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청와대와의 교감일까. 일방적인 돈키호테 식 러브 콜일까.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의 ‘박심(朴心·박근혜 대통령 마음) 다가서기’가 다시 시작됐다.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놓고 불거진 비박계 지도부와 친박계의 충돌에서 그는 친박계보다 더 강한 어조로 지도부를 공격하고 있다. 청와대가 당정청 회의를 열지 않겠다고 하자 “보이콧의 뜻은 무엇이냐? ‘유승민 체제를 신뢰하지 못한다.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 아니냐”(6월 4일 언론 인터뷰)고 했다. 한마디로 유승민 원내대표가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요구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친박계 최고위원들보다 선제적으로 유승민 때리기에 나섰다. 그는 “참다가 또 참다가 이 말씀드린다. 유승민 대표체제 출범 이후에 당-청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며 ‘유승민의 리더십’을 비판했다.
또 “(청와대가) 이미 유승민 체제를 신뢰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당의 단합과 깨진 당-청 간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유승민 대표께서 용기 있는 결단으로 결자해지 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사실상 사퇴 요구였다. 그러자 서청원·이정현 최고위원 등 친박 핵심들이 유 원내대표를 겨냥해 직격탄을 날리며 가세했다.
김 최고위원은 앞서 지난해 10월엔 평소 ‘형님’이라고 부르며 따르던 김무성 대표를 걸고넘어지며 사퇴 소동을 일으켰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자제하라며 ‘개헌 블랙홀론’을 제기했음에도 김 대표가 중국 상하이에서 ‘개헌 봇몰론’을 언급한 일이 발단이 됐다.
이 때 김 최고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국회를 향해 ‘경제활성화 법안만이라도 제발 좀 통과시켜 달라’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애절하게 말해왔다. 그런데 (김 대표는) 오히려 ‘개헌이 골든타임’이라면서 대통령에게 염장을 질렀다”고 공격했다. 박 대통령을 상대로 한 노골적인 구애였다.
김 최고위원의 ‘친박 행세’는 현재 여권의 차기 대권경쟁 구도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박근혜 대항마’로서의 대권주자로 꼽힌 바 있다. 하지만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으로 총리직에 오르지 못한 상태에서 낙마했고, 대권 꿈도 멀어지는 듯했다.
지난해 7·14 전당대회를 통해 당 지도부에 입성한 그는 다시 대권의지를 불태우고 있다고 한다. 부산·경남지역의 한 언론인은 “김태호는 야심이 대단한 인물이다. 국회의원 보좌관에서 국무총리 후보자로 올라가는 과정은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다. 김태호의 마지막 목표는 대통령임이 분명하다”고 귀띔했다.
김 최고위원의 최대 약점은 당내에 자기 세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당내 최대 계파인 친박계에 끊임없이 구애를 보내고 있다. 이를 위해 박 대통령의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맞추면서 호흡을 같이해 나간다.
친박계로서도 무작정 거부할 일이 아니다. 현재 친박계에선 뚜렷한 차기 대권주자가 없다.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질주하는 김무성 대표나 그 밖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의 주자들은 모두 비박계에 해당한다. 친박계 중에선 한때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으나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검찰수사를 받은 만큼 탈락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친박계는 ‘김무성 대항마’ 찾기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계 핵심인사는 필자에게 “여권에 김무성만 있는 건 아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당 안팎에 인물이 많다. 여권에선 야권과 달리 차기 주자가 일순간에 부상할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여권 대선주자는 단숨에 떠 오른 사례가 더러 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이인제 의원이 대표적이다. 당시 YS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후계자 구상을 묻자 “깜짝 놀랄 젊은 후보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이인제 의원이 급부상했다.
김 최고위원은 올해 53세다. 깜짝 놀랄 만큼은 아니지만 ‘박심’만 얻는다면 젊은 후보가 될 수 있다. 김 최고위원의 노림수가 바로 이 점이다. 친박계의 대안으로 부상하면 의외로 수월하게 대권주자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법 하다.
다만 김 최고위원이 친박계에 일방적 구애를 보내는 것인지, 청와대와 일정 부분 교감이 있는 것인지는 별개 문제다. 친박 핵심 인사가 필자에게 말한 ‘당 안팎의 김무성 대항마’에 그가 포함되는지도 의문이다.
PK 지역 언론인은 “김 최고위원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의혹을 말끔히 씻지 못한 만큼 청와대와 친박계에서 그에게 기회를 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한 사석에서 이 부분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결백을 호소해 나가면 결국 국민들도 받아들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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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