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 MB맨· 친이계 인사 겨냥 ‘칼날’ 뽑아
부실인수 주도 지경부로 확대할 가능성도
[일요서울 | 김재현 프리랜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면서 검찰의 다음 행보에 정·관·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찰은 해외 자원개발 비리 의혹 수사에 재시동을 걸고 나섰다. ‘단군 이래 최대 나라 돈 유출’이라고 지적받는 캐나다 하베스트사(社) 인수 의혹을 본격적으로 수사할 조짐이다. 하베스트는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사업 중 가장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검찰은 한국석유공사와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 자택, 메릴린치 서울지점에 대해 지난달 12일 압수수색에 착수하면서 여권의 친이계와 해외자원외교에 관련된 기업들이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강 전 사장 등 핵심 관계자들은 2009년 캐나다 자원개발업체 하베스트와 정유 부문 자회사인 노스아틀랜틱리파이닝(NARL) 인수 과정에서 적정성 여부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추진해 1조원대의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하베스트 수사 결과에 따라 자원외교 의혹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 확대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MB맨으로 꼽히는 강 전 사장을 비롯해 지난 정부 주요 인사들까지 검찰이 칼날을 겨눌 가능성이 적지 않아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하베스트 인수는 이명박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해외 자원외교의 대표적인 부실 사례로 손꼽힌다. 석유공사에 대한 수사가 부실 인수를 주도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임관혁)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하베스트를 4조 6000억 원에 매입하며 계획에 없던 NARL까지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사업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시세보다 훨씬 비싼 1조 2446억 원에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인수 자문사가 메릴린치였다. 부실이 누적되자 석유공사는 결국 지난해 NARL을 매입 비용의 3%도 안 되는 338억 원에 매각했다. 석유공사가 하베스트를 인수하면서 업체의 요청에 따라 계열사인 '날'을 시장가격보다 비싸게 사들였고 지난해 날을 되파는 과정에서 총 1조3371억 원의 손실을 본 것이다.
감사원은 지난 1월 강 전 사장을 업무상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강 전 사장이 하베스트사의 정유 부분 계열사가 부실자산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인수를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왜곡된 사업추진계획 작성 등을 지시했다는 것이 고발 이유였다.
무엇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시 지경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최종 인수 결정을 내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검찰이 어떻게 결론을 내릴지 관심이 모아진다. 최 부총리뿐 아니라 이명박 정권의 최고 정책 결정권자들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날 경우 정치권에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의 칼끝이 친이계를 겨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강 전 사장은 지난해 5월 제출한 감사심의 의견서에서 “인수계약은 석유공사의 독자적인 판단과 능력에 따라 체결된 것이 아니다”며 윗선의 지시에 의한 인수임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또 강 전 사장은 “계약진행 상황을 설명하고 어려움을 토로하자 최경환 장관이 ‘하베스트 하류(정유시설)까지 포함해 열심히 해보자’고 지시해 인수계약을 최종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최 부총리는 “정유부분은 리스크가 크지 않나. 잘 검토해봐라”고 말한 것이 전부라고 반박했다. 인수를 지시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양측 주장이 엇갈리면서 의혹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하베스트-메릴린치-전 정권 실세
하베스트 인수 당시 자문사였던 투자은행 메릴린치의 서울지점장이 이 전 대통령의 ‘집사’로 알려진 김모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아들 이라는 점이 드러나 검찰에 고발된 점도 주목 대상이다.
야당은 “하베스트 인수가 성사된 뒤 김씨가 있던 서울지점이 80억여 원의 보수를 본사에 청구했다”며 “김씨가 하베스트 인수에 깊이 관여했던 증거”라고 주장했다.
또, 메릴린치의 계열사 중 한 곳이 하베스트 인수 직전 하베스트 보유 주식을 약 112만 주 가량 매입한 사실이 국회 자원외교 국정조사 과정에서 밝혀져 관련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메릴린치는 석유공사의 하베스트 인수에 자문을 맡았고 김씨는 당시 메릴린치 서울지점에 재직했다. 야권은 메릴린치의 투자자문사 선정 과정에 특혜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모임은 “2009년 3월 한국석유공사의 자문사 선정 심사에서 10곳의 후보 중 유독 메릴린치 서울지점이 비계량 평가에서 매우 높은 점수를 받았다”며 “김씨가 하베스트 인수 과정에서 단순한 팀원 이상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국민모임은 하베스트 인수에 대한 경제성 평가가 졸속으로 진행됐다고 지적하면서 메릴린치의 과도한 성공보수에도 의혹을 제기했다.
이 단체는 “석유공사가 하베스트에 지불한 금액을 기준으로 한 성공보수 요율에 따르면 508만달러가 성공보너스인데도 석유공사는 260만달러를 초과 지급했다”며 “피고발인과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의 공모를 의심해볼 유력한 정황증거”라고 주장했다.
국민모임은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국공무원노조, 정의당 등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하베스트 인수를 비롯한 자원외교 의혹과 관련해 석유공사와 광물공사, 가스공사 등 에너지공기업 전·현직 사장들을 배임 혐의로 이미 고발한 상태다.
