아르헨티나전의 경찰 인력은 1000여명이었다. 오늘 당직인 강력4팀도 거리응원 현장에 출동해 소매치기 등 범죄를 적발한다”고 말했다.
경찰서도 월드컵 열기로 후끈!
남대문 경찰서도 ‘2010 남아공 월드컵’에 대한 관심으로 뜨거웠다.
[일요서울]이 남대문경찰서를 찾아간 22일은 아직 한국의 16강 진출여부가 판가름 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때문에 한국이 16강 자력 진출 가능성과 새벽에 열리는 나이지리아전의 승부를 점치는 이야기들이 사담의 주 화제였다. 또 한국경기 뿐만 아니라 이변이 많이 일어난 남아공 월드컵의 결과들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오전 9시 통합민원봉사실에서는 전날 북한과 포르투갈의 경기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북한이 7:0으로 졌더라”라며 북한의 대패에 대해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나란히 16강 진출을 바랬던 경찰관들은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7층에 위치한 강력팀도 업무 짬짬이 축구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형사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승리를 장담했다. “나이지리아전은 쉬운 승부는 되지 않겠지만 이길 것”이라며 한국 16강 진출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한국 경기 뿐 아니라 다른 팀들의 경기결과도 줄줄이 꿰는 전문가(?)들도 많았다.
다음날 새벽 3시 30분께 열린 나이지리아전에서는 2:2 무승부로 한국이 ‘원정 첫 16강’의 쾌거를 이뤘다. 오전 6시가 조금 넘은 무렵, 통합형사팀은 나이지리아전이 끝난 후에도 경기관련 뉴스를 보며 16강 진출 기쁨의 여운을 즐겼다. 형사들은 “이정수 선수가 일등공신이다”라며 이정수 선수를 추켜세우기도 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경찰관 1인당 담당 주민수 편차 심각
경찰청에 따르면 2000년 9만 670명에 이르던 경찰관 수가 2009년 9만 9000여 명으로 9년사이 10%가량 늘었다. 경찰관 1인당 담당하고 있는 주민수는 2000년 520명대에서 2009년 490명대로 줄어들었다.
지난 3월 23일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경찰 1인당 담당 주민수가 가장 많은 곳은 용인으로 1229명이었고, 분당 1057명, 남양주 1042명, 일산 1032명, 화성동부 1018명이 그 뒤를 이었다.
이와 반대로 경찰 1인당 담당 주민수가 적은 곳은 서울 남대문이 50명, 종로가 148명, 혜화가 166명으로 나타났다.
경찰관 1인당 담당 주민수가 300명 안팎인 선진국과 비교하면 경찰관 수는 크게 모자란 편이다. 그 중에서도 경기도와 일부 대전지역은 경찰관 1인당 담당하고 있는 주민수가 평균 2배를 웃돌아 치안소홀이 염려된다는 지적이다.
용인 지역은 1인당 1229명을 담당하고 있고 이에 반해 서울 남대문이 1인당 50명을 담당해 지역 편차가 큰 것으로 드러났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지역별로 인구수가 다르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서울과 비교해서 인구수가 많은 지역의 경우 경찰관 한명이 담당하는 지역주민의 수가 너무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또 “담당하고 있는 인구수가 많으면 그만큼 임무를 수행하는데 어려움이 따르지 않겠냐”며 우려를 표시했다.
“국민의 안전과 치안유지를 위해 치안이 떨어지는 곳에 경찰관을 더 많이 배치하고 1인당 담당하는 인구의 적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며 대안을 제시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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