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질주하다 브레이크 걸린 중국 증시
과열질주하다 브레이크 걸린 중국 증시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 입력 2015-06-08 10:50
  • 승인 2015.06.08 10:50
  • 호수 1101
  • 5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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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5월 마지막 주 폭락… 조정장세”
아직까지 거품 폭발 징후 없어 그나마 다행


[일요서울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팽창을 거듭해 오던 중국 증권시장이 5월 마지막 주 폭락했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이번 폭락으로 중국 상위 20위 부자들이 날린 돈만 60억 달러(약6조6000억 원)에 이른다. 이들 부자는 5월 28일 선전과 상하이 증시가 각각 6.5%와 5.5% 폭락하면서 자산의 2.2%를 잃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들 두 증시의 주가지수는 29일 모두 소폭 반등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중국 증시가 이처럼 폭락할 수 있음이 드러나고 이후 조정국면을 거치면서 그 여파가 중국, 나아가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미국 워너브라더스에서 제작한 만화영화 ‘로드러너와 코요테’는 세계 곳곳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로드러너는 시속 24㎞로 빠르게 뛰어다니며 벌레를 잡아먹고 사는 새인데, 코요테는 이 새를 잡으려 쫓아다닌다. 코요테는 로드러너를 향해 정신없이 질주하다가 길이 갑자기 푹 꺼지는 순간, 즉 ‘두렵거나 피하고 싶던 상황에 지금 처해 있다는 걸 갑자기 깨닫는 순간’에 맞닥뜨린다. 증권시장에서는 이 순간을 ‘코요테 모멘트(coyote moment)’라고 부른다. 이번 중국 증시의 폭락 사태를 맞아 세계 언론은 중국에 ‘코요테 모멘트’가 닥쳤다고 보았다. 여러 주 동안 고수익을 좇아 증권시장을 향해 ‘묻지마 질주’를 계속해 온 많은 투자가들이 ‘코요테 모멘트’를 맞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국 시장에 닥친 ‘코요테 모멘트’

중국 주가는 그간 엄청나게 가열됐다. 중국본토 증시의 대표지수인 CSI300지수는 지난 1년 사이 두 배 이상 올랐다.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ChiNext 지수는 지난 12개월 사이 3배 뛰었다. 2014년 초 상장한 온라인 교육회사 취안퉁교육(全通敎育)의 주식은 지금까지 1300% 상승했다.

중국증시가 가열되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로 높은 주가수익률(PER:price earni ng ratio)을 들 수 있다. PER는 특정 주식의 현재 시세를 주식 발행 기업이 직전 12개월간 올린 순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예를 들어 A회사의 주식 값이 1만 원이고 이 회사의 주당 순이익이 1000원이라면 A주식의 PER는 10이 된다. 통상 증시 전문가들이 보는 적정 PER는 10~12이며 이 비율이 낮을수록 주가가 저평가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선전 증시에 상장된 주식의 평균 PER는 64다. ChiNext의 그것은 무려 140으로 이는 미국 나스닥이 닷컴열풍에 휩싸였던 당시의 수준이다.

증시의 문을 두드리는 중국인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4월 한 주 동안에만 400만개 이상의 증권거래 신규계좌가 생겨났다. 중국인들의 증권투자 열기가 거센 가운데 건설회사가 이름만 바꿔 하이테크 기업으로 변신해 주가를 2배 이상 끌어올리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지금 중국 증권시장은 한 마디로 너무 고공행진 중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느 시점에 경착륙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 시점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경고음은 이미 울리고 있다. 중국 태양광업체 하너지(Hanergy·漢能)는 홍콩 증권당국으로부터 주가조작과 관련해 조사를 받고 있다. 5월 20일 하너지 주가는 하루 만에 47% 폭락했다. 5월 21일 홍콩에 상장된 대부업체 고은금융(高銀金融·Goldin Financial)의 주가도 이튿날 43% 폭락했다. 잇단 주가폭락 사태에 투자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과열된 중국 증시의 거품이 언젠가는 폭발할 수 있다는 데 대해 우려하지 않는 증시 전문가는 별로 없다. 문제는 그 시점이 아니라 만약 폭발할 경우 그 여파가 어느 정도까지 미치느냐다. 많은 중국 개미 투자자들이 돈을 빌려 주식을 매입했기 때문에 증시가 대규모로 요동칠 경우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주식투자용 신용차입, 즉 유가증권 자금대출의 규모는 지난 한 해 사이 5배 이상 급증해 2조 위안(약360조 원)에 이른다.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컴퓨터로도 거래량 집계 못해

하루 거래량이 하도 많다 보니 전체 거래량을 컴퓨터로도 집계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중국 증시의 이상과열 현상을 놓고 펀드매니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4조8000억 달러를 주무르는 ‘블랙록’의 최고경영자 로런스 핀크는 중국 증시에 대해 “현재 우리는 전형적인 호황-불황을 경험하고 있다. 그것이 나쁘게 끝나지 않기를 희망하자”라고 <로이터>에 밝혔다. ‘애버딘 자산관리’의 아시아 담당 전무 휴즈 영은 시장이 “약간 카지노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양 투자가들뿐만 아니라 중국 본토에서도 자국 증시의 과열에 대한 경고가 나오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자국 증시가 ‘비이성적 충일(充溢)(irrational exuberance)’을 보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상과열’이라고 흔히 번역되는 이 표현은 지난 2000년대 초반 닷컴열풍 속에 미국 증시가 무한정 치솟자 당시 미국연방준비제도 이사장 앨런 그린스핀이 썼던 표현이다.

중국에서 근년 들어 증권시장이 팽창하고 최근 폭락사태까지 경험하게 된 것은 지난 10년 간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인해 중산층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중국정부는 기존의 투자 및 수출 주도 경제체제를 더 지속가능한 내수중심 구조로 가져가기 위해 각종 개혁을 추진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1년에서 2014년 사이 중국 증시는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이에 따라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이 증시로 몰려들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개미 투자자들 가운데는 돈을 빌려 증시를 찾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따라서 만약 언젠가 증시의 거품이 폭발할 경우 그로 인한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은 거품 폭발의 징후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중국 당국으로서는 그나마 다행이다.

중국 증시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이를 정부가 부추긴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지난 4월 중국 국영 신문은 “가서 홍콩 주식을 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개미 투자자들을 자극했다. 이와 함께 뮤추얼펀드로 하여금 홍콩에 투자할 수 있게 한 당국의 결정이 중국증시의 폭등에 방아쇠가 되었다고 보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11월 상하이증시와 홍콩증시의 교차매매를 허용한 ‘후강퉁’ 정책으로 인해 글로벌 투자자금이 상하이 증시로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유입되었고, 중국 본토 투자자들이 홍콩증시의 주식에 처음 접근하게 되면서 중국 증시에 불이 붙었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scottnearing@ilyoseoul.co.kr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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