이처럼 검찰이 한국석유공사의 '하베스트 부실 인수' 사건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메릴린치가 자문을 맡은 배경이나 하베스트의 부실 계열사 날(NARL) 인수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이 밝혀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우선 검찰은 메릴린치 지점장이 석유공사에 어떤 자문을 했고 날 인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우선 살펴볼 방침이다.
더욱이 메릴린치가 날 인수에 앞서 제공한 자산 가치를 당시 석유공사가 실사 조차 거치지 않고 받아들인 점 등에 비춰 강 전 사장과 김 전 총무기획관 등의 ‘친분’ 때문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실제 석유공사는 지난 2009년 10월20일 메릴린치의 투자자문보고서를 건네받은 지 하루 만에 날(NARL)을 인수하기로 하고 계약을 체결하는 등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수상한 뒷거래 정황도
MB정부 시절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최 부총리가 인수 계약을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 부총리 역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하베스트 인수 과정을 처음부터 살펴보면 곳곳이 의혹 투성이다.
2009년 석유공사는 하베스트 인수에 착수했다. 하베스트가 제시한 인수 옵션은 자회사인 NARL도 함께 인수하는 것으로 NARL을 끼워 팔아 폭리를 취함과 동시에 내부적인 문제를 해소하려 했던 것이다. 골칫덩이를 떠넘기기 위해서였다. NARL의 연간 적자폭은 1000억 원에 달했다. 섬에 위치해 입지도 좋지 않은데다 설비 노후화도 심각한 상태로 사실상 가치가 마이너스인 회사였다. 이에 1986년 NARL을 소유하고 있던 캐나다 국영석유회사는 이 회사를 단돈 1달러에 매각한 바 있다.
석유공사는 하베스트사를 손에 넣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끼워팔기'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억지주장을 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석유공사는 NARL 매입 후 4년 동안 시설 투자에 수천억원을 쏟아부었다. NARL의 상황을 알면서도 돈을 쏟아 부은 것은 여러 면에서 석연치 않다.
대놓고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한 하베스트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인 내막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인수과정을 들여다보면 세 가지 수상한 부분이 있다. 이 전 대통령, 석유공사-지경부, 그리고 메릴린치다.
MB는 인수위 시절부터 해외자원외교를 강조했다.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에는 “자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라”며 관련부처를 독려했다. 자신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측근인 박영준 전 지경부차관 등을 선봉에 세워 해외자원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을 2010년까지 10%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한 것도 부족해 2012년 2월에는 광물자원공사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갖고 “올 연말 자원 자주개발률 20% 달성”을 외쳤다. 대통령이 직접 독려하고 정권의 실세들까지 앞장서서 해외 광구와 유전, 광산 등에 경쟁적으로 진출해 투자했다.
석유공사는 최근 이 부분에 대해 “MB정권의 정책적 목적에 공기업이 발맞추다 보니 이런 있을 수 없는 국부유출이 일어난 것”이라고 토로했다.
해외의 경우 투자를 성사시킬 경우 당사자에 리베이트를 주는 게 관례처럼 굳어져 있다. 이 때문에 MB 또는 그 주변 실세가 해외투자를 추진한 뒤 제 3의 인물을 내세워 리베이트를 챙긴 것 아니냐는 의혹에 무게가 더해지고 있다.
또 메릴린치 서울지점장도 의혹을 사고 있는 핵심인물이다.
김씨가 메릴린치 서울지점장으로 발탁된 건 2008년이다. 한국투자공사(KIC)가 메릴린치에 2조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직후다. ‘발탁’이 2조 원 투자 유치에 대한 대가였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당시 메릴린치는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파산위기에 몰려 있었다. 그런데 거액의 투자유치에 성공한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쉽지 않다.
이는 아버지가 모종의 역할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그의 아버지 김 전 총무기획관은 MB와 고대 상과대학 동문이고 MB의 ‘40년 집사’로 불리는 인물이다. 이 점만 놓고 봐도 의심을 지우기 힘들다.
실제로 그의 입김 때문에 메릴린치의 투자요청이 순식간에 통과됐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투자요청 수락은 KIC 사장을 통해 인수위 강만수 간사에게 보고된 지 불과 이틀 만에 이뤄진 일이다.
이상한 점은 이뿐만 아니다. 메릴린치가 석유공사의 해외투자자문회사로 선정된 데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투자자문사 선정에 참여한 다른 업체보다 평가가 낮았는데도 최종 선정된 것이다. 1,2차 심사 모두 계량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지만 심사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이 작용하는 비계량 평가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여기에도 ‘MB 집사’인 아버지의 영향력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인수 당시 모회사격인 하베스트에너지 역시 부채비율이 2000%에 달하는 부실기업이었다. 석유공사가 거액을 내놓으며 하베스트를 인수하자 현지 언론들은 한국정부를 비웃는 기사를 내보냈다. 캘거리 헤럴드는 ‘한국인들 대체 무슨 생각이었나?(What were the Koreans thinking?)’라는 칼럼을, 월스트리트 저널은 하베스트가 받은 매각 대금을 ‘신이 내린 선물(godsend)’라고 놀리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상한 투자’를 감행한 한국정부에 의문을 제기한 본 것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수사를 통해 투자와 관련된 연결고리와 그들의 위법행위가 드러날 경우 여권의 전면적인 재개편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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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프리랜서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