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서면 굉장히 자유로워져요.”
배우 양금석에게 무대는 자유로움이다. 1981년 연극계에 입문한 그는 이후 드라마와 영화, 무대를 오가며 연기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수많은 배역을 맡았지만 양금석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은 역시 무대였다.

양금석은 최근 악극 ‘봄날은 간다’에서 명자를 연기하고 있다. 명자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월남전에서 아들마저 잃은 한 많은 여인이다. 한국사의 비극과 맞물린 명자의 일생은 관객들에게 애잔한 슬픔을 더한다. 악극 ‘봄날은 간다’는 2003년 첫 공연을 시작으로 공연마다 호평과 찬사가 이어졌다.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배우들의 열연이 매회 관객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랐거든요. 동네에 명자 같은 경험을 했던 분들이 있었어요. 지고지순하지만 모성으로 버텨낸 강인한 분들이요. 시어머니께 구박받는 며느리, 집나간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린 모습들을 떠올리며 명자를 연기했어요.”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의 양금석이지만, 악극 무대에 선 그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흥와 한의 감정을 고루 담긴 무대에서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악극 연기를 하면 일반 정극에서 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밑바닥에 숨겨진 감정까지 끌어내 최대로 극대화 시킬 수 있어요. 악극이 굉장히 기복을 가지고 연기해야 하거든요.”
절제된 감정만을 표현해야 하는 정극과는 달리 악극은 그녀가 가진 모든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악극’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멀리서 태평소 소리가 들린다는 양금석이 이 작품을 선택한 건 당연지사였다.
“‘내 머리가 족두리 쓰기 딱 알맞지 않아요?’와 ‘고향이 그리우면 언제든 오세요’라는 대사를 가장 좋아해요. 족두리 대사는 첫날밤의 첫 대사에요. 장면과 함께 보면 묘한 감정이 느껴지거든요. 두 번째 대사에서는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묻어나요. 이해되기도 하고 찡하기도 하고요.”
양금석 특유의 감정연기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은 곳곳에 있다. 특히 아들의 천도재에서 만난 비구니가 시어머니가 버린 자신의 딸임을 알아채는 장면, 그리고 늙어버린 남편과 조우하지만 자신을 못 알아보는 남편과의 만남 등은 배우 스스로가 아끼는 장면이기도 하다.
완숙한 연기…‘진짜 여자’를 보여줄 때
“사실 배우가 천직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양금석은 “맡은 일에 열심히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다”며 여배우의 삶에 대해 운을 뗐다.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했던 그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경기민요를 이수했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국악을 취미로 시작한 것은 그녀에겐 기회가 됐다.
“TV연기를 하다 보니 못 다한 에너지를 해소할 곳이 필요했어요. 2005년부터 지금가지 쭉 민요 공부를 해왔어요. 민요에는 흥과 한이 있거든요. 이게 악극 연기에도 도움이 됐죠.”
수많은 작품으로 대중과 만난 양금석에게 잊지 못할 캐릭터가 있다. 드라마 ‘분례기(1992)’의 명화와 연극 ‘욕망이란 이름이 전차’의 블랑쉬, 그리고 ‘봄날은 간다’의 명자다. ‘분례기’의 경우 주인공 똥내 역할을 먼저 제의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원작 소설을 읽고 명화라는 인물에 빠져 그 역을 연기했다.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는 사실 여자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지금이라면 진짜 여자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매혹적인 여성부터 한 많은 어머니까지 완숙한 연기를 선보인 양금석. 그녀의 따스한 봄날이 찾아오길 바라본다.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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