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무죄' 주장 무기수 김신혜의 절규
15년간 '무죄' 주장 무기수 김신혜의 절규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5-06-08 12:06
  • 승인 2015.06.08 12:06
  • 호수 1101
  • 3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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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
▲ <사진: SBS 방송 캡쳐 화면>

[일요서울Ⅰ이지혜 기자] 존속살해 혐의로 15년 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김신혜. 그는 자신과 여동생을 성추행한 아버지를 수면제 탄 양주를 먹여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김신혜는 15년 전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또 아버지는 자신을 성추행한 적이 없다며 누명을 벗겨달라고 호소했다. 마침내 법원은 김신혜의 재심 개시 결정을 위한 심문을 열었다. 사건 당시 경찰에서 범행을 자백했던 김신혜가 무죄를 주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성추행한 아버지 수면제 탄 양주 먹여 살해했다?
“남동생 대신 자백 강요받아… 누드사진으로 협박도”

2000년 3월 7일 오전 5시50분께 전남 완도의 어느 버스정류장 앞 도로에서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사건현장에는 깨진 방향지시등 잔해 물이 발견돼 A씨는 교통사고로 숨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A씨의 몸에서 출혈은 물론이고 눈에 띄는 외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부검 결과 A씨의 몸에서 수면제 성분인 독실아민이 검출됐다. 그리고 며칠 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A씨의 큰딸 김신혜(당시 24세)씨를 긴급체포했다.

집에서 술 건네고
버스정류장에 버렸다?

김 씨는 고모부와 함께 경찰서를 찾았다.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자백했다.

당시 진술에 따르면 김 씨는 자신과 여동생을 성추행한 아버지 A씨를 원망하고 있었다. 김 씨는 A씨를 살해할 결심을 하고 범행 두 달 전 A씨 앞으로 상해보험을 8개 가입했다. 그리고 사건 당일 모아놓은 수면제 30알을 가지고 A씨가 있는 완도로 향했다. 수면제가 섞인 술을 건네어 아버지를 살해한 뒤 사고사로 위장할 계획이었다.

오전 1시께 집에 도착한 김 씨는 수면제를 으깨어 가루로 만든 뒤 미리 준비한 양주에 섞었다. 그리고 A씨에게 약을 탄 양주를 건넸다. A씨는 의심 없이 큰 딸이 준 술잔을 받았고 연거푸 2잔을 마신 뒤 김 씨에게 드라이브를 가자고 제안했다.

차 안에서 A씨는 한동안 김 씨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A씨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김 씨는 인근 버스정류장에 차를 세우고 숨진 A씨를 그곳에 내려놓은 뒤 사고사로 위장하기 위해 서울에서 가져온 깨진 방향지시등을 주변에 떨어트렸다. 범행을 끝낸 김 씨는 조부모와 두 동생이 있는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그러나 A씨의 장례식에서 김 씨의 고모부가 김 씨의 범행을 눈치채고 경찰에 자수를 권했다. 결국 김 씨는 경찰서를 찾아 자신의 죄를 고백했고 경찰은 즉시 김 씨를 긴급체포했다.

경찰 조사 결과 오전 1시께 마을 검문소를 통과한 김 씨는 그 후 오전 5시 15분께 할머니 댁에 도착할 때까지 4시간의 행적이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김 씨의 집에서 수면유도제, 사망보험금, 길가 유기 등 범행 계획이 적힌 메모도 발견됐다. 마을 사람들이 김 씨를 위한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법원은 김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 <사진: SBS 방송 캡쳐 화면>

“나는 정말 억울하다
고모부·경찰이 꾸며낸 것”

그러나 경찰에서 모든 범행을 자백했던 김 씨는 갑자기 무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으며, 아버지가 자신과 여동생을 성추행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남동생이 경찰 조사를 받을 것을 우려해 자신이 대신 자백을 했다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김 씨의 주장에 따르면 사건당일 오전 1시에 마을 검문소를 통과한 뒤 인근 공중전화로 가 동생들이 있는 할머니댁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동생은 술에 취한 A씨가 주정을 부리다 방금 돌아갔다고 말했다. A씨의 집에서 100m거리에 할머니 댁이 있어 김 씨 남매는 A씨가 술에 취하면 할머니 댁으로 피신하곤 했다. 이 말을 들은 김 씨는 집으로 가지 않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시간이 늦어 친구들을 만날 수 없었던 김 씨는 혼자 바닷가 등대를 찾아 차 안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오전 5시였고 집 앞에 차를 세우고 A씨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자 할머니 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A씨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다. 김 씨는 고향에 내려와 A씨를 만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 사건 당일 고향에 내려온 것은 남동생의 부탁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또 자신의 자백은 고모부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A씨의 장례식장에서 고모부가 자신을 불러내 “남동생이 A씨를 죽이고 나를 찾아와서 뒤처리를 도왔다. 경찰이 지금 너를 의심하고 있다”면서 남동생을 대신해 김 씨에게 자수를 하라고 말했다는 것. 김 씨는 사실 여부를 남동생에게 확인하지도 못한 채 고모부의 손에 이끌려 경찰서에 갔다는 것이다.

김 씨는 “경찰이 남동생을 수사할까봐 거짓자백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경찰이 남동생을 용의선상에서 지웠다는 확신이 들어 거짓자백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김 씨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김 씨의 알리바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 김 씨의 고모부 또한 김 씨의 말이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최근 재심 청구 심문을 앞두고 김 씨는 당시 경찰이 자신의 누드사진으로 자백을 강요했다고도 주장했다.

부족한 증거 바뀐 기록
재판부 판결에 주목

그렇다면 누구의 말이 사실인 것일까. 김 씨의 가족들은 모두 김 씨의 편을 들고 있다. 김 씨의 동생들은 아버지가 자매를 성추행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 또 여동생은 고모부가 김 씨에게 대신 자수하라고 건넨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에서 김 씨의 자백 외 다른 물적 증거는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범행에 쓰인 양주병과 술잔을 발견하지 못했다. 또 수면제를 으깰 때 사용했다던 밥그릇에서는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김 씨의 차에서 A씨의 DNA도 찾지 못했다. 경찰은 또 김 씨가 방향지시등을 가져왔다던 서울 카센터에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또 전문가들은 A씨의 혈중 독실아민 성분은 수면제 30알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거기에 김 씨가 A씨의 명의로 가입했다는 8건의 상해보험 중 3건은 이미 해지돼 있었다.

이처럼 사건 내용을 들여다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이에 재판부는 15년 만에 김 씨에 대한 재심 청구 심문을 진행키로 결정했다. 지난달 13일 열린 심문기일에서 김 씨는 “경찰에 강압적인 수사와 무차별적인 폭행, 겁박 등을 당했다”며 “가석방과 감형 등을 포기하고 재심을 신청한 것은 내가 범인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심의 길을 멀고도 험하다. 15년 동안 무죄를 주장해 온 김 씨. 그의 노력이 사법부를 움직일 수 있을까.

jhooks@ilyoseoul.co.kr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